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김시덕 씀.
(주)메디치미디어 펴냄.
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됬는지, 왕비가 안방에서 일본인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는지, 군인들이 들고 일어났는지, 청나라와 일본이 왜 지들땅 놔두고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벌였는지, 동학은 무엇인지, 그들은 '왜때문에' 싸웠는지, 김옥균이 일본에 기대어 추구하던 바는 무엇이었던지, 뜬금없이 러시아란 이역만리에 본거지를 둔 나라가 우리 역사에 끼어들게 되었는지. 학창시절 국사수업시간은 나에겐 배움의 시간이라기보다 많은 의문부호만 떠오르게하는 시간이었다. 임오군란 아관파천 동학전쟁 을미사변 갑신정변 청일전쟁 을사조약따위의 4자성어로만 배운 구한말.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아마도 당시 군부정권은 학교에서 반일교육보다 반공교육을 철저히 심화하길 바랬던 탓도 있을거다.
단편적으로 내가 기억하는 역사속의 일본은 조상들로부터 문물을 배워간 미개하고 키작고 왜소하고 야만스러운 후진국일뿐인데 근대에는 아시아를 지배하고 세계 최강국 미국과 맞장뜨며, 현대는 백인들을 떨게하는 경제대국이 되어있다. 내 관념속의 이 간극은 이 책을 읽기전까지 메꿔지지 않았다. 도대체 고대와 현대사이에 동아시아에는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이 책은 그런 의문을 다룬다.
일본이라는 해양세력이 발흥되기 전에는 동아시아는 중국과 유목민족의 대륙에서의 각축장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통일을 하고 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 동아시아는 기존의 대륙세력에 해양세력까지 가세하게 되고 그 가운데 있던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포지션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에서 동네북처럼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가 된다. 임진왜란은 여진족이 뭉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그 여진족이 중국으로 진출하여 청나라를 만들게 되었지만, 훗날 청나라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역사밖에 있던 대만이라는 땅이 본격적으로 역사에 편입되는 것도 이런 일본의 부상이라는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토록 무시했던 일본은 당시 서양의 제국들과 교류를 하고 인구는 한반도의 두배를 훌쩍 넘었으며 도쿄에는 백만의 도시를 운영하던 동아시아의 강국이었다. 그네들이 메이지유신과 발빠른 산업화로 갑자기 뜬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 역사에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지만, 크로체의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란 말이나 에드워드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대의 대화'라는 구절등은 많이 접했었다.
한반도의 치욕스런 근현대사를 구태여 찾아 읽는 것이 재미있을리가 없다. 그래서 귀한 시간을 굳이 내어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알아보려 하지 않았나보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상황에 대한 이해도 없이 그저 반일을 외치는 것도 공허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임진왜란, 그 난리를 겪고나서도 그 반성의 결과도 없이 다시 일본에 나라를 통째로 먹히고 만 역사를 다시 무심하게 흘려보낸다면 재차 비슷한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는 교양의 영역이 아니라 상식의 수준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이 재미없는 역사를 이 책은 매우 읽기 쉽고 재미나게 설명해준다.
조선 후기의 실패의 원인중에 하나는 지나친 중국과 성리학 추구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시대를 반추해보면 아직도 우리사회는 편향적이고 극단적인 문화가 상당히 만연해 있는 것 같다. 중국이 미국으로 바뀌었고 주자학이 자본주의로 교체된 뿐인지도 모른다. 당시 우리의 적은 바다건너 일본으로부터 왔다. 하지만 이 시대의 새로운 적은 또 어디서 우리를 위협해 올 지 모른다. 좀 더 열린 마음이 필요하고 좀 더 다양하게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