엄마처럼 살지 않기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했던 다짐들

by 얼떨결정

엄마는 내게 커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을 많이 하던 사람이었다. 외고에 진학해야 한다든가, 서울로 대학을 가야 한다든가, 전문직을 하는 게 좋다든가. 종종 지금은 아니지만 어릴 때 부유했었다는 말을 엄마는 하곤 했다. 어린 나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잘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다고 말했다. 그러니 열심히 하라고 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때는 중3이 끝날 때 즈음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전 마지막 중학교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티브이만 봤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내게 아무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살라며, 나를 믿는다고도 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어려웠다.


대체로 마음 가는 대로 살았지만, 딱 하나만큼은 내 마음과는 별개로 노력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기.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했다. '스스로 죽지 않기.' 사는 게 의미 없다는 생각이 자주 찾아왔다. 하지만 죽고 싶든, 살기 싫든, 어쨌든 살아 있기로 다짐했다. 늘 우울했지만 스스로 죽지는 말아야지 하고 되뇌었다. 입으로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론 엄마처럼 죽진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엄마가 스스로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배운 건 삶을 살다가 힘들면 죽어도 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내 주변의 누군가도 나처럼 배울 거라는 걸 알았다. 그 죄책감을 견디기가 어려워 엄마랑 다르게 살기로 했다.


20대 초반 만난 친구들과 서른아홉이 되어서도 이런 기분이면 죽기로 했다. 그때는 아무도 서로 말리지 말자고 술 먹고 담배를 피우며 약속했다. 우리는 스물아홉에는 삶이 지금과 그다지 변하지 않을 걸 알았던 것 같다. 꽤 똑똑한 예측이었는데, 스물아홉에는 여전히 다들 우울한 소리를 했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고 30대 초중반이 되자 상황이 변했다. 서로 위로해 주거나 혹은 심리상담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 더 적극적인 치료를 권하기 시작했다. 죽기보다는 정신과에 가보면 좋겠다고 서로를 다독였고, 실제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 예전에는 '그래도 조금 더 힘내서 마무리해야지. 그거 끝내고 쉬자.' 이런 말들을 서로 하곤 했는데, 이제는 다들 힘들면 그냥 쉬라는 말을 했다. "우선 정신과에 가봐. 그리고 그건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해도 돼."


20대 중반 미국 대학원 유학을 준비하던 시기에, 학부든 대학원이든 유학을 갔다가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죽는 학생들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돌아오는 게 두렵고 포기하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 유학이 아니라 생 자체를 그만두는 것이다. 나는 결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죽을 것 같으면 무조건 돌아올 거야.' 아직 가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그런 다짐을 하면서 영어 단어를 외웠다.


20대 후반에는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었다.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그만두고 취업을 하고 출근을 했다. 오랜 기간 바랐던 일을 관두는 것이었지만 죽는 게 아니니 상관없지 않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다. 과연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게 정말로 세상에 있는 걸까?


죽는 것만 아니면 스스로에게 꽤 관대했던 것 같다. 죽을 것 같으면 늘 언제나 버티기보다는 도망쳤다. 공부나, 일로, 때때로 잠, 유튜브, SNS, 웹툰이나 담배로. 그렇게 도망치다 보면 언제나 살아남았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일본 만화 베르세르크의 대사가 유행했다. 나는 속으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지만, 여기도 낙원이 아니니 어차피 상관없지 않나?' 같은 생각을 하면서 지냈다. 친구들에게도 도망칠 용기를 내라고 응원했다. 죽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은 그럭저럭 굴러갔다.


일상적으로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밤 11시 - 새벽 5시에 한 생각을 실천하지 않기.' 새벽은 위험하다. 낮이 아무리 행복하고 뿌듯한 하루든 밤은 늘 위험했다. 일이 잘 풀리고 있으면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사는 게 지겨워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잦았다. 새벽에는 잠들지 못하더라도 그때 내린 생각의 결론을 실천하지 않았다. 무언가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그 시간에 하고 싶다면, 반드시 자고 일어나서 다시 검토했다. 나는 그 시간대의 스스로를 믿지 않았다.


더 상태가 안 좋을 때는 꽤 유용한 치트키가 있었다. 죽지 말자고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대신 '내일 죽자'는 생각을 했다. 자살유가족 자조 모임에서 누군가가 추천한 방법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그냥 내일 죽자고 생각하고 오늘만 산다고 하셨다. 이 말은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늘 오늘만 살기 때문에 그래서 못 견디면 내일 죽어버리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현재는 늘 지금 뿐이고, 내일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내일이 다가오면 그건 또 오늘이기 때문에, 죽음을 또 내일로 미루는 것이다. 엄마처럼 살지 않는 데에 꽤 도움이 되는 방식이었다.


아이러니한 '내일 죽자'는 말로 드러내는 강렬한 생의 의지를 곱씹었다. 죽음은 언제나 내일로 언제나 미뤘다. 나는 그렇게 살아남았다.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2부 「남겨진 마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남겨진 다른 가족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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