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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anni Feb 21. 2023

결혼식 로망: 이룬 것, 못한 것, 고민한 것

절차와 가치를 존중하고, 나만의 색깔과 고민을 입히다.



고작 30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인생에 '결혼식'은 한 번뿐이다.

다시 말해 나의 모든 지인들이 오직 '나'를 위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나와 남편의 인생의 중요한 서사를 함께하는 일은 정말 손에 꼽기 힘들다.


그렇기에 당사자는 그 모든 의식과 절차를 고민하게 되는데,

특히 나처럼 로망도 꿈도 많았고 내 가치관과 취향에도 의미를 두는 사람일수록 이는 더욱 중요한 고민의 영역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결혼식을 준비하며 1)하고 싶었는데 한 것, 2)하고 싶었지만 못 한 것, 3) 오래 고민하여 결정한 것에 대하여 정리하려고 한다. 사실, 하고 싶은 거 거의 다 했다. 내 맘대로 하게 해 준 양가 부모님과 신랑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1. 로망을 이루다: 하고 싶었는데 한 것



(1) 신랑의 축가

결혼식에 가면 의문스러웠던 것이 사랑이 가득 담긴 노래를 타인이 불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20대 초반부터 이미 신랑이 축가를 불러줬으면 했었다. 실력과 상관없이 진심이 담겼으면 해서.


몇 년 전, 가사가 너무 아름답고 와닿는 곡을 알게 되어 결혼할 사람이 생기면 말하려고 했다. 드디어 the one을 만나 그 곡을 요청했다. 그 노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성시경의 <영원히>


실력보다 진심이 중요하다던 나는 결국 그를 레슨실에 보내버렸는데, 모든 노래를 김민종처럼 부르는 그에게 발라드는... 어쨌든 바쁜 와중에 레슨까지 결제하며 노력해 준 너무 착하고 다정한 사람…. 가사를 잊지 않으려 식중 영상도 편집하고, 2개월 레슨도 받았지만 본식 당일, 그는 우느라 노래를 거의 못 불렀다. 그래서 심지어 자작곡이냐는 질문도 들었다ㅎㅎㅎㅎ


*성시경의 <영원히>는 가사가 참 아름답다. 식중영상을 만든 또 다른 이유도 그것이다. 특히 마지막 소절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그대여.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 이해할 수 없어서
말없이 조용히 너의 머릴 쓰다듬어 준다"


이 부분은 내가 꿈꾸던 사랑의 모습을 담백하게 담고 있었고, 처음 이 곡을 픽했던 이유도 이 부분이었다.

그래서 본식날도 딱 이 부분만 내가 그를 향해 불렀다. 물론, 앞에서 엉엉 우는 남편을 두고 나 역시 울어버렸고.(울보부부)



(2) 재밌고 의미 있는 혼인서약서(w/ 5행시)


참 인상 깊었던 결혼식이 있었는데, 그들의 혼인서약서는 둘의 사랑의 역사를 재치 있게 담고 있었다.

신랑, 신부의 단편만을 알고 있는 하객이 둘의 '관계성'에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친절함이 좋았다.


그래서 나 역시 너무 길지 않으면서 우리의 서로에 대한 마음과 각자의 유-우머를 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의 첫 만남부터 결혼을 확신한 순간까지의 스토리를 공유하고, 우리의 N행시 세계관을 과감하게 넣어버렸다.


개드립이 난무한 우리 사이엔 언어유희가 일상인데, 청첩장에도 서로의 이름으로 N행시를 지었다.


혼인서약서 말미에 삽입한 ‘혼인서약서’ 5행시는 우리의 세계관을 완성하면서도, 어디에도 없을 우리만의 유쾌하고 만족스러운 도전이었다.




(3) 가족축가

이건 사실 10년 전쯤 한 결혼식에서 신부 남동생 축가가 감동적이라 동생에서 말해놓은 건데, 이 미친놈(?)은 그 10년 내내 내 축가를 연습했다고.. 미안 오래 걸렸지?


그런데 그게 어쩌다 보니 엄마와 아빠로 까지 확장되어 내겐 더더욱 스페셜한 축가 라인업이 구축되었다 싶었는데, 설 연휴에 어쩌다 사촌동생들까지 참여하기로 하여 1절(부모님+동생), 2절(동생+사촌동생)로 온 가족 축가가 완성되었다.


(왼) 동생과 부모님, (오)동생부터 주루룩 사촌동생들


헬퍼님도 스냅작가님도 오랜 경력에도 불구, 가족 축가는 처음이라고 하셨으니 정말로 스페셜한 경험이었다.


