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로드가 완료되면 그땐 괜찮을까.

by 탈고

사람마다 저장공간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게 좀 작은 편이다. 중학교 시절 첫 mp3인 아이리버처럼 256mb 정도.


이곳, 강릉 사천해변의 하파서프에 처음 올 때, 나는 모든 저장공간을 비우고 왔었다.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위한 비움 보단, 자연스럽게 비워졌었다. 비워졌기 때문에 왔으려나.

아무튼, 이곳에서 뚜뚜를 만나고, 성빈이를 만나고, 마엘을 만나고, 상록이를 만나고, 지호를 만나고 또 만나고, 만나고, 몇몇은 나가고, 또 들어오고, 또 나가고 그렇게 나의 저장공간이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반복하는 어느순간 용량 초과에 도달했다.

옛날 나의 노트북은 그랬다. 용량이 초과하면, 자동으로 포맷이 되더라.



사람마다 저장공간이 있다. 나는 좀처럼 그 공간이 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줄어들면 줄어 들었지. 이제는 사람과 친해는 방법도 뚜렷하게 모르겠다. 가벼운 대화가 왜 그렇게 어려워지는 걸까. 포맷이 자주 되면 컴퓨터가 망가진다던데... 그래서 점점 멍청해지는 건가?

익숙해질 리 없는 몇 번의 포맷이 조금씩 내 감정의 로딩 시간을 느리게 하는 걸까. 정을 주고, 받는 로딩바는 각자의 거리감만큼이나 한참을 버벅거리며 좀처럼 앞으로 나갈 생각을 않는다. 마치 완료되어 버리면 또다시 용량을 초과해버릴까 봐 겁먹은 아이의 발버둥처럼.


아직 나의 용량만큼 사람을 담는 게 서툰 걸까 아니면 외로움에 서툰 걸까.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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