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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hdainy Jan 22. 2017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들

심바에 대하여 (2)

“니야아아아”


이 소리가 집안을 울리면 7시가 넘었다는 뜻이다. 안방부터 내 방까지 차례대로 문을 열고 들어와 아침이 밝았다는 인사를 요란하게 해댄다. 하지만 절대 굴하지 않는 나. 7시 50분까지 (지각하지 않을 만큼만) 꽉 채워서 잠을 청하고 겨우겨우 눈을 뜬다. 팔 언저리가 뜨끈하다. 보드랍다. 심바다.


“심바 잘 잤어?”

“누나 기다렸어?”

“누나가 그렇게 좋아?”

“심바 이뻐”


나는 이렇게 매일 아침 같은 인사를 반복하고, 심바는 마지막 멘트인 “심바 이뻐”가 끝날 때 즈음 이제 다 되었다는 듯 침대 밑으로 폴짝 내려간다. 그리고 기지개를 주욱켜고 배를 보이며 답례를 한다. 이렇게 10분 정도 보내고 나면 8시가 된다. 그때부터 45분간 격동의 출근 준비를 하고 나면 사냥터에 나갈 채비가 끝난다. 심바의 작은 이마 언저리를 쓰다듬으며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찬 바람이 불어 닥치는 문 밖으로 나선다.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정류장으로 뛰어가 경복궁역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고,  압구정역까지 약 20분간 흔들거리는 철로에 몸을 맡기면 가까스로 9시 30분경 회사 행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에 다다른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15분 후, 사무실 의자에 쓰러지듯 앉을 수 있다. 회사로 갈 수 있는 버스는 배차시간이 불규칙한데, 시간이 어정쩡하면 별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은 꽤 자주 일어난다. 힘든 통근길이다. 업무가 시작되는 10시에 잠시 눈을 감고 아침에 누렸던 심바와의 10분을 떠올리면 너무나 오래전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진다.


출퇴근 시간까지 합치면 하루의 절반을 회사에 쏟아붓게 되는 셈인데, 그 말인즉슨 하루 반나절은 심바와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심바가 밥은 잘 먹고 있을까, 모래가 부족하진 않을까 와 같은 집사 특유의 걱정부터 얼마나 외로울까, 하루 종일 잠만 자려나 하는 생각까지 오면 한없는 미안함에 가슴에 돌덩이 하나를 얹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카톡 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한 시간에 한 번씩이라도 안부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면 아이폰 7+ 로 사줄 텐데. 화질이 좋다고 하니 셀카도 좀 찍어 보내라 하고. 스스로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어서 헛헛한 웃음만 나오는 상념들이다. 아빠와 나는 일터에, 엄마는 워낙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외출이 잦다. 낮 시간 대부분은 혼자 지낼 텐데, 심바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아침 10분과 저녁 2시간 여를 함께 보내는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걸까?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까?


2015년 상반기, 휴학을 하고 공부를 하던 시절엔 이렇게 매일 집에 함께 있었다.


작년 2월에 (아, 벌써 2016년을 작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졸업을 하고 4월 말에 취업을 하기 전까지의 약 두 달간은 심바와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이다. 취업할 곳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로 졸업을 했기 때문에 몇 달간은 백수 상태로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자명했고, 바로 그 '몇 달' 이 심바와 내가 24시간 붙어 있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다. 직장을 얻게 되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을 테고, 하루의 절반 이상은 그곳에서 보내야 하니까. 게다가 한 번 커리어를 시작하면 다시 백수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속이 없는 백수, 게다가 취업 준비생으로서의 앞날이 걱정된다기 보단 이 마지막 기회를 잘 살려서 최대한 행복하게 지내보자는 다짐을 했다. 다짐이 무색하게도 백수로서 지난 시간은 한 달 남짓이었고,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 할 수도 있지만 정말 아쉬웠다.


백수로 시간을 보낼 때 나의 일상은 대부분 침대 위에서 이루어졌는데, 잠시 일어나서 돌아다닐 때는 심바를 위해서 집 청소를 하거나, 심바가 좋아하는 창문 일광욕을 위해 창틀을 닦고 이불을 깔아 둘 때 정도였다. 아주 어렸던 심바가 집에 오고 나서 한 달간 하루 종일 같이 지내긴 했지만, 성묘가 된 심바와 24/7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나에게도 첫 경험이었다. 자묘 시절 심바가 20시간 가까이 움직이지 않고 잠만 잤다면, 성묘가 된 심바는 마치 오래된 친구와 함께 있는 것처럼 꽤나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때 처음 알게 된 것 한 가지, 심바는 일광욕과 바깥 구경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고양이라는 것이었다.


 

아직 쌀쌀한 3월에도 창문을 열어 놓으면 심바는 기다렸다는듯 올라가 세상 구경을 했다. 발이 시릴까봐 담요를 깔아주었다.


