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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운칠기삼

워런 버핏 인터뷰에서 배운 운의 중요성

by 진경

대다수의 사람들은 운을 좋아합니다.

운이 나쁘길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지요. 로또 당첨, 코인 대박과 같은 천운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과학 기술이 발전한 덕이 우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서도 소식을 나누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 혹은 가까운 친구의 자리까지 위협하는 시대를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과학 기술이 발전했어도 점쟁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대 신관들처럼 밤하늘을 살피는 대신 사주, 관상, 타로 카드처럼 다른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심지어 최신 과학 기술인 인공지능이 사주와 타로 카드 풀이 도구로 쓰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공 역시 좋아합니다.


성공, 그리고 그에 따르는 인기와 금전적인 보상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드뭅니다. 성공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합니다.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거나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SNS를 운영하거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세컨잡이나 서드잡을 가진 사람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그리고 그 중 몇몇은 진짜로 성공을 거머쥡니다.

주변에서는 성공한 사람을 우러르고 부러워합니다. 그 사람처럼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그 사람의 비결을 배우려고 몰려듭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공한 사람 대부분이 운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성공할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재주가 좋았거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 역시 그의 성공에 숨겨진 비결이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의 비결을 따라하면 자신도 성공에 가까워지리라 여기고 그의 생활 습관이나 노력의 정도까지 따라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내뱉는 "운이 좋았어."라는 표현은 겸양의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또한 타인이 성공한 사람에게 내뱉는 "운이 좋았네."는 대개 대상의 노력의 폄하하고 비아냥거리려는 의도로 쓰입니다.


실은 저 역시 그렇습니다. 국세청에서 "올해는 제법 돈을 벌었으니 세금을 내렴"이라는 고지서를 발급해 주었던 유일한 웹소설 작품의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저는 운을 꼽습니다. 그보다 더 공들여 썼고 실제로 그보다 더 잘 썼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이 많은데 그 작품만 유독 잘 팔린 건, 그 당시 독자분들이 그 작품을 원했던 데다가 코로나라는 시기가 겹쳐 웹소설 시장이 크게 부흥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제게 "네 작품이 잘 팔린 건 운이 좋아서였다"라고 말한다면 저는 다시는 그 사람과 겸상하지 않을 테죠. 모순되었다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리 대단한 성공이 아니었음에도 그렇습니다.








때때로, 어쩔 때는 좀 더 자주, 작가들과 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직종이라서인지, 연차나 호봉제의 따귀를 갈기며 오로지 작품의 성공만으로 현재의 위치를 평가하는 직종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를 비롯한 작가들은 끊임 없이 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지? 내 작품이 더 좋은 자리에 놓였다면 더 많이 팔렸을 텐데.

나는 운이 좋은 편이기는 해. 잘 파는 건 모르겠지만 담당자들이 꼭 좋은 자리에 전시해주기는 하더라고.


저는 오락가락했습니다.

이정도면 운이 좋은 편인데 아직 제대로 된 성공을 못했다니 내가 글쓰기에 별로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싶은 자괴감에 몸부림치기도 하고, 그래도 이정도로 글을 쓰는데 운만 좀 더 따라주면 대박이 나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 사이에서 저는 방황했습니다.


대체로 이런 식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지? 진짜 좋은 날짜에 좋은 자리에서 작품 한 번 팔아보고 싶다. 무슨 사건 사고 나는 날에 구석에 박혀 있으니 매출을 낼 재간이 있나! 나도 운만 좀 더 좋으면 잘 팔 수 있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작가라면 더 좋은 글을 쓸 생각을 해야지! 내 작품이 진짜 좋았다면 어떤 날 어떤 식으로 작품을 내놓더라도 잘 팔렸을 거야. 솔직히 나랑 같은 날 작품 출간한 작가들 중에서 잘 된 작가도 있긴 했었잖아. 혹시 내 운을 코로나 때 다 쓴 건 아닐까? 챗GPT야, 나 언제쯤 운이 좋아질지 사주 좀 봐주라! 나 올해는 성공하니?








이러던 제게 최근 은퇴를 선언한 워런 버핏의 인터뷰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Nobody know what the market is going to do tomorrow, next week, or next month.


You just never know then it'll happen.


The luckiest day in my life is the day I was born,
because I was born in the United States.
I was just lucky.


