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오지랖의 오묘함

by 탈고

숍에 스텝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섯 명이였는데, 이제 한 끼에 10인분 이상을 준비해야 하다니. 어마어마하다. 사람이 늘수록, 입이 많아질수록 오고 가는 말이 많아지고, 오해가 많아지며, 감정적인 마찰이 잦아지는 지라 그중에서 소외당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케이 형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지만 어딘가 소외당하고 있다고 느끼셨었나 보다. 본인이 나이가 좀 많아서 일 수도 있고, 그 세대차이에서 오는 대화방법이나 주제, 성향이나 선호하는 삶의 카테고리가 달라서 일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 단호하게 작별을 고하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셨다. 하지만 곧 다시 내려오셨다. 사모님과의 대화가 오갔을 것 같다. 소리 소문 없이 도착한 케이 형은 어느 순간 사장님을 도와 외부 공사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 모두는 파도가 좋아 서핑을 타러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변한 건 없었다. 여전한 거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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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핑을 포기했다. 케이 형에게 가서 아무렇지 알은 듯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애들 다 서핑 타러 가니까 형도 같이 가서 같이 타보라고 했다. 내가 대신 사장님을 도와주겠다고. 케이 형의 표정이 환해지면서 얼른 슈트를 갈아입으로 가셨다.


사실 케이 형은 이곳에 오면서부터 서핑을 타고 싶어 했었다. 아마 서핑을 즐기는 대부분의 스텝들과 어울리려는 형만의 해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도 전에 사장님을 따라 바를 만드는 작업에 투입되어(케이 형은 바텐더다.) 하루 종일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공사를 도왔었다. 물론 그 사이에 대부분의 스텝들은 서핑을 즐기기고 있었다


관계에서 오지랖의 정의는 굉장히 모호하다. 보통은 상대방이 나의 관심을 달가워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관심인지 오지랖인지를 판단하지만 아닌 것 같다. 결국은 나에게 달려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관계의 정의는 나에게 달려있다. 관계의 유지를 위해 내가 적당한 희생을 할 자신이 있는지는 관심이고, 상대의 희생을 강요하면 오지랖이 아닐까. 울타리를 만들 것인지, 목줄을 만들 것인지는 본인에게 달려있다는 말이다. 목줄은 분명히도 이득을 낚아 올리기 위한 올가미이다. 무언가 득 될 게 없나 떠보고, 긁으며, 자신이 아는 것을 발판 삼아 상대를 밝고 올라서려는, 그래서 우월함을 쟁취하려는 위선자의 무기가 바로 목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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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울타리는 다르다. 그것은 곧 신뢰다. 오랜 시간과 노력과 희생이 들지만 그만큼 튼튼한 신뢰가 생기고, 어떠한 외부적인 공격도 함께 견뎌낼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그 울타리는 바보들이나 만드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알고 있었다. '왜 내가 희생해야 하지? 행복해지려면 나부터 챙겨야지 왜 남을 신경 써.'라며 말이다.


서핑을 타고 온 케이 형은 나에게 다가와 고맙다고 했다. 그 말속에 고향으로 다시 되돌아 가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시간 동안 형이 느꼈을 많은 감정들이 묻어 있더라. 그 순간이 계속해서 머리에 그리고 마음에 맴돈다. 울타리를 짓기 위한 말뚝 하나가 가슴에 박힌 느낌이었다. 그 말 한마디는 그때까지 나만 행복하면 된다며 욜로나, 소확행, 힐링 등을 부르짖으며 살았던 순간들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여기서 함께 지내는 몇몇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아는 눈치다. 적당한 희생. 아니 그건 희생이 아니다. 배려다. 그 배려로서 얻는 기쁨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아는 것 같다. 말은 하지 않아도 말이다. 아직까진 신기하다. 그런 마음가짐이. 나도 좀 더 그렇게 마음의 밭이 넓어 지길, 그래서 더 많은 여유를 심을 수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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