심바는 '세계 겁쟁이 고양이 랭킹'을 매긴다면 수위권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쫄보다. 다른 집 고양이들은 냉장고는 예사고, 에어컨, 장롱 위, 심지어 방문 모서리에도 올라가 있어서 놀란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심바는 한 번도 위의 장소들을 탐낸 적이 없다. 고양이 습성상 높은 곳을 좋아한다길래 언제 한번 에어컨에 올려준 적도 있는데 싫다고 소리를 지르며 소파로 내려와 움직이질 않았다. 그런 겁쟁이 녀석이, 창문만 열면 좋다고 '야옹' 하며 올라와 바깥세상을 구경하다니! 날아가는 새를 보며 '갸갸갹' 채터링을 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며 뾰족 귀를 앞 뒤로 세우며 귀를 기울였다. 낮 시간을 집에서 한가로이 보내는 백수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의외의 모습이었다.  덕분에 취직을 하고 난 뒤에도 주말 낮에 너무 춥지만 않으면 청소를 하고 창문을 열어서 심바가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게 되었다.  


빌라 1층 마당에 돌아다니는 다른 고양이를 보고 있다.

 

하루 일과를 침대에 누워서 채용 공고를 검색하고 영문 이력서를 수정하거나 심바를 위해 창틀을 닦는 것 정도로 압축시키니 금방 지루해졌다. 물론 심바가 항상 곁에서 칭얼대며 놀아 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에 마냥 게을러질 수는 없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전했다. 이 무렵이 내가 유튜브와 친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전에는 아이폰 필수 앱이라는 유튜브도 다운로드하지 않은 채로 꼭 봐야 하는 영상은 '웹' 버전으로 시청하곤 했는데, 심심함을 달래고자 휴대폰 어플도 받고 데스크톱 컴퓨터에도 항상 유튜브를 틀어놨다. 처음에는 미국 심야 토크쇼 영상을 쭉 훑고, 그 뒤엔 영국 심야 토크쇼, 그러고 나서는 좋아하는 드라마 리뷰 방송을 주야장천 틀어놨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심바가 아기 때 집을 비워야 하면 나는 꼭 'Music for Cats'라는 유튜브 채널을 틀어놓고 나갔었다는 것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음파로 이루어진 음악을 10시간 넘게 들을 수 있는 채널인데, 신기하게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음악만 틀어놓으면 심바가 자연스럽게 내 방 침대로 올라와 조용히 잠을 청하곤 했으니까. 그래, 우리 심바는 음악을 사랑하는 감성적인 아이지. 이번에도 틀어줘야겠다.


음악을 틀어놓으면 심바는 꼭 이불로 파고 들어가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조용히 감상 했다.


어릴 적 기억이 남아 있는 건지 심바는 그때와 똑같은 포즈로 누워서 눈을 지그시 감고, 가끔은 나와 눈을 맞추며 편안하게 음악을 감상했다. 단조의 음악이나 템포가 빠른 곡조가 흘러나오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는가 하면, 잔잔한 일본 애니메이션 OST 풍의 음악이 흘러나올 때면 특별히 흡족해하며 꾸벅꾸벅 졸았다. 이 모든 반응을 지켜보는 건 귀여움 뿐만 아니라 일종의 경이로움을 안겨주었다. 아주 어린 시절 들려주었던 음악이 고양이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그랬고, 음악을 구분하여 다채로운 반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놀라웠다. 모든 고양이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고양이가 이토록 감성적이라는 사실은 나를 벅차게 했다. 고양이 음악을 틀고 심바가 편하도록 어둡게 조명을 설정한 후, 옆에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좋지 못한 일이 있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옆에 같이 쪼그리고 누워서 심바의 보드라운 배를 만지면 묘아일체의 경지에 오르는 기회도 몇 번 찾아오곤 했다.


고양이가 무얼 좋아하지는 인터넷만 찾아봐도 쉽게 나온다. 거기서 말하는 것들 모두 고양이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고양이는 유별나게 개성적이고 감성이 발달한 동물이다. 저마다 또렷한 취향을 가진 똑똑한 녀석들이다. 낚싯대 장난감 하나만 하더라도 1번 고양이부터 10번 고양이까지 선호하는 종류와 크기, 색깔, 흔들림의 정도가 모두 다를 것이다. 그래서 집사들은 여러 번의 실패를 거쳐서 본인의 고양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사료, 모래 등을 고를 수 있게 된다. 자기 취향이 아니면 냄새 한번 맡고 근처에도 안 가는 녀석들이니 말이다. 이처럼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 혹은 싫어하는 것을 걸러내는 과정은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사료, 모래, 장난감처럼 고양이의 의식주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이 아닌, 개묘의 취향을 발견하는 것은 조금 다른 종류의 자원이 필요하다. '절대적 시간'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만이 그 고양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어렵게 찾아낸 좋아하는 사료를 먹고 나서 무엇을 하는지, 어떤 목소리 톤으로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냄새에 가장 큰 반응을 보이는지, 음악을 좋아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밤을 좋아하는지 낮을 좋아하는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지. 이런 것들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운이 좋게도 나의 고양이와 나는 온전히 둘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덕분에 서로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기회를 통해 알게 된 것, 심바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나다. 이미 동료 집사들의 야유가 들리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세상 어디에도 집사를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고양이는 찾을 수 없다. 단정 지을 수 있다. 집사 특유의 착각이라고? 천만의 말씀! 의심의 눈초리에는 심바의 골골송 음파 분석을 통해서 증명된 사실이라고 짧게 코멘트하겠다. 그래도 못 믿겠으면 아래 사진을 확인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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