이런 걸 우문현답이라고 하지요. 역시 버핏 할아버지께서는 대단하신 분입니다.

주식 투자에 대한 질의응답이었지만 거기에는 삶과 성공에 대한 깨달음이 깊이 녹아 있었습니다.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니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놓고 그저 기다릴 뿐이라는 말은 언제쯤 내 작품에 애정을 쏟아주는 출판사와 담당 편집자, 내 작품을 더 잘 팔기 위해 애쓰는 MD, 그리고 내 작품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갈 또 다른 텍스트의 부흥기가 찾아올지 모르니 일단 좋은 작품을 준비하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자신이 미국에서 흑인이 아닌 백인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는 말에는 절로 겸손해지기까지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지금이 아닌 과거에 태어났다면 지금처럼 글을 쓰는 것 자체를 상상 조차 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버핏의 말은 어떤 의미에서 참 고리타분했습니다. 이미 최소한의 운은 가졌으니 가진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 다시 찾아올 기회를 준비하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라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고리타분한 말이 그렇듯이 고리타분할수록 정답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술 마시지 말고 운동 열심히 하는 게 건강의 비결입니다, 같은 말처럼요.








성취나 성공이 노력과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능력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저 역시 굉장한 능력주의자였습니다. 꽤 오랫동안 세상만사 노력으로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만 글을 오래 쓰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노력과 능력은 성공의 주요 요소이고, 노력이나 능력 없이 성공한다면 언젠가 실체가 드러나게 되리라는 게 여전한 제 생각입니다. 다만, 거기에 조금씩 운이라는 요소를 수용해가고 있습니다.


제가 현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은 순전히 운이었습니다.


제 글쓰기 행위를 지지해줄 배우자를 만난 것도 운이 좋아서였습니다. 회사에 다니던 수많은 사람들 중 이 사람과 사랑에 빠진 것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사람와 너무도 똑같이 생긴 직원이 바로 옆자리에 있었는데도 저는 하필 이 사람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제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 역시 우연이었습니다. 원래는 전공을 살려 웹툰 작품을 준비하려던 차였고, 마침 우울증이 심해 죽고 싶었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 미칠 것 같았고, 그러던 차에 시도한 것이 하필 '인터넷에 뭐라도 글을 올려보자'였던 건 정말이지 우연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앞서 적었던 것처럼 제 작품이 꽤 많은 돈을 벌었던 것 역시 운이었습니다. 작품을 열심히 준비한 건 사실이었지만 코로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자가 격리를 해야했고, 때마침 제 작품이 자가 격리 중인 사람들의 눈에 띄어 더 많은 매출을 낸 것 역시 사실이었습니다.

사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운을 인정하고난 뒤, 실은 무척 슬펐습니다. 노력과 재능이 아니라 운에 결과가 좌우된다는 느낌은 통제감을 잃게 하니까요. 제 노력과 재능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노력과 재능이 동반된 상태에서 운과 때를 만나 작품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니 다른 면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를 포함해 아직 성공하지 못한 작가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재능이 있고 노력도 했다면 성공해야한다"는 말은 능력주의를 대표하는 말인 동시에 무척 잔인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 말은 기다리지 않으니까요. 능력주의는 네가 재능이 있고 노력을 했다면 '이미' 성공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직도' 성공하지 못했다면 부족한 네 재능을 의심하고 더욱 노력을 기울이라고 말합니다. 양쪽 다 개인을 탓하고 상처 주는 말들입니다. 안 그래도 고된 글쓰기를 더욱 고되게 하지요.


"재능도 있고 노력도 했지만 운이 나빠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라는 말은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말입니다. 때로는 희망이 고문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오직 좌절뿐인 말보다는 조금 더 위안이 됩니다.




어쩌면 노력과 재능, 운 외에 성공에 작용하는 또 다른 요소가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아직 우주를 비롯한 세계의 법칙을 전부 알지 못하니까요.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주의 기운이나 신의 변덕, 성좌들의 선택과 같은 것이 우리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언제 밝혀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니 그저 지금 아는 것들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러모은 채 계속 해나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달콤한 설탕과자 같다면 좋겠지만,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고 결과는 개인이 느끼기에 좋을 때보다 나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쓰기가 좋고 계속 하고 싶으니까 저는 가능하면 저나 저와 함께 글 쓰는 동료들을 해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현상을 바라보려 합니다. 창작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라지만 저는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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