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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맘 Dec 13. 2023

아기와 함께하니 교통약자가 되었다

생후 14개월 : 우리 사회는 아기에게 너무 불친절해

처음 교통약자라는 용어를 접했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장애우라는 기존의 용어가 있는데 굳이 교통약자라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 필요가 있나 조금 의아했었다. 그런데 특별한 장애가 없는 나도 아기와 함께 이동할 때에는 영락없이 교통약자가 된다. 우리 사회에는 교통약자라는 시선으로만 개선할 수 있는 문제점들이 있다.


흔하디 흔한 이야기지만 우리의 거리는 유아차에게 매우 불친절하다. 잘 정돈된 신도시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도블럭이 어긋난 곳은 얼마나 많은지, 길을 건너자마자 나타나는 연석은 또 얼마나 높은지 매번 힘껏 유아차를 밀어 올려야 한다. 혼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오갔던 길이지만 유아차와 함께라면 빙 둘러가는 일은 이제 당연스럽다. 유아차가 엘리베이터를 꽉 채우는 때에는 주변인들의 양해를 구하느라 식은땀이 절로 난다. 배리어 프리(barrier-free)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크나큰 오산이었다. 배리어 프리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태반은 교통약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 괜찮아 보였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발짝을 뗄 때마다 바닥 상태를 주시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되니 이제야 보인다. 아직도 우리의 거리는 커다란 바퀴의 디럭스 유모차조차 편히 다닐 수 없는 불친절한 거리이다. 그게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신체장애우와 노인분들이 매일같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아기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날이면 전날부터 굳은 의지를 다져야 한다. 멀리 나갈 때에는 시외버스는 어림도 없고 무조건 기차를 이용해야 하는데 어린 아기가 얌전하게 기차를 타 줄리 없다. 유아 동반석 객실을 예매할 수 있었다면 그나마 운이 좋은 거다. 인기 노선은 그마저도 진작 매진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옹알이가 터진 아기는 기차 안에서도 연신 창밖을 내다보며 쫑알대는데 일반 객실에 타면 이것조차 주변 승객들의 눈치가 보인다. 어쩌다 아기의 심사가 뒤틀려 엄마인 나조차 듣기 싫은 울음소리가 조용한 객차를 가득 채워 버리기라도 하면 사단이 난거다. 아기가 울먹거리기만 해도 당장 아기를 들쳐 메고 통로로 나가는데 통로로 나가는 그 10초 남짓의 시간동안 엄마는 죄인이다. 통로에서도 아기의 울음소리가 다른 승객들에게 거슬릴까 싶어 발을 동동 구르지만 그럴수록 아기는 내 불안한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듯 더 울어댄다. 가끔 비행기에서 우는 아기가 논란이 되고는 하는데 다른 승객들을 배려하려다 보면 또 어느새 엄마와 아기는 어쩔수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 교통약자가 된다.


이래저래 하다보면 아무래도 아기를 데리고 밖을 나서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게 얼마나 큰 박탈감을 주는 건지 나는 아기를 낳고 나서야 겨우 이해하게 되었다. 살면서 소수인 약자가 되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소수 약자로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도 더 서글픈 일이었다. 다수에게는 당연한 일상들이라서 그다지 관심도 없다는 사실이 소수를 더욱 서럽게 한다. 그동안 누군가들이 교통약자 좀 위해주라고 고래고래 외쳐온 건 그나마 조금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뉴스에서 저출산 때문에 대한민국이 위태롭다는 말이 질리도록 많이 나온다. 사실 나는 국가경쟁력이 어쩧다 저쩧다 하는 이야기에는 큰 관심이 없고 그냥 내가 좋아서 아기를 잘 키워내는 일에 매일을 쏟아붓는 중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이렇게 잘 키워낸 아기가 미래의 대한민국의 주역이 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도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왜 이토록 외롭고 고달픈지, 조금 과장하자면 아기 엄마들은 국가의 미래를 짊어진 외로운 애국투사들인 것 같다. 모두가 저출산이 문제다 귀가 아프게 외치지만 막상 아기를 데리고 나서는 길거리는 아기에게 너무나 매섭다. 80cm 남짓한 조그만 아기에게는 너무 울퉁불퉁하고 위험한 연석들, 도보를 구분하지 않고 내달리는 오토바이와 킥보드들, 그리고 우는 아기에게 너무나 가혹한 사람들의 시선들까지.


그래도 아주 가끔 유모차를 위해 대신 문을 잡아주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주는 따뜻한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할 때면 아기를 키우는 고단함이 사르르 녹는다. 육아를 하는 부모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통장에 찍히는 몇 십 만원 지원금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기를 같이 키우고 있다는 동료애일 지도 모른다. 우리도 모두 아장아장 힘겹게 한 걸음을 내딛고 때로는 목청 떨어지게 울어대던 아기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기와 함께 나서는 길거리에서 아기들은 원래 그런거야라는 마음으로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을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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