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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aiji Mar 28. 2019

고통, 고난, 고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고통은 느낀다.

고난은 겪는다.

고생은 한다.


고난과 고생으로 고통을 느낀다. 고난은 수동적으로 겪고 고생은 능동적으로 행한다.

달리기는 선수가 아닌 이상, 누가 시켜서 하기보다 스스로 덤벼들어서 고생을 자처한 것이다. 근육을 고통스럽게 단련을 하면 신기하게도 더욱 발달한다. 그래서 정신이라는 근육도 비슷해서 고생해본 사람이 철이 빨리 든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배울 수 있는 만큼은 충분히 젊다. '          -아이스킬로스-

             

젊을수록 머리는 명석하여 배움이 많다. 배움의 양만큼 그들은 젊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은 떨어지고 책을 잠깐 보아도 눈이 쉽게 피로하다.  배움의 양은 점점 줄어든다.


매일같이 아차산을 뛰어다니는 한 누나를 보고 사람들은 미쳤다고 한단다. 나는 반문했다.

"피시방에서 배틀그라운드를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요즘엔 운동하는 여자가 더 매력적이에요."

"그렇지? 여자 허벅지가 나정도는 두꺼워야지!"

"그럼요. 이상화 정도는 되어야 매력 있죠."

 

달리기도 배움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책을 한 장 더 읽고 100미터를 더 달릴 수 있는 한 우리는 그만큼 젊은것이다.

젊다고 술과 담배로 젊음을 해치고,

젊다하여 배움을 게을리한다면 충분히 늙은 것이요, 젊은 꼰대가 되기 쉽다.

간혹 갓 스무 살인 젊은 친구들이 여행을 다니고, 배낭을 메고 홀로 산에서 야영을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기특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손목터널 증후군에 걸리기보단

근육통에 시름 거리고, 어두운 산속에서 외로움과 고독을 마주하는 청춘이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끝까지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길

적어도 끝까지 걷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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