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스스로가 내린 벌일까요?

by 얼떨결정

엄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기를 바랐다. 오랜 병마랑 싸우다가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마지막을 생각하며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떠나가셨기를. 아버지가 오래 병원에 계신 친구가 있다. 우린 술을 마시며 종종 각자의 속내를 털어놨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죄책감이 들었다. 가끔은 엄마가 자살이 아닌 그냥 교통사고나 다른 사고로 돌아가셨기를 바랐다. 갑작스럽게 아는 분 배우자 분이 사고로 돌아가셨다. 늦은 밤 야근을 마치고, 너무 피곤해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에 갔다. 나는 스스로가 끔찍하게 여겨졌다.


엄마는 중학교 3학년인 외동딸을 세상에 남겨두고 떠났다. 아무도 내게 왜 엄마를 잘 챙기지 못했냐고 묻지 않았다. 당연히 그런 나이니까. 그래서 줄곧 내가 자살유가족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웠다고 생각했다. 최근 집 정리를 하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쓴 메시지를 인쇄해 둔 종이를 찾았다. 인터넷에서 누가 죽겠다고 올린 글에 구구절절 죽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던 기억이 나는데, 그 편지였다. 장문의 글에 적혀있었다. "엄마와 나 둘이 살던 집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어요. 저는 내내 조사받는 기분이었죠." 조사받은 기분이라고 느꼈었던가? 나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은 내 몸의 발끝보다 더 깊은 곳에 감춰두고 다시는 열어보지 않았다. 일상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서였다.


자살유가족은 주변의 시선이 두렵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눈초리, 뭔가 가정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심이 따라붙는다. 막연히 경험해 본 적 없는 고통을 상상해 본다. 자살로 자식을 잃은 부모, 배우자나 형제자매를 잃고 남은 사람들의 겪는 고통은 어떤 것일까? 혹은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사람은? 그들에게 가장 큰 비난은 아마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닐 거다. 이미 스스로 자신의 수많은 잘못을 찾아내고 벌하고 있을 거다. 그런데, 외부의 낙인도 매섭다. 그러니 슬픔을 위로하는 말 외에는 하지 마시라. 왜, 어쩌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질문도 결코 하지 마시라. 어차피 스스로 묻고 있다.


성인이 되니, 아빠가 암환자가 되었다. 나는 병원에 보호자로 들어가 아빠가 수술을 받는 동안, 만약 아빠가 돌아가시면 어떨지를 상상해 보았다.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면, 아무도 무언가를 더 묻지 않았다. 무슨 암인지 정도를 묻고, 자신의 가족 중에도 암환자가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겠지. 그리고 그동안 간호하느라 고생했다고 나를 위로해 줄 것이다. 왜 암에 걸렸냐고도 묻지 않을 것이다. 아마 우리 아빠는 담배 때문이지만, 누군가는 담배를 안 펴도 암에 걸리고, 담배를 펴도 암에 걸리지 않으니까.


내 이야기를 주변에 하기 시작하면서, 가끔 내게 어머니가 왜 그러셨냐고 묻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그 질문은 장례식 장이나, 우연히 우리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된 상황에서 나온 질문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가 나왔다는 건 내가 상대에게 꽤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누는 중이란 뜻이었다. 가까운 관계의 누군가가 나를 위해 주제의 무거운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노력을 해주는 게 좋았다. 비난의 어조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도 가볍게 답할 수 있었다. 대답은 매번 변했다. "글쎄, 엄마가 만나던 분이 먼저 돌아가셨어. 근데 나는 무덤을 같이 안 가줬어.", "좋아하던 배우가 죽고 몇 달 뒤야.", "그때 한국 경제 망하는 분위기였는데, 엄마가 일자리가 없었어.", "술 마셨더라.", "원래 이혼하고, 종교 없고, 돈 없으면 자살률이 높대.". 그러나 나의 가장 진실된 대답은 이거였다. "글쎄, 나도 몰라. 궁금하네."


이제는 다르게 답해야 한다는 걸 안다. "많이 아프셨어." 과연 답할 수 있을까? 언제쯤 엄마가 사실 아빠처럼 그냥 암환자나 다름없었다는 걸 받아들일까? 뇌라는 장기가 제 기능을 못했을 뿐이라는 걸. 근데 그걸 모르고 치료를 제때 안 받아서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언제쯤 온전히 수용할까? 우리는 아무도 치매 환자의 자식들에게 왜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게 두었냐고 묻지 않는다. 아무도 소아암 환자의 부모에게 자식을 어떻게 돌 본 거냐고 묻지 않는다. 아무도 암이 재발했다고, 왜 재발하게 두었냐고 가족에게도 환자 당사자에게도 화내지 않는다. 과학이 발전해서 병원에서 사진 한 번 찰칵으로 뇌가 고장 난 걸 알 수 있길 바란다. 그렇다면 자살유가족에게도 사람들이 쓸모없는 말은 하지 않고, 위로만 건네게 될 것이다.


'당신도 저도 죄인이 아닙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잘 적히지 않았다. 진심이 아니라서 그런가 적기 어려웠다. 마음속에서 나는 분명 피해자이며 생존자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보다 더 크게 죄인이었다. 엄마랑 무언가를 같이 했어야만 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쩌면 지금도 한다. 내게 아무도 비난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 재판관은 늘 내게 판결을 내렸다.


다행히 아무도 내게 직접적인 비난이나 추궁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신 다른 어려움에 처했다. 자살이나 우울이 유전이거나, 혹은 그 일로 인해 나 역시 우울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내게 덧씌워졌다. 애정관계에서 흔히 겪을 법한 갈등도 나의 우울한 성향 탓이 되었다. 상대가 이를 지적할 때도 있고, 나 스스로 지적할 때도 있었다. 스스로를 자주 돌아보게 되었다. 이게 유가족에 대한 편견인가? 아, 편견이 아니라 사실인가?


누가 내게 죄인이라 했는지 떠올려 본다. 안타깝게도 나였다. 주변의 몇몇 말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말이 마음에 남아 메아리처럼 다시 반복 재생된 된 것은, 나 역시 스스로에게 그 말들을 외쳤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기 때문에 편견에서 자유로웠다. 이는 조금만 덜 어렸어도 자유롭지 않았다는 걸 뜻했다. 아무도 내게 죄인이라고 돌을 던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죄인이 아니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말해주고 싶다. 아니, 말해야만 한다. 당신도 저도 죄인이 아닙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6122022084043

https://www.segye.com/newsView/20201105527510




브런치북 『그 흔한 생존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연재됩니다.

지금은 3부 「나로부터 살아남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20대 초반부터 시작된 치료에 대한 이야기로서 심리 상담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글의 제목은 예고된 목차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평온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3화자살에 대해 내가 몰랐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