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나란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또는 하루 종일 등을 맞대고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서 가지는 따뜻한 관심일 수도 있겠다. 글을 보여달라고, 보여줄 수 없다면 대체로 어떤 장르를 쓰는 건지라도 좀 말해달란다.
"짧은 글을 써? 긴 글을 써? 그거라도 말해봐."
"에세이? 여행기? 시? 소설? 아니면...혹시 일이랑 관계된거야?"
아. 나는 이 물음들에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까.
- 일단 업무와 관련된 일은 전혀 아닙니다, 전적으로 사적인 내용이에요.
그저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던, 젊었던, 혹은 어렸던 한 때가 있었어요.
겨우 이 정도로 답이 될까 싶다마는, 궁금함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에 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어떤 구체적인 답변도 아닌, 그저 고개를 가로짓는 것 뿐이었다. 마치 스무고개하듯, 하나씩 선택지를 좁혀가려는 그 질문들 모두에 어떤 해당사항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장르인지를 알면, 내가 무엇에 관심이 많은 지, 어떤 사람인지 더 많이 알 수 있어서였을까. 공적인 영역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적으로 가지는 소소한 감정들과 은밀한 생각들을 열어놓고 전시하는 것이 그렇게 좋은 생각인 것인지, 아직까지 큰 확신이 없다. 마치 커다란 상처를 열어 놓았을 때 어떤 옷이나 사물에 쓸려 더 쓰라리게 될까 걱정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 어떤 특정 장르라고 말을 하면, 그 장르를 정말 많이 썼거나, 잘 쓰거나, 또는 오래썼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정말 그러한가. 오히려 나는 여러 가지, 혹은 정체 불명의 어떤 장르를 써왔을 지도 모르겠다.
스무살 무렵에 나는, 그 시절이면 누구나 겪었을 답답함과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해, 학교 사람들이 보는 어떤 게시판을 매일 같이 드나들곤 했다. 대개 짧고, 묘사가 많고, 운율이 느껴지는 글이었다고 한다. 시를 쓴다고 생각해본 적은 전혀 없는데, 어떤 사람들은 시라고도 생각했고, 그래서 신기했다. 글들은 대개 좀 아팠다. 그저 감정과 생각을 배출하는 통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생전 처음 가져보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좀더 흐르고, 어린 방황의 열꽃들이 차차 잦아지기 시작하자, 주로 신변 잡기 적인, 일기 같은 글을 쓰기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생기면서 부터는 다량의 여행기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그것들을 글로 써서 뭘 어쩌려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여행하면서 들었던 온갖 생각과 느낌과 풍경과 사람들과, 낯선 문화들이, 깃털처럼 가벼운 내 기억력에 실려 저 먼 공기 중으로 흩어날려가 버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참 지나고 나서 그 글들을 읽어보면, 그곳에 내가 다시 여행을 간 듯한 느낌이 드는데 그게 참 좋았다.
그리고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서비스들이 대세인 요즘, 글은 계속 짧아지고 또한 짧아져야만 한다. 그러다 그렇게 짧은 몇 문장에 많은 생각들을 압축해 넣는 것에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글은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니고, 그저 따로 분류되지 않은 무엇이다.
하지만 장르를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비단 이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어떤 종류의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인 것인지, 스스로 정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 가장 크다. 그게 어떤 종류의 글이냐는, 내가 지금 내 삶에서 어떤 가치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이냐와 관련이 없지 않으니까.
아직도 내면의 정리되지 않은 우선순위와 욕구때문인 것인지. 내가 쓰는 글들은 아직도 정체 불명인 것만 같다. 삶의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추함을 예리하게 느끼며, 그걸 온마음을 다해 표현해내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인지. 혹은 주어진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며 가끔 이런 저런 문제의식과 싸우는 성실한 생활인인지.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경험이나 지식들을 공유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삶의 소소한 순간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게 좋았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이것이다. 그게 어떤 종류의 무엇이든 간에,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을 표현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갔을 때, 그것이 공감이 되든 치유가 되든 정보가 되든, 그것들이 그저 내 안에만 머물러만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르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좀 물어봐주었으면 했다. 이 사람이 시를 쓰나? 독서 감상문을 쓰나? 혹은 일기를 쓰나? 뭐 이런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당신과 나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