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의 어려움
일을 쉬고 난 후로 언제부터였는지 화초를 기르고 있다.
이사오기 전까지 나름 큰 뱅갈 고무나무를 그럭저럭 잘 길러오고 있었고, 머리카락 자라듯 무성함을 자랑했던 애플민트와 향이 강한 바질, 그 밖에 여러 꽃들.. 또 종자가 다른 건지 시중에 파는 것들의 절반 크기밖에 자라지 않던 쌈채소들.
하나 둘씩 들여와서 숲처럼 무성해진 베란다 정원을 가꾸는 주부들 마음이 백번 공감되었다. 얼마 전 방문했던 꽃집의 사장님 말씀이 손님 중에 일부러 비실비실한 아이들만 골라 사는 아주머니도 있다 하니 확실히 식물이 허한 마음을 달래주고 '키움'의 기쁨을 주는 게 맞나보다.
아무래도 학교에 나가지 않으니 키울 아이들이 없어서 허전했는지 강아지나 고양이, 기타 동물들은 자신이 없고, 나도 모르게 만만(?)해보이는 식물을 하나 둘 데려왔나보다.
그치만 어찌보면 동물 키우기보다 어려운 게 식물 키우기인 것 같다. 물론 손이 더 많이 가는 건 동물일 듯 한데 죽이기 쉬운(?) 쪽은 식물이 아닐지... 동물은 표정과 소리, 행동 등으로 식물보다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건가? 여하튼 더 섬세하게 잡아내야 되는 게 식물의 표현이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급증하는 1인 가구로 인해 식물 키우기가 열풍이고 식물병원이라는 곳도 있다고 한다. 하긴 같은 생명인데 그동안 동물병원은 있고 식물병원은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
확인된 적은 없으나 강아지 털 알레르기를 가지고 계셨던 아빠때문에 엄마는 강아지 및 고양이를 제외한 다양한 동물들을 많이 키우셨다. (물론 식물도) 그런데 그 중 유독 허약했던 토끼 한 마리가 결국 죽고난 후로는 오랫동안 우리 집엔 애완 동물이 없었다. 그 당시 어렸던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작년에 이사 후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잠시 복직해서 정신이 없어서였는지 무럭무럭 잘 자라던 뱅갈이 순식간에 무성했던 잎들을 떨구고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었다. 생각해보니 이전에 살던 집보다 통풍이 안되고 겨울이라 문도 닫아놔서 과습이 되었던 것 같다. 힘없이 축 늘어졌던 까만 눈의 토끼가 생각나 무서웠다. 무언가 손을 쓰기엔 너무 늦어버렸던 것이다. 2년 넘게 별 탈 없이 길러왔던 아이가 잠시 잠깐의 부주의로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버리니 충격이 컸다. 혹시나 살 수 있을까 흙도 좀 말려주고 지켜봤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바람이 잘 통하던 이전 집 때문에 식물을 키우는데 '통풍'이 이리도 중요한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습한 걸 좋아하지만 역시 통풍이 중요했던 애플민트와도 안녕을 해야만 했다. 같은 허브과라 자기도 가야만 했는지 바질도 뒤이어 떠나갔다.
환경이 바뀌었는데 세심하게 신경쓰지 못해 여러 아이를 보내버리고 나니 화초를 키우는 게 만만치 않은 일임을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다. 또 죽이게 될까봐 고민을 많이 하다가 베란다 한 켠에 덩그러니 마른 나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파 차라리 얼른 보내주고 새 아이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 가는 길에 '화분 분갈이 출장'이라 써붙여진 종이를 보고 꽃집에 들어갔다. 수다쟁이 사장님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예쁘게 생겨서 자기도 모르게 데려왔다는 뱅갈 고무나무 한 그루가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실 뱅갈이는 마음도 아프고 키우기 무서워서 다른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견물생심인지라 예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확 끌렸다.
그래도 식물을 잘 기르는 것 같네요!
키우는 아이들에 대해 이야길 하니 사장님께서 한 말씀 해주신다. 어쩐지 마음이 좀 이상했는데, 순간 화초들을 더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식물을 키우는 데 공통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이 있고, 또 각각의 화초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이 다 다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좀 알고 나니 나도 모르게 찾아보고 공부를 하게 된다.
우선 모든 식물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게
과유불급!
화초을 키우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보자면 '빛', '물', '흙', '바람(공기)' 등이 있는데, 특히 '물'로 인해 죽이는 경우가 많다. 물을 덜 줘서 말라 죽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과습으로 뿌리가 썩는데, 지나친 관심이 독이 되는 경우다.
분갈이를 끝내고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시던 꽃집 사장님께 전에 사놓았던 배양토와 거름에 대해 여쭤보니, 거름을 자주 주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하셨다. 좋은 흙과 빛, 그리고 물만으로 식물이 스스로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적당한 관심'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적어도 '과한 애정'보단
'약간의 방임'이 더 나은 것 같다.
새순도 잘 나고 동글동글 넓은 잎 닦아주는 맛이 있는 <뱅갈 고무나무>는 키우기 쉬운 편이라고들 이야기한다. 물만 잘 주면 반그늘에서도 잘 자란다. 물론 햇빛 잘 받는 게 더 좋긴 하지만... 뱅갈은 자리가 바뀌는데 민감한 것 같다. 어떤 이는 한 자리에서 잘 키우다가 불과 1-2미터 떨어진 창가로 옮겨줬는데 적응을 못해 죽였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무지 예민한 아이다. 그래도 해를 잘 보면 잎이 노랗게 물들고 새순이 나와 키우는 재미가 있어 뿌듯하긴 하다.
<애플민트>는 뜯어 먹으려는(?) 욕심에 키웠는데 생각보다 번식력이 강해 큰 화분으로 옮겨주니 금방 숲이 되었다. 자주 잘라주면 화수분처럼 자라난다. 가끔 손으로 쓰다듬어주면 강한 향을 풍긴다. 한여름에 얼음 넣고 모히또 만들어 먹으면 키운 보람이 있구나 싶다.
키우는 아이들 중에 으뜸은 역시 <치자>다. 6월경 아주 잠깐 깔끔한 흰 꽃을 보여주는 치자는 개화 기간이 짧아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다소 심심하게 생긴 모양새와 달리 온 몸을 울리는 그 달큰한 향은 정말이지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정말 좋다! 달콤한 향 때문인지 진딧물같이 하얀 것들이 항상 꼬여있어 퇴치하는 게 여긴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도 햇빛과 물을 좋아하는 게 눈이 보이고 영양제 약발도 잘 받아 항상 사랑을 주고 싶게 만든다.
이렇게 쓰고 있으니 하나 하나 개성 있는 아이들처럼 느껴진다. 식물도 이러할진대 사람은 오죽할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과 같이 우리 집에 있는 식물들에게도 새삼스레 한 마디 전하고 싶다.
너를 잘 키우려면
무엇보다 널 잘 알아야겠지.
잘 자라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또 지켜봐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