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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웃을 수 있었을까?

Antelope canyon, USA

by 구수정



그와 나는 벼르고 별렀다. 흔히 알려져 있는, 그래서 한국인이 바글 대는,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모를 그런 곳은 가지 않겠다고. 그래서 선택했다. 애리조나 주에 있는 엔텔로프 캐년. 발견된 지 얼마 안 되었고, 미국인들도 알음알음 온다는 그 아름답다는 곳. 캐년은 많고도 많지만 이런 곳은 없다는 것. 127시간 영화의 숨 막히는 공간. 그래서 우리는 언제 갈지도 모르는 다음 목적지를 미리 정했고 이 꿈은 약 2년여 만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워낙 정보가 없는 터라 소문만 무성하게 들었던 이 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발 빠르게 여행 후기를 올리는 한국인들과는 달리 이들은 게으르다. 아무리 구글링을 해도 어떻게 가는 것인지 입장료는 어떻게 되는지 따위가 나오지 않더란 말이다. 게다가 둘 뿐인 여행이 아니라 가족 여행으로 용도변경되면서 가이드까지 해줘야 하는 무거운 중책을 맡았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트럭투어를 신청해야지만 그곳에 접근할 수 있으며, 11시가 가장 예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아침부터 서둘러 앤텔로프 캐년을 향해 달려갔다. 부푼 마음을 안고 이른 아침부터 움직인 나는 쏟아지는 잠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조수석에서 나는 잠을 청하였던 것이다. 아...... 그것이 죄라면 죄일 테지요. 길을 잘 못 든 우리는 결국 간당간당하게 도시에 도착하였지만, 우리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투어 버스를 보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11시를 놓치다니. 망연자실한 우리는 티켓부스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운전을 했던 그는 얼굴이 붉으락 해졌고, 나는 내 죄인 양 하얀 백지장이 되었다. 가족들은 중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래도 코 앞에서 놓치지 않은 건 다행이라며, 다음 시간 오후 1시 30분을 타면 될 거라며 창구의 아줌마는 우리를 위로했다. 우린 1시 30분 티켓을 예약해 두고 근처 숙소에 짐을 풀기로 했다. 꼭두새벽부터 달렸던 지라 뱃속은 출출했다. 간단하게 라면으로 때우고, 비좁은 차 안에서 구겨질 대로 구겨진 몸을 피며 간단한 휴식을 취했다.

또 늦으면 큰일 날 세라 15분 전에 도착한 우리. 시간이 다가오자 같이 투어 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일본인 커플과 미국인 노부부, 중국인 가족, 그리고 우리 가족 이렇게 옆이 훤하게 뚫린 투어 트럭에 타자 꽉 찼다. 원주민 가이드는 정시에 출발하자며 시동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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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 승용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와 황급히 내렸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탄 투어 트럭은 우아하게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 이 투어 하려고 급하게 들어온 거 아니야?"
배가 두둑이 나온 인심 좋은 시골 아저씨처럼 생긴 노랑머리 아저씨는 이미 자기가 투어 트럭을 놓친 줄 알고 울상이었다가, 우리가 눈치 없이 손을 흔들자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참 아저씨 표정 가관이었다. 울었다가 웃었다가. 저 아저씨는 오늘의 다음 투어는 없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래, 여행이란 때론 계획된 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


"우리가 11시에 딱 도착했으면 어땠을까?"
"우리가 제시간에 하더라도 만석이어서 못 탔을 수도 있어."
"맞아. 그럼 똑같이 1시 30분에 탔을 거야. 제시간에 왔는데 못 탔으면 더 억울하지."
"우리가 점심을 못 먹어서 신이 우리에게 점심시간을 준거야."

달리는 트럭 위에서 우리는 캐년의 먼지를 마시며 서로에게 뒤늦은 위로를 했다. 우리가 멀어질 때까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든 그 아저씨가 계속 생각난다.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모습도 다시 떠오르고. 내가 만약 저 아저씨라면 웃으면서 투어 트럭의 뒤꽁무니를 향해 손을 흔들 수 있었을까?


@2014 Antelope canyon,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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