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발이면 충분해

by 탈고

바다에 묶어둔 통발을 찾으러 가는 날이었다. 숍 뒤에 나뒹굴던 통발을 보자마자 호기롭게도 앞바다의 암초에 묶어 전복과 돔과 문어를 잡아 오겠다고 한 게 화근이다. 지호 말에 따르면 돌돔과 전복과 문어가 분명히 그곳에 많다고 했으니... 뭐.


사모님이 통발에 넣으라고 삼겹살을 주셨다. 거기 까진 괜찮았는데, 통발을 들고 "오늘 설치하러 간다"라고 하자 사람들이 툭툭 한 마디식 던졌다. 암튼 모두가 굉장한 걸 바라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괜히 잘하고 싶었다. 기대에 대한 부응,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 거기에 자존심까지 더해져 문어는 한 마리 잡아야 면이 설 것 갔았다. 하지만 통발엔, 아니 암초에 통발 자체가 없었다.


이틀간 파도가 거칠었다.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이길까라는 합리화를 하며 해변으로 나왔다. 왠지 미안했다. 실망할 것 같아 무섭기도 했다. 잔뜩 기대하고 있을 사람들이 통발 자체가 날아갔다고 하면, 삼겹살까지 내어주고 통발도 잃어버렸다고 하면, 사람들이 뱉어낼 어떤 형태의 탄식이든 퍽 비수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다들 웃고 말았다. 사장님은 다음에 같이 가서 드릴로 박아 버리자며 농담도 했다.



관계라 것에 왜 그렇게도 많은 무게를 두었을까. 내가 힘들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 외롭거나, 우울할 땐 배후에 언제나 사람, 타인, 관계가 있었다. 얼마나 무거웠고, 무서웠던지 항상 깔려 뭉개지는 건 나였다. 마음이 약하다는 건 핑계다. 그냥 혼자 민감해서였다. 거기엔 이기적인 면도 상당하다. 나는 하는데 넌 안 해? 네가 하면 나도 해야 하잖아. 넌 나를 어떻게 생각할 까. 좋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너한 텐 좋은 사람인 '척'이라도 해야지. 그럴수록 힘들었다. 그 감당 못한 질문과 가면과 가식과 답을 찾을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을 떠보고 싶은 조급함과 그 마음에 비친 그 누구의 자식도, 누구의 동생도, 누구의 친구도 아닌 기괴한 얼굴의 내가 보기 힘들었다.


조금만 가벼워지면 되는데. 가볍게 생각하면 되는데 참 그게 안되었다.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데 나는 너무 크고 튼튼한 그물을 들고 있었던 것 같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을 그물로 잡아 올리려 하니 언제나 바다로 빠지는 어부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아주 작은 통발이면 충분한데 말이다. 그렇게 잡히면 좋은 거고, 파도에 떠밀려가면 웃긴 해프닝으로 여기면 그만인데 나는 너무 큰 그물을 들고 살아왔던 것 같다.


내 주변엔 통발 설치하러 간다고 하면 삼겹살도 덥섞네어 주는 사람도 있고, 같이 암초까지 가주는 사람도 있으며, 빈 손으로 와도 웃고 위로해주는 사람도 있다. 아주 확실히 잡아버리자고 드릴 들고 달려는 사람도 물론이다. 작은 통발은 고사하고,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그냥 같이 웃고, 넘어서게 해주는 단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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