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ktail Blues
2~3일쯤, 아침저녁으로 목이 부었다. 열은 없었지만 올게 왔구나 싶으면서도 아니길 바랐는데 나흘을 넘기면서 팍팍하고 빡빡한 일정이 떠올랐고, 나를 보살피기로 했다.
동네 내과에 가서 감기 기운이 있고 수액을 맞고 싶다고 했다.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니 부은 목을 확인한 의사는 ‘수액 맞고 싶다고 하셨다고요’, ‘실비 서류 챙겨드릴까요?’ 두 마디를 하고는 척척박사보다 더 척척 처방해 주었다. 묻기도 전에 알아서 착착 대답한 나, 의학 드라마 좀 본 태가 났다(?).
두근두근 인생 첫 수액을 맞으러 주사실에 갔다. 간호사는 역시나 숨은 핏줄 찾기에 열을 올렸고, 역시 핏줄 하면 ㅌㅎ씨와 그녀의 남편을 떠올릴 밖에.
수액 맞기에 대한 로망은 ㅌㅎ씨와 그녀의 남편 때문에 생겼다. 어린이 시절, 계절마다 감기에 걸리던 나는 -개도 안 걸린다던 여름에도 감기에 걸려서 나는 개(띠)인데 왜 여름에 감기에 걸리는지 진지하게 꽤 오래 고민했다- 열한 살 어느 가을인지, 겨울에도 감기에 걸렸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ㅌㅎ씨도 없는 방에 누워 나는 왜 낑낑거리고 있나, 이게 맞나, 강아지 같긴 하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ㅌㅎ씨 남편이 들어와 이마를 짚더니 병원에 데려갔다. 동네 병원 의사는 큰 병원에 가라고 했고, 다음날 나는 ㅌㅎ씨와 둘이 큰 병원에 갔는데 폐렴이라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는데 내 몸통 속 무슨 주머니 같이 생긴 게 온통 새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폐가 저렇게 생겼구나, 저렇게 자세히 나오는 걸 보면 엑스레이란 정말 신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엑스레이란 까맣게 나오는 게 좋은 거였고, 그래서 폐렴이라는 말이 수긍이 되었고, 의사가 입원 판결을 내려서 내심 기대했다. 이제 나도 가만히 드러누워 집중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ㅌㅎ씨는 통원 치료를 선택했고 나는 내 방에서 일주일쯤 하루종일 토하고 기침하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느라 개근상을 놓쳤다. 아니, 병원 데려갈 땐 언제고 ㅌㅎ씨 남편은 밤잠 못 자게 자꾸 앓는 소리를 낸다고 화를 냈었다. 개근상 놓친 것보다 그게 더, 슬펐는지 아팠는지... 그 후로 -병치레로 인한 핍박은 열 손가락 채우고도 남을 만큼 잦았으므로- 나는 따숩고 포근한 타인에게서 보살핌 받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내가 날 보살피는 게 세상 가장 어려웠던 건 역시 보살핌은 ‘받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생각했고, 받을만했고, 받아 마땅했으니까. 적어도 ㅌㅎ씨와 그녀의 남편에게는 더더욱. 그 두 사람에게만큼은 나이와 상관없이 보살핌 받아 마땅했다. 보살피지 않음으로 보살피는 경우도 있긴 한 거 같더라만, 그건 이 경우와는 좀 다른 경우고. 아무튼 그런 걸 받았다면 나는 지금처럼 그 두 사람을 보살피는데 이렇게 무심하지 않을 수 있었으려나. 그마저도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아 쓴다. 쓰는 내내 입 안이 쓰지만, 이렇게 쓰고 나면 달아지는 날도 오겠지. 아니, 이미 왔다. 내가 나를 보살피기 시작했으니까. 더럽고 치사해서 직접 하고 만다는 찜찜함이 없지 않으나 뭐, 나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됐다는 점에선 만족.
그나저나 이 시간에 깨어 있으려니 출출하다. 찜찜하다 생각하니 만두 생각이 나고, 만족한다 하니 족발이 당긴다. 어서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