(다행히 울지도 않았다. 엄빠가 너무 귀엽게 등장했기에)




(4) 행진댄스


몸치지만 끼가 넘쳐(?) 종종 춤을 추곤 하는 내게 다들 결혼식에서 춤 안 추냐고 들 했는데, 당연히 행진 율동을 준비했다ㅎ


겨울예식에 맞게 <겨울왕국>의 Love is an Open door에 맞춰 직접 안무를 짰는데 연습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다른 행진영상도 참고하고, 동영상으로 우리 모습을 모니터링하며 연습하다 보니 더 예쁘고 눈에 띄는 동작을 잘 만들어낸 것 같다. 물론 엄청 쉬웠고.


특히, 떠도는 안무가 아닌 우리가 만든 안무와 컨셉으로 꾸민 무대라 더욱 의미있었다 :) (근데 왜 다들 open the door 라고 하는거지.. 남편마저)


(신나는 표정이 가려져서 아쉽다) 눈물과 감동의 축가 후, 모두를 미소짓게 한 순간



사랑의 열린 문을 열고 새로운 막을 맞이하리라







2. 아쉽지만 못한 것


(1) 화촉 점화 시, 부모님 동시입장


상견례 장소에서 나 혼자 선언(?)해 버렸던 부분이다. 화촉점화에 담긴 아름다운 의미를 어머니뿐 아니라, 모든 부모님에게 받고 싶었고 양가 부모님 역시 입장을 통해 그날의 주인공임을 공표하고 싶었다.

그러나 단상에 서기 부끄럽다는 아버님 의견에 깔끔히 포기


-결혼 준비 대부분을 마음대로 하게 해 주셨던 양가 부모님이시기에, 결혼식이 나만의 축제가 아니라는 점을 더 쿨하게 받아들이고 빠르게 포기할 수 있었다.



(2) 어머니 양장


이건 울 엄마가 하고 싶어 했는데(심지어 바지정장 입을 거라고), 한복 대여에 드는 돈이 아깝다는 지론이었다. 허나 시어머님의 의사를 존중하여 한복으로 직행.


사실 색상은 굳이 틀에 맞추지 말고(신랑은 파란 계열, 신부는 붉은 계열) 마음대로 고르시라고 했다. 어머니는 짙은 보라색의 한복을 고르셨고, 우리 엄마는 어쩌다 보니 핑크 한복을 너무 맘에 들어했다.


엄마랑 셀카, 이날 찍힌 사진 중 손꼽히게 잘 나왔다


굳이 디자인을 통일하지 않아도, 정해진(?) 색을 입지 않아도 두 분 충분히 아름다웠고,

 핑크 한복을 입은 우리 엄마는 기대이상 너무 고왔다.






3. 고민했던 부분


(1) 신부의 하객맞이


공주드레스는 입고 싶은데 로비에서 하객맞이도 하고 싶고. 알아봤더니 하객 맞이를 하려면 중간에 옷을 갈아입던, 또는 드레스샵에 양해를 구하던(망가질 수도 있어서) 현실적으로 좀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다.


대신 내 신부 대기실은 100평! 로비보다 더 큰 대기실에 누구든 편히 들어오길 바라며, 로비의 하객맞이를 대체하기로 했다. 


실제로는 누가 들어오고 나가고 정신없이 있다 보니 정신없이 입장하고 정신없이 끝나서 ‘인형처럼 앉아만 있는 신부’ 같은 비판의식 가질 틈도 없었다. 심지어 첫 예식이라 직원보다도 빨리 식장에 도착했음에도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는 것이 결혼식




(2) 아빠와의 신부입장


정말 오래 고민했던 부분이다. 서양의 가부장적 문화에서 비롯되어 남자가 남자에게 여자를 건네고, 여자는 여전히 종속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그렇지만 오늘날엔 그 의미나 행태가 변화한 것도 사실이고 또 누군가에겐 아빠라는 존재 자체가 소중할 수도 있기에 배부른 고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실행력, 호기심 같은 타고난 본성은 참 엄마와 닮았지만, 긍정적 삶의 태도나 가치관은 아빠에게 참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아빠와 함께 걷는 그 길이 단순한 입장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아빠가 내 손을 신랑에게 넘겨주는 행위 대신 내가 아빠의 손을 스스로 놓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자 했다.


가르침을 받들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의미로 생각하기로 하고, 사회자 대본에 그런 의미를 담아보려고 했다.


실제 대본에 담은 대사(파란색 부분)


아 물론, 또 언제 아빠 손 잡고 이렇게 걸어보겠나 싶기도 하고~


아빠에게도 예식장에도 그런 의사를 전했고,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하여 아빠는 신랑을 포옹하고 나를 포옹한 뒤 착석하시고 나는 신랑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4. 나가며


결혼식의 뻔한 그 모든 순서에는 나름의 의미와 상징이 있다. 그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하면 모든 것은 축복과 기원으로 가득하고, 그것을 얼마나 나와 상황에 맞게 변주하느냐는 고민의 결과이다.


결혼식의 모든 것은 대부분 나만 아는 것이지만, 나 스스로가 만족하고 의미를 부여하면 되는 것 역시 결혼식이기에 나는 이런 고민을 했고 이렇게 준비했다.


그리고 그날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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