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엔 향기가 없더라도
지금이 아니어도 기회는 있어
창푸악에서의 약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떠나야 하는 날이 바짝 코 앞으로 다가왔다. 구글지도에 별만 찍어두고 아직 열어보지 못한 보석상자들이 수두룩한데, 정든 단골식당들에도 마지막으로 한 번씩 모두 걸음하고 싶은데, 남은 시간은 단 이틀뿐이다.
짧은 여행에서는 항상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다시없어!’라는 생각에 욕심내어 무리해서 먹고 마시곤 했는데, 세 달의 장기여행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지금 당장 배를 채울 만큼만 먹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 이외엔 사지 않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떠난다는 건, 또 다른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이기에.
인생은 끝없이 걸어가는 것. 그 누구도 길 위에서 마주치는 그 모든 것들을 전부 주머니에 넣을 수는 없고, 멈추어야 할 다음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다음을 위한 공간들을 기꺼이 기쁘게 비워둘 수 있게 한다.
단골집으로 가는 길
창푸악에서의 마지막 이틀 중 첫날은 ‘단골집 순례일’로 정했다. 지난 한 달간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든 단골집들이 꽤 여럿인지라 마지막까지 어느 식당에 순례의 깃발을 꽂아야 할지 갈팡질팡했지만, 막상 아침햇살의 뜨거운 포옹을 받으며 길을 나서자 걸음이 자연스레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마음을 이끌어갔다.
나 말고는 좀처럼 사람이 오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콘도 뒷골목을 지나, 알록달록한 빨래들이 파란 하늘아래 풋풋한 새 숨을 내쉬는 익숙한 풍경을 지나, 제멋대로 자란 풀과 나무뿐인 허허벌판을 가로지르면, 마침내 나타나는 단골집으로 가는 골목길.
꽃은 오늘도 활짝 잎을 펼쳐 오늘의 태양빛을 맞이하고, 담벼락 앞에 나란히 세워진 오토바이들은 주인이 잠시 떠난 동안 따끈따끈한 낮잠을 잔다. 네모난 건물과 까만 전선들마저도, 한낮의 따스함을 담뿍담뿍 껴안은 정오. 지도를 보지 않아도, 걷다 보면 어느새 익숙한 식당 앞에 다다른다.
화려하지 않은 온화함
‘WELCOME’ 팻말이 걸린 자리는 오늘도 비어있다. 햇살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의자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이젠 서로 얼굴이 익은 주인청년과 눈인사를 나누며 오늘의 첫 끼니를 주문했다. 창푸악을 떠나기 전의 마지막 방문이니 이 집의 특기인 매운 똠얌쌀국수를 주문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이 식당엔 치앙마이를 영영 떠나기 전에 한 번쯤은 더 올 것 같아서 해산물커리덮밥을 주문했다.
감자, 당근, 양파, 간고기를 달달 볶다가 하이라이스와 카레가루를 반반씩 넣고 물을 부어 솥에 가득 끓이는 엄마표 카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음식 중 하나였는데, 처음엔 농도가 묽어서 국에 가깝다가, 끼니마다 반복해서 데우면 마지막 남은 것을 긁어먹을 즈음엔 국물이 졸고 또 졸아 녹진해져있곤 했다. 나는 국처럼 묽은 카레도 졸아서 몽글몽글해진 카레도 전부 좋아했는데, 집에서 오랫동안 달달 끓이면 엄마손맛이 듬뿍 배어드는 이 마법가루들에 다름 아닌 밀가루가 들어있어 밀가루를 끊은 뒤로는 ‘엄마표 카레’까지 덩달아 먹지 못하게 되었다.
비록 어린 시절 며칠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던 그 맛과 꼬옥 같은 맛은 찾을 수 없지만, 치앙마이에서 새로이 ‘내 영혼의 음식’으로 등극한 이 커리덮밥엔 화려한 커리요리들과는 달리 소박한 집밥느낌이 가득하다. 처음 단골식당들을 찾아내 드나들기 시작한 무렵 자주 먹었던 매콤한 바질오징어덮밥도 맛있지만, 달걀을 넣어 커리가루와 함께 달달 볶아내는 이 태국식 커리덮밥엔 그야말로 며칠씩 연달아 먹어도 질리지 않는 포근한 온화함이 있다.
떠들썩한 푸짐함
다음날엔 우연찮게 다른 식당에서 또 커리를 먹게 되었는데, 이 집은 문도 벽도 없이 뻥 뚫려있는 동네식당들과 달리 우리나라로 치면 ‘한정식집’에라도 온 것 같은 고즈넉한 외관에 널찍한 실내엔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태국 식당들의 가격은 ‘에어컨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로 나뉜다고들 하는데, 재미있는 건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즐겨찾는 –에어컨 없는- 동네식당들의 가격이 한 그릇 당 60-80바트 –한화로 2,500원에서 3,300원 사이- 정도로 대체로 비슷하다면, 에어컨이 있는 식당들은 대체로 가장 저렴한 에피타이저의 가격이 보통 100바트 언저리에서 시작되는 것을 하한선으로 하여, 상한선은 딱히 없다는 거다.
