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감축의 바람과 젖은 낙엽
그 어느 해에도 경제가 좋다고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올 해는 정말 유난히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많은 회사들이 인력 감축을 위하여 희망퇴직 등의 방법으로 구조조정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심지어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그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직원들 근속 년수가 매우 긴 편이었고,
인위적인 인력 감축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회사이기 때문에,
직원들이 체감하는 찬바람이 더 매섭다.
이런저런 조건들에 해당하는 직원들 대상으로 퇴직 권고를 하고,
이에 응하지 않은 직원들 상당수가 원래 본인이 하던 일과 상관없는 부서로 인사 이동되고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한 회사 안에서 부서 간에도 귀천이 없어야겠지만,
현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많은 직원들이 인사이동을 하게 된 부서를 보면서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며 회사에 대한 분노 등을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지.... 나가라는 얘기구나.
어차피 시간문제일 것 같기는 하지만,
나는 이번에 그 대상자가 아니라서 직접적으로 그런 상황을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대상자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어차피 시간의 문제라면 미리 준비를 해야겠구나.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까.
여기저기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책도 좀 읽어보면서 무슨 일들이 있는지 찾아봤다.
역시나 쉬운 일은 없구나.
이 회사를 떠나 새로운 일을 찾게 되면,
지금 내가 일하는 환경, 업무량, 강도 그리고 받는 급여와 복지 등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듯했다.
그런 생각이 드니 지금의 회사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침마다 출근해서 일할 수 있는 내 자리가 있고,
액수가 어떻든 매월 꼬박꼬박 급여가 들어온다는 사실에.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복지 혜택들.
회사의 장점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이런 깨달음이 왔다.
내가 갑자기 흔히 말하는 한직으로 가게 되더라도,
그곳에서 나의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고,
그 일들이 나의 두 번째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동안 평생 앉아서 머리 쓰며 사무직으로 일해 왔다면,
나의 두번 째 일은 그동안과 완전히 다르게 몸으로 하는 일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많은 동료 직원들이 그런 일을 하찮게 보고 나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겠지만,
내가 생각을 바꾸고 나만 괜찮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사실 사람들은 다른 사람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단순한 종류의, 몸으로 하는 일을 회사 밖에서 하면,
절대로 이 정도의 근무 환경에서 이 정도 급여 수준을 받고 할 수가 없다.
이 정도 급여나 복지 등의 대우를 받으며 그런 단순한 일을 하면 오히려 꿀보직 아닌가.
두 번째 인생, 두 번째 직업을 꼭 회사 밖에서 찾아야 하는 건 아니다.
물론 나한테 실제로 그런 일이 닥쳤을 때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미리미리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시간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물론 회사 밖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서 찾아봐야겠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요즘,
밖에 나가서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너무 추워진다.
어떤 일을 하든 회사 밖보다는 안이 따뜻하다.
일단은 젖은 낙엽처럼 잘 붙어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