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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떨결정 Nov 16. 2020

서핑을 왜 하게 되었더라

소프트 보드의 부력이 나를 바다에 띄워주는 것처럼 내 기분도.

서핑은 내 버킷리스트 같은 건 아니지만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였다.


주류 사회에 속해서 살아가고자 애쓰면서도, 그게 사회나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카운터 컬처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 매료가 그리 강렬한 것은 아니었어서 실제로 실천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었고,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취미? 취미가 왜 필요해, 심심하면 코 파면서 책(논문) 읽는 거지.”라는 교수님의 말을 좋아했다. 나에게는 목표가 있었고, 그 길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들은 명확했고, 여유 부릴 틈이 없었다. 중간중간 휴식이 필요했고, 적절한 휴식을 취하는 것은 능력의 일부이지만 그게 근거리라도 서울을 벗어나 어딘가로 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말은 아무도 없는 연구실에서 집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거나,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 연유로 내게 서핑은 ‘언젠가 해봐야지’하는 뭐 그런 것들 중에 하나였다. 그러니까 마치 대학 때 밴드처럼, 평생 할 건 아닌데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그런.




보드의 부력이 내 기분도 가라앉지 않게 도와줄 거라 조금 기대했다.


2018년에는 캐나다에 학회를 갈 일이 생겼다. 가는 김에 미국 캘리포니아를 거쳐서 밴쿠버에 갔다가 록키 산맥을 보고 토론토에 가는 여행 계획을 세웠고, 이때 목록에 서핑이 들어있었다. 막상 논문을 마무리 짓지 못해서 서핑은커녕 록키 도착 전까지 내내 논문만 썼지만. 그리고 이때 서핑 관련된 카페도 가입했더라. 강습을 묻는 내 글에 사람들이 여름에 시작하는 게 좋다고 댓글을 달았다.


2019년이 지나면서 있던 목표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대신 월급이 생겼지. 직장인이 된다는 건 일이 언젠가 끝난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피곤하고, 우울하고, 의미 없고. 안정감을 얻은 대신 방향성을 잃어버린 기분. 이 일을 계속한다면 무엇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심지어 지속되는 안정감도 아니고.  


회사에 적응하고 긴장이 풀리고 나니 계속해서 기분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2020년 5월이 끝날 무렵, 나는 죽는 것 빼고 무엇이든 하기로 결정했다. 예전에도 이런 결심을 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2020년에 다시 했다. 명확히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 가라앉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가라앉은 채 살지 않기 위해서 나를 띄워줄 무언가로 서핑을 하러 가게 된 것이다. 소프트 보드의 부력이 수영도 못하는 나를 바다에 띄워주는 것처럼 가라앉는 내 기분을, 내가 삶에 대해 느끼는 방식을 전환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서핑은 내 일상을 띄우지 못했지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 20년 5월의 나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만 살고 싶은 것".


이때 실제로 실천한 것은 세 가지이고, 지속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1. 서핑하기 : 주말의 시간과 돈을 바치는 중.

2. 땅에서 롱보드 또는 크루저 보드 타기 : 옥상에서 가끔 타고, 한강이나 다른 탈만한 곳을 나가기에는 야근이 많다. 서핑하러 갈 때 들고 가거나 친구 것을 빌려서 잠깐 탄다.

3. 마인딩 앱 : 3개월치를 끊었으나 1개월 겨우 하고 2,3개월 차는 열어보지도 않았다.


"서핑도 스케이트보드도 한번 하고 다시는 안 할 수도 있지만, 그 앱에서 푸시로 나한테 뭘 적으라고 하는 건 3개월 동안 지속되니까. 3개월 동안 생존신고를 하는 가격으로 나쁘지 않다."라고 적더니, 막상 생존 신고는 1개월만 하고, 9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주말을 서울 밖으로 나가는 중이고, 이제는 어디 가서 집순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 기대를 서핑이 충족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금요일 밤을 기다리면서도 가끔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서핑을 하는 것과 의미는 별로 관련이 없고 재미있으면 하고 아니면 말면 된다는 걸 알았지만. 평소의 내 상태는 바다에 떠있을 때와 전혀 다르게 여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서핑을 할 때는 즐거웠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아니었다.


주말을 기다리는 건 즐거웠지만, 그게 일상을 잘 지내게 해주는 힘이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핑은 내게 뭔가를 깨닫게 했다. 기다려야 한다는 것,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기다려도 된다는 것.


내가 기다리는 것: 주말. 내게 적절한 파도가 오는 날. 여러 파도 중 내가 밀어타기 연습을 할만한 파도.


급하게 보드를 돌려서 파도를 잡아보려다가 놓치면 늘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조급해하지 마. 파도는 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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