이 식당의 경우엔 메인메뉴들의 가격이 150-300바트 사이였는데, 드레스코드 같은 걸 따로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에어컨 있는 식당들의 평균적인 가격이 이 정도인 것 같다. 한화로 환산해 보면 메뉴 하나 당 6,000원에서 12,000원 사이이니 여행 중인 한국인들은 여전히 ‘저렴하다’고 느낄 가격이지만, 동네식당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결코 작지 않다.
이날 주문한 메뉴는 ‘게살커리’인데, 가격은 279바트로 전날 먹은 동네식당의 해산물커리덮밥의 약 네 배에 달했다. 밥은 포함되어있지 않아서 바질해산물볶음밥을 따로 주문했는데, 이런, 값을 톡톡히 하는 어마어마한 양이 접시에 담겨 나왔다.
치앙마이에서 두 달간 이런저런 식당들을 돌아다녀보니, 가격이 좀 더 비싼 식당들은 대부분 비싼 그만큼 담아주는 양도 많다. 뻥 뚫린 동네식당들이 먹으면 딱 적당히 배가 차는 1인분을 내어준다면, 웨건을 세워두고 장사하는 노점들은 0.8인분, 에어컨이 있는 고급식당들은 1.2인분 정도를 내어준달까?
볶음밥 종류는 특히 더 양이 넉넉한 편인데, 아마도 이런 식당들은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와서 다양한 메뉴를 시키고 볶음밥은 나누어 먹는 경우가 많아 그 기준으로 한 접시 양을 정해둔 듯하다.
‘가격이 비싼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게살커리 속엔 두툼한 진짜 게살덩어리 여러 개가 먹기 좋게 발라진 채 숨겨져있었다. 메뉴판에는 ‘Crabmeat’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는데, 맛과 식감, 생김새를 보니 제법 큰 가재류에서 발라낸 살인 것 같다. Crabmeat의 양도 많고 상태도 매우 신선해서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니 왜 이 메뉴가 이 식당에서 제일 비싼 지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여태까지 경험해 본 태국식 커리는 계란을 풀어서 뿌빳퐁커리처럼 걸쭉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수프에 가깝게 만든 것 크게 두 가지인데, 전자가 대체로 –게든 새우든 오징어든- 어떤 재료로 요리하든 편차가 비교적 적다면 후자는 향신료들의 조합에 따라 그 맛이 완전히 천차만별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향신료의 조합이 조금 낯설 때도 있긴 하지만, 좀 더 깊은 맛을 내는 건 역시 국물요리인 후자인 것 같다. -아무래도 한국인은 찌개의 민족이니까-
만물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느닷없이 앞에 차려진 잔칫상 같은 한 상. 비록 식탁에 함께 둘러앉은 사람은 없지만, 접시에 푸짐하게 담겨 나온 음식들과 와구와구 이야기를 나누며 먹어도 먹어도 여전히 산처럼 쌓여있는 넉넉함을 만끽하다 보니 나른한 여름날의 오후 한 조각이 어느덧 터질 듯 빵빵하게 채워져있었다.
시작은 똑같은 노란 카레가루 한 줌이었을 테지만, 완성된 모습은 극과 극인 어제와 오늘의 카레 한 접시. 인생이란, 단 한 조각도 서로 같은 것이 없으며, 그 모든 조각들이 모두 모여야만 완성되는 퍼즐과도 같지 않을까. 소박한 온화함을 담은 접시도, 떠들썩한 푸짐함을 담은 접시도, 모두 일상의 어딘가엔 꼭 놓여야 할 조각들이기에. 어떤 것이 더 낫다 말할 수 없다. 그 모든 맛들엔, 광활한 인생에서 오직 그 조각만이 채울 수 있는 고유한 영역과 존재의 이유가 있을 뿐이다.
단골식당에서 나와 몇 걸음 걷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노란 차양의 도너츠가게는 어지러운 퍼즐 속에 애매하게 비어있는 한 자리를 채워 넣기 위해 오랫동안 찾아 헤맨 딱 들어맞는 조각과도 같은 존재! 알러지 때문에 밀가루와 유제품을 먹을 수 없게 된 후 어쩔 수 없이 내 인생의 퍼즐에서 ‘도넛’의 자리는 비워둘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옆 단골식당에서 기분 좋게 배를 채운 뒤에 나선 어느 오후의 산책길에서 ‘쌀가루로 만든 채식도넛’이라는 글귀를 발견하고 눈이 번쩍 뜨인 뒤론, 이 노란 차양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자그마한 빈자리가 딱 맞는 도넛조각들로 빈틈없이 채워지고 있다.
