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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철 Oct 01. 2019

제2의 사춘기, 그리기라는 행복으로 채운 이야기

철들고 그림 그리다 (정진호 글, 그림 / 한빛미디어)

인생에서 사춘기는 두 번은 오는 것 같다.

첫 번째 사춘기는  초등학교를 지나 청소년기에 들어서는 2차 성징기에 찾아온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간 속에서 대 혼란을 겪기도 한다.


두 번째 사춘기는 불혹의 나이인 마흔 즈음에 오는 것 같다.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 생활을 하며 십 년 이상을 보낸다.

그 사이 결혼도 했을 것이고 아이들도 생겼을 것이다.

꼭 남자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장으로서의 남자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감에 더욱 열심히 사회생활을 한다.

그렇게 십오 년에서 이십여 년이 지날 즈음, 그때가 아마도 불혹의 나이 근처가 될 것 같다.


그때, 문득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지극히 근본적인 질문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직장도 있고, 가족도 생기고, 생활도 안정되어 갈 그때.

인생에서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흔드는 혼란의 시간이 다시 한번 찾아온다.

그제야 언젠가부터 나를 잊고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시간.


불혹의 나이 마흔 즈음, 진정한 나를 찾고 그 속에서 나에게 행복을 안겨줄 그 무엇, 오직 나만을 위한 그 무엇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선의 정도가 다르고 관심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딱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

하지만 누군가가 그런 과정을 찾아 자신의 행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기록한 따듯한 글을 만날 수 있다면, 어쩌면 그 속에서 우리도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더 깊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철들고 그림 그리다




철들고 그림 그리다(한빛미디어). 정진호 님의 글과 그림이 담긴 책.


철들고 그림 그리다 (정진호 글, 그림 / 한빛미디어)


그림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로부터 진정한 자신의 행복을 찾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출장길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예술가.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에서 만난 예술가.

공항 창가에 앉아 작은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는 한 사람.

훔쳐보듯 슬쩍 넘겨 본 그 사람의 그림은 엄청나게 멋진 그림은 아니었지만 나름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숲 속의 잔잔한 옹달샘에 지나가던 다람쥐가 도토리 하나를 던져 물보라를 일으킨 듯, 정진호 님의 잔잔한 마음에 물보라를 일으킨 사건(?).

그렇게 시작된 물보라는 긴 여운으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가 나이 마흔이 되면서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그림 그리기.


불혹의 나이 마흔,

어쩌면 나를 잊은 채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멈짓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그 시점.

첫눈에 반한 첫사랑의 그녀가 내 앞에 불쑥 나타나 듯, 정진호 작가 앞에 그림이라는 첫사랑이 찾아왔다.

뭐라고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으로 채워지면서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정진호 작가를 일깨웠던 것 같다.


작가는 말한다.




        그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즐거워지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담았다고..




불혹의 나이에 다시 찾아온 사춘기는 어쩌면 나를 찾는 정체성 보다도 나를 위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것이 더 큰 것 같다.


나도 그랬다.

결혼을 하고, 직장을 얻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내 집도 생겼다.

그렇게 마흔을 맞이 한 어느 날, 평온하게만 지나갈 것 같았던 내 마음에 물보라를 일으키는 일이 생겼다.

마흔에 찾아온 두 번째 사춘기.

나도 나를 위한 무엇인가를 찾고 싶었다.

안정된 생활조차 영원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때 나도 나를 위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3학년 때 일이 생각났다.

'오늘 이후로 내가 붓을 다시 잡으면 난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건으로 인한 배신감 때문에  접어야 했던 화가의 꿈.

 그 뒤로 첫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거의 그림은 내 생활에서 잊어져 있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그림을 그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아들을 위한 그림을 그렸다.


철들고 그림 그리다 (정진호 글, 그림 / 한빛미디어)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이가 생겼다는 건 그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신호였으니까..


이제 그 아이가 15살 중2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독서모임에서 우연히 이 책, '철들고 그림 그리다(정진호 글, 그림 / 한빛미디어)'를 소개받았다.


이 책은 그렇게 내 안에 간직한 채 다시 한번 꼭 꺼내고 싶었지만 쉽사리 꺼낼 수 없었던 그것을 꺼내 들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아주 조금씩 그림을 그려 왔었다.


우린 모두 예술가로 태어났다는 정진호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나 또한 그럴 거란 생각에 고무되었다.

철들고 그림 그리다 (정진호 글, 그림 / 한빛미디어)

그림이 아니라도 괜찮다.

문학적 글이 아니라도 괜찮다.

모차르트 같은 천재적 음악가는 아니라도 괜찮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 마흔에 진정으로 나의 정체성을 찾고 그 속에서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가장 큰 의미가 될 것이다.


정진호 작가의 책, '철들고 그림 그리다'는 그것을 생각하게 해 준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내 안에 있는 예술가를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당신이 불혹의 나이 마흔, 거기에 더해 제2의 사춘기를 겪고 있다면 꼭 읽어 보길 추천한다.





                     그렇게 나도,

                        철들고

                          그림

                     그리고 싶다.


                          아니

                     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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