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안

by 탈고

여기선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케이 형이 다시 서울로 돌아간 것부터 시작해서 사모님과 우리 사이에 조금씩 생겨나는 미묘한 마찰들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거기에 뭔 놈의 통풍에 편도염까지 겹치니, 강릉 사천 앞바다에서 살아가기가 조금은 버거워지고 있었다. 그럴 땐 덮어두고 기분전환부터 해야 제맛이다. 어버이날도 왔겠다 우선 부산을 가고 보자 싶더라.


때마침 같은 부산 사람인 뚜뚜도 여름옷 챙길 겸 함께 내려갔다. 부산을 오가는 장작 14시간여 동안 우리는 차 안에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삶의 깊숙한 곳에 있는 조금은 촉촉한 이야기부터, 언덕 위에 뜬 구름 같은 이야기들 까지. 그중에서 어떤 단어를 시작으로 이어진 주제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의 앞날에 대한 이야기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사천 앞바다의 하파 서프에 모인 우리 모두가 코로나 때문에 원래의 계획이 틀어진 사람들이다 보니, 이번 여름이 끝나면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번 여름 이후의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 없다. 다른 가족들은 모르지만 최소한 뚜뚜와 나는 그렇다. 메인 서핑 강사이자 서핑에 인생을 갈아 넣고 있는 뚜뚜는 '아마도' 서울에 있는 친형의 떡집을 도와주기 위해 간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고, 간다고 하더라도 도와주고 난 이후의 삶에 대해선 계획이 없었다. 나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나도 이번 여름이 끝이 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는 언제 부산 오냐, 언제 호주 가냐, 호주 가기는 가냐, 강릉에선 뭐하냐, 여름 끝나면 뭐 할 거냐 라고 물어봤을 때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호주를 가고자 했던 목적을 강릉에서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도 같고, 사장님도 이번 시즌이 끝나면 같이 일해볼 생각 없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하겠다 확신을 가지지도 않았다. 여전히 여행에 대한 욕구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단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뿐.



우리는 차 안에서 이러한 우리의 공통점 들을 말하며 꽤나 즐거워했다. 부산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이야기하며 이미 미래가 정해진, 그러한 안정감을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우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있었다. 표지판 없는 길 위에서, 불만보다 불안을 선택한 우리들이기에 몇 개월 후의 어느 길 위를 걷고 있을지 스스로도 예상할 수없다는 것에 가슴 설레어할 줄 알았다.


묘미다. 삶을 살아가는 묘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비포장 도로를 걷다 보면 생기는 '불안' 말이다. 불안은 남들이 하는 것과 하라는 것에 휩쓸리다 생기는 '불만'을 참고 살다 보면 잊여지는 묘미다. 불안은 약간의 떨림으로 변하고, 떨림은 설렘으로 바뀌곤 한다. 그런 떨림과 설렘으로 삶을 셈하면 어떨까. 그저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초침이 아닌, 눈을 감으면 느껴지는 나의 심장 박동으로 삶을 셈하면 어떨까라는 말이다. 심장박동이 멈추는 순간은 떨림과 설렘이 멈추는 순간이다. 그때가 죽는다는 의미와 가장 맞닿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정해 놓은 표지판을 보기 시작하면, 누군가 가라는 대로 가기 시작하면, 그때는 이미 숨죽여진 상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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