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cktail Blues
꿈을 꾸었지, 한 남자가 제 여자의 행방을 물으며 내 목을 조르는 꿈, 목에 닿는 그 손바닥이 어찌나 부드럽던지, 손아귀 힘이 어찌나 생생하든지, 자면서도 졸리다고 투덜댈 만큼 깊은 잠도 못 자고, 꿈이랄 것도 없이 계시나 환영 같은 장면들이 스쳐갈 뿐인 잠결 속에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꾸면서 꿈속의 한 남자에게 소리쳤지, 꿈에서 그 남자를 향해 내지르던 고함을 깨면서까지 외쳤지, 너는 좋은 아빠도 아니었고 좋은 남편은 더더욱 아니었다고, 깊은 잠 속에서 내 잠꼬대를 듣고 잠에서 깬 아이가 묻기에 이러한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 소리를 지르던 게 잠에서 깨면서도 지르게 되었다고 답했더니, 그 정도면 병원을 갈 게 아니라 굿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군. 그래서 한 번 슬프고 한 번 기뻤지. 여태 그런 꿈을 꾼다는 게 슬펐고, 채 말이 되지 못하는 잠꼬대를 안타까워해주는 그 아이가 기뻤지.
어제는 깨어 있는 시간에도 잠이 그리울 만큼 고단했지, 그래서 슬펐는데 고객님의 따뜻한 마음-서비스팁을 회사에서는 '따뜻한 마음'이라고 부른다. 커피 한 잔의 여유부터 든든한 한 끼와 즐거운 치맥 타임까지 다채롭다. 역시 돈이 제일 따뜻한 마음인 것이겠지-이 메시지와 함께 도착해서 기뻤지. 어떤 고객님은 돌봄 내내 두 번이나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었고, 어떤 고객님은 돌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하나의 슬픔에 두 번이나 기뻤지,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죽은 비둘기를 보았어. 하나의 슬픔에는 하나의 기쁨만 주어져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처참하게 죽은 비둘기는 처음 보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빌었지, 이리도 아프게 갔으니 부디 편안한 곳으로 가라고, 다음번에는 아프지 않은 생을 받으라고, 입고 있던 점퍼라도 벗어 덮어주고 '이 아래 비둘기가 있으니 부디 잘 거둬 달라'고 쪽지라도 남겨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 그런 생각을 하다 나는 어쩐지 죽은 것들을 잘 본다는 것을 깨달았지, 거리에서 고속도로에서 하다 못해 숲길에서까지 내내 멍하니 먼 곳만 바라보다가도 홀린 듯이 끌려가듯이 죽은 것들을 보고는 심장을 움켜쥐곤 했지, 주기도문은 잊었고 성모송도 기억나지 않고 불경은 알지도 못하니 그저 빌었지, 아팠으니 좋은 곳에 가라고 지난 생이 만든 아픔 넘치도록 겪었으니 다음 생은 부디 좋은 것만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그렇게 빌고 또 빈 후에는 지금 이 생은 몇 번째 생인지 궁금해했지, 고양이처럼 아홉 개의 생이 있다면 여섯 번째쯤이 아닐까, 사람은 네 번의 생이 주어진다던데 어쩌면 세 번째 생은 아닐까. 몇 개의 생이든, 몇 번째 생이든 뭐가 중요할까, 한 번 슬프고 한 번 기쁜 것으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生이고 또 牲인데.
앞으로 1년 동안 열심히 연습해서 1년 후에는 나처럼 되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고 보니 회사에서 금세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부족한 이해만큼 내 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슬프다가도 다른 동료는 하루로도 모자라 야근까지 해도 마무리짓지 못하는 일을, 나는 두어 시간 만에 마무리 짓고 나면 또 기쁘다. 그렇게 되려고 스스로를 다그친 것을 생각하면 슬프고, 그토록 잔혹한 채찍질에도 죽지 않기로 한 것은 기쁘다. 그렇게 더하고 빼고 하나도 남기지 않는 삶이라 좋다. 무거운데 가벼워서 참 좋다.
일희일비, 누가 하지 말랬어. 일희일비야말로 '가운뎃길'을 걸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