한 입에 넣으면 딱 좋은 앙증맞은 크기에 빵과 떡의 중간에 딱 방점을 찍은 듯한 쫄깃쫄깃한 식감과 파삭-하고 얇은 유리처럼 부서지는 글레이즈가 만들어내는 환상의 조화가 이 도너츠의 매력!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오늘도 한 봉지를 사들었다. 걸음 따라 달랑달랑 흔들리는 도너츠봉지에 마음도 덩달아 팔랑팔랑 나비 닮은 날갯짓을 하며, 마침내 꼭 맞는 조각을 찾아 하나의 그림을 그려낸 퍼즐 위로 훌쩍 날아올라 고공비행을 한다.
그 꽃엔 향기가 없더라도
직접 담근 콤부차와 갓 따온 과일들을 좌판에 색색별로 가지런히 진열해 둔 동네세탁소를 지나, 키가 제각각인 화분들을 나란히 세워 담장을 지어둔 모퉁이 집 앞에서 작은 교차로를 건너, 무성한 꽃나무가 담장을 뒤덮은 이층집을 지나면, 익숙한 상점들이 맞이하는 길 끝에 나만의 작은 아지트가 있다.
노트북작업을 할 수 있는 ‘공동작업공간’을 찾다가 발견한 이 귀여운 집은 절반은 카페로, 나머지 절반은 시간 단위로 이용권을 끊을 수 있는 ‘Co-Working Space’로 운영되고 있다. 처음 이 집을 찾았던 날엔 ‘가자마자 이용권부터 끊어야지’하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일을 시작하기 전에 더위부터 좀 식히려고 1층 카페에서 음료부터 한 잔 시켜두고 산이요, 물이요, 하며 마시다 보니 어랏, 맛이 제법이지 않은가! 메뉴판을 살펴보니 음료종류도 다양하고, 대체우유옵션도 잘 마련되어있었다.
차를 마시며 바람이 잎사귀를 산들산들 흔들며 지나가는 여름의 풍경을 관조하다 보니 하루가 훌쩍 다 지나갔고, 처음 계획과는 정반대로 이후 근처 단골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엔 으레 이 카페에 들러 터줏대감인 호랑이인형과 나란히 앉아 빈둥빈둥 차 한 잔 비우며 창밖에 흘러가는 시간 따라 신선놀음 한 판 하는 것이 나만의 작은 의례가 되었다.
오늘 주문한 건 초록과 빨강이 이루는 보색의 조화가 경쾌한 마차딸기라떼. 이제는 서로가 눈에 익은 사장님이 음료를 내 탁자에 놓아주자마자 ‘꽃도 함께 즐기라’는 듯한 눈짓과 함께 어디선가 장미꽃다발을 가져왔다. 곧 다가올 밸런타인을 맞아 작은 카페는 온통 꽃장식 투성이. 개중 하나인 모조장미로 만든 장식일 뿐이지만, 비록 향은 없어도, 선뜻 꽃다발을 건네준 그 마음만은 더없이 투명한 진짜. 빨간 장미꽃잎에 물들어, 오후의 한 조각이 설레는 장밋빛으로 물들었다.
빨대로 호록호록 순식간에 들이켜버리기 때문일까. 차가운 음료를 마시면 어쩐지 시간이 두 배로 빨리 지나가는 기분. 따뜻한 초콜릿을 한 잔 더 주문했더니, 사장님이 이번엔 뽀얀 거품 위에 ‘LOVE’ 네 글자를 쌉싸름하게 띄워주었다.
말은 비록 몇 마디 오가지 않았지만, 사소한 마음씀들이 놓은 구름다리가 어느덧 저 하늘에 닿아, 잔을 남김없이 비우고 카페 문을 나설 때엔 내 마음도 파아란 풍선을 매단 듯 저 높은 구름 위로 두둥실 떠올라있었다.
태양이 졌다 하여도
다시 찾을 날이 있기를 바라며, 저물녘의 나무들이 저마다 신비로운 빛깔을 뽐내고 있는 카페 뒤편의 작은 정원을 잠시 걸어보았다. 오직 오늘 이 찰나만의 찬란한 색들을, 저 하늘 꼭대기까지 훌쩍 자라난 마음속에 무지개 그려 넣듯 차곡차곡 쌓으며.
빛이 화사하게 만물을 비출 때에도, 어둠이 어스름한 커튼을 내렸을 때에도, 그 모든 빛깔들엔 변치 않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태양이 졌다 하며 빛이 바랜 것이 아니다. 그저 새로운 빛깔을 드러냈을 뿐.
이제 하루가 더 지나면 더 이상 내 집이 아닐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분홍색으로 가득한 동네 옷가게의 고사장님이 오늘도 발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하이얀 털을 뽐내며 쪼르르 마중을 나와주었다.
어둠을 헤쳐나가다 보면 오아시스처럼 홀연히 불을 밝히며 나타나는 밤의 청과물점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걸음이 멈추었다. 내일이 지나면 아마도 영영 이별하고 말 창푸악 콘도의 뒷골목.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정든 풍경을 찰칵- 엽서처럼 네모나게 찍어 빨간 우체통에 꽂아 넣듯 마음 한 편에 톡- 던져 넣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훗날에, 느닷없이 날아든 반가운 소식처럼 불현듯 다시금 이 밤의 조각들을 꺼내보게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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