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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떨결정 Apr 02. 2021

하고 싶을 때까지만 하는 삶

서핑, 어느새 주말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버린 과정.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매주 바다를 보러 가는 데에는 얼마만큼의 열정이 필요할까?

직장인이면서 바다와 관련된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은 그걸 얼마나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서핑을 계속할 거라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9번의 입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8번 입수를 하기까지 서핑을 계속할지 말 지에 대한 생각이 모호했다. 지금은 한동안 계속할 게 분명하다.


문제가 있다면, 나는 주말을 기다리는 삶을 원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서핑을 시작하고 가장 아쉬운 것은 내가 주말을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파도가 기대되더라도, 주말을 기다리는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심지어 이걸 회사 상사랑 고민상담도 했다!




- 20년 5월의 나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만 살고 싶은 것".


이때 실제로 실천한 것은 세 가지이고, 지속하고 있는 것은 서핑뿐이다.

1. 서핑하기 : 주말의 시간과 돈을 바치는 중.

2. 땅에서 롱보드 또는 크루저 보드 타기 : 옥상에서 가끔 타고, 한강이나 다른 탈만한 곳을 나가기에는 야근이 많다. 서핑하러 갈 때 들고 가거나 친구 것을 빌려서 잠깐 탄다. 하지만 너무 빈도가 적어서 타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게 낫다.

3. 마인딩 앱 : 3개월치를 끊었으나 1개월 겨우 하고 2,3개월 차는 열어보지도 않았다.


"서핑도 스케이트보드도 한번 하고 다시는 안 할 수도 아니면 안 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앱에서 푸시로 나한테 뭘 적으라고 하는 건 3개월 동안 지속되니까. 3개월 동안 생존신고를 하는 가격으로 나쁘지 않다."라고 적더니, 막상 생존 신고는 1개월만 하고, 9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주말을 서울 밖으로 나가는 중이고, 이제는 어디 가서 집순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주말을 바치면서 내 상태가 좋아졌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우울하고, 사는 건 의미 없게 느껴지고 더 나아가 오히려 내가 바라지 않는 삶의 형태 "주말을 기다리는 삶"에 가까워졌다. 내가 주말에 생리를 할지, 파도가 없는 건 물에 들어가면 되니 괜찮지만 너무 커서 들어갈 엄두가 안나는 건 아닐지 고민하며 금요일 정시 퇴근을 기대하는 삶.


그런데 '주말을 기다리는 삶'은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다. 그건 마치 여행 가기 위해 일하는 것. 일상에서 벗어난 곳에서 삶의 기쁨을 누리고, 일상은 버텨내는 삶이다. 나는 주 5일이 주말보다 즐겁고 행복하고 에너지 있기를 바란다. 서핑을 시작하고는 주 5일 내내 주말을 기대하며 지낸다. 만족스럽지 않다.



서핑을 '한동안' 계속할 거라고 깨닫는 데에 9번의 입수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게 분명해지기까지 13번의 입수가 더 필요했다.

강습까지 포함하면 물에 보드 들고 들어가는 걸 25번이나 한 이후에야 이걸 계속할 거라는 게 확실해졌다.

"서핑에 대해서 뭘 물어보지도 않고, 관심 있어하는 애들이랑은 좀 달라서 계속 오나 의아하게 생각했지. 계속 보다 보니 아 쉬러 오는구나 하고 알았지만."

"버티려고 의지를 가지고 해야지. 왜 그냥 포기해?" (나는 내가 이거까지 의지를 가지고 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더 타게? 할 수 있겠어?"

"겨울에 서핑하게? 겨울에 추워서 네가 서핑하겠어?"

"슈트까지 사놓고 안 한다고?"


"아니면 그만하면 되지. 재밌을 때까지만 할 거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만 할 거야." 하는 내 태도가 그리 흔한 건 아닌가 보다.


새삼스럽게 예전에 하던 고민이 떠올랐다. 나는 재미있는 게 없는 걸까 아니면 재미있다고 느끼는 역치가 높아서 '그럭저럭 재미있거나, 재미없거나'인 걸까? 내가 재미있는 걸 못 찾는 게 아니라, '그럭저럭 재미있는 게' 다른 사람들 기준에서 '정말 재미있는 것'을 내가 느끼는 방식인 건 아닐까?


사람들이 말했다.


"좋아하는 티 좀 내. 좋아하잖아. 티 좀 내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회사 이사님은 좋으면 좋다고 티를 내라고 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너 원래 좀 모든 거에 감흥이 없잖아. 그냥 그걸 제일 좋아하는 거야. 사회학 하는 걸 제일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는 거지." 대학원 동료가 하던 말도 떠올랐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9번째 입수를 마친 후에는 겨울이 오고 그 시간을 쉬면 내가 다시 서핑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과 시간을 뺏기는 지금 감각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트를 샀고, 이제 겨울이 다 지났다. 겨울이 지나고 나니 이걸 계속할 것이 분명해졌다.


이제 나는 이르면 화요일 저녁, 늦어도 수요일부터는 주말 차트를 들여다본다.




겨울 내내 입수했는데, 아직 입수한 날이 서른 번이 되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나를 보고 ‘정말 좋아하나 보다, 대단하다, 부지런하다, 체력이 좋다’고 했고,

서핑 샵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왜 의지가 없냐, 왜 더 열심히 안 하냐, 그냥 쉬러 오는 거지 뭐’라고 했다.


간극이 크다.


나는 여전히 재미있을 때까지만 할 거라고 생각한다. 재미없어지면 그만둘 거라고.


오랜만에 잘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걸 찾아서, 그리고 그걸 재미있어하는 내가 웃겨서 계속했다.

한겨울에 바다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그걸 기대하는 내가 우스워서 계속하다 보니, 올해도 이러고 있을게 눈에 보였다. 심지어 차트 보고 월요일에 연차도 썼다. 나를 위한 작지만 좋은 파도들이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면서.


언제까지 지속될까?

영원한 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만끽해야지. 지금 이 시간들을 충만하고 감사하게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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