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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 Aug 01. 2021

걷거나 소비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니, 오늘도 다이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다이소에 간다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경우는 넘쳐난다. 애초에 기분이 좋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평소에 기분이 안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쁜 순간이 있어야 좋은 순간을 인지할 수 있으니까. 긍정적으로 살겠다는 강박조차도 싫어서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어서 노력 중인데, 그 노력을 무너뜨릴 만큼 기분이 안 좋아지곤 한다. 사는 건 어쩔 수 없다. 일희일비는 삶의 기본값이자 인생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표현이 아닐까 싶다.


기분이 안 좋을 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지만, 나를 무기력하게 하는 것들은 대부분 불가항력에 해당한다. 회사에서 기분 안 좋은 일 있다고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프리랜서에서 직장인으로 돌아오면서 내 목표는 정년퇴직이 되었기에 퇴사는 없는 선택지이다. 애초에 마냥 좋은 회사란 없다는 것도 안다. 어떤 사람 때문에 마음이 아픈 날에는, 그 사람에게 가서 따질 수도 없다. 상대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내 마음이 삐뚤어진 경우가 많으니까. 


지금까지 경험으로 익힌 가장 빠른 행복은 맛있는 걸 먹거나 돈을 쓰는 정도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과해지면 행복을 위해 한 선택이지만 불행해진다. 살이 찌거나 통장 잔고가 빈약하면 슬퍼지는 나의 속성을 알기 때문이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먹다 보면 폭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기분 나쁘다고 맛있는 걸 왕창 먹다 보면 나중에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될까 봐 걱정도 된다.


결론은 다이소다. 퇴근하고 기분이 나쁘면 무조건 다이소에 간다. 다이소에 가게 되면 두 가지가 충족된다. 하나는 걷기이고, 또 하나는 소비다. 집에서 다이소까지는 꽤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일단 걸어야 한다. 좀 더 걷고 싶은 날은 조금 돌아서 가면 되고, 다이소에 이어서 다른 곳을 둘러보다고 가도 된다. 


소비에 있어서도 다이소는 적절하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그 무엇을 사도 그리 비싸지 않기 때문이다. 독립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은 다이소에 가서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산 거다. 프라이팬부터 휴지까지 이것저것 사다 보니 15만 원 정도 샀다. 살림에 필요한 거의 대부분을 샀는데 이 정도 가격이라니. 이렇게 합리적일 수는 없다. 다이소에서는 아무리 내가 열심히 사봐야 그리 많은 비용을 치르지 않는다. 최저가의 향연 속에서 나는 내게 필요한 것을 살뿐이다. 소비 자체가 주는 행복도 누리면서.


핸드폰에 살 것들 목록을 적어두고 다이소에 가는 것과 막연히 아무 생각 없이 다이소에 가는 건 느낌이 묘하게 다르다. 늘 목적 중심으로 생활하는 내게, 목적 없이 어딘가에 간다는 건 드문 일이니까. 기분이 좋아지고 싶다는 목적으로 다이소에 간다. 친구와의 약속에서도, 친구가 늦는다고 하면 주변 다이소를 찾아서 다이소를 구경한다. 집 근처 다이소에 없는 물품이 팔 때는 기분이 급격하게 좋아진다.


몇 달 사이에 다이소를 정말 자주 갔다. 아직은 살 게 많아서 목적을 가지고 간 적도 많지만, 그냥 기분 전환을 할 겸 갈 때가 많았다. 걷고 소비를 하기 위해서. 가장 빠르게 획득 가능한 행복을 위해서. 손에 천 원짜리 물품 하나를 들고, 조금만 걸어도 땀이 흠뻑 나는 날씨 속에서 땀이 난 김에 좀 더 걸어보는 기분을 누리기 위해서. 다만 이제는 걷기에 좀 더 방점을 찍고 많이 걸어보자 싶긴 하다. 아예 목적 없이 걷는 게 내게도 도움이 될 테니까. 


좀 더 나아지기 위해 다이소에 간다. 오늘의 기분이 나아져야 내일이 괜찮아질 테니까. 마치 다이소에서 산 바느질 도구 덕분에 찢어진 가방을 바느질로 해결해서 다음날이 편해진 것처럼. 행복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단위로, 매우 사소한 것을 해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 


주말 내내 이런저런 핑계로 집에만 있었다. 억지로라도 무조건 나가야겠다고 느낀다. 걷자. 좀 더 나아지기 위해서. 딱히 목적지는 없으니, 일단 다이소부터 가보자.




*커버 이미지 : Addison Thomas Millar 'Building In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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