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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Apr 14. 2022

결국은 코로나 때문에 실업자가 되었네요

'제주여자가 서울여자에게' 보내는 네 번째 편지 - 코로나

언니. 2년 전 1월 즈음, 코로나라는 이름이 뉴스에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할 무렵 나의 고민거리는 딱 하나였어요. 2월에 친구와 같이 예약해둔 베트남 여행을 예정대로 떠나도 되는 걸까, 라는 거. 하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확진자가 많지 않았을 때였고, 베트남은 더더욱 그랬어서 우리의 모든 고민 앞에 '설마'라는 핑계를 붙이기가 참 좋았어요. 더욱이 고맙게도(?) 우리가 예약한 비행기와 숙소는 환불이 불가능했더랬죠.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마스크를 쓰고 떠났던 해외여행. 그 여행을 다녀온 이후, 저와 친구는 몇 번이고 '갔다 오길 잘했다'고, '그때 안 갔으면 어쩔 뻔했냐'라고 곱씹었어요. 설마 이렇게 오랫동안 떠나기 힘들어질 거라곤, 그때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이땐 이렇게 오래 여행을 갈 수 없게 될 줄 몰랐지


그리고 우습게도 그때 나는, 코로나가 나에게 미칠 영향이라곤 앞으로도 딱 그 정도일 줄 알았어요. 물론 마스크를 쓰는 게 불편했고, 열심히 하던 동호회 활동도 할 수 없게 되었고, 처음으로 명절에 집에 올라가지 못하기도 했고, 친구들과의 만남에 약간의 제약이 생기긴 했지만, 그 정도는 그냥 딱히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일어날 법한 일들이니까. 가끔씩 코로나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딱히 이 전염병이 내 삶을 통째로 흔들어놓은 정도는 아니-라고, 나에게 코로나 블루라는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결국 회사에서 몇 달간 월급의 일부를 유예시킬 때조차도 나는 제법 괜찮았어요. 어차피 이 전염병은 언젠가는 지나갈 거고, 내 삶은 굳건할 거라고. 왠진 몰라도 나는 그렇게 믿었던 것 같아요. 


하하하.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결국 코로나 때문에 회사의 절반이 사라졌고, 코로나 때문에 나는 결국 실업자가 되었네요. 물론 100% 코로나 탓을 할 수는 없겠지요. 우리 회사는 코로나 이전에도 사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있었고 사실 전부터 위태위태하긴 했거든요. 그래도 회사가 말하는 대외적인 명분은 '코로나로 인한 경영 악화'였으니까, 그냥 코로나 때문에 백수가 된 걸로 하려고요. 아마, 그래야 조금 더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실업자 된 거보다 중장년 일자리 리플렛 받은 게 더 슬픔


암튼, 그렇게 내 삶에도 강력하게 침투한 이 망할 코로나 바이러스는 결국 내 기관지도 가뿐히 통과했더라고요. 그리고 음, 육아를 하는 언니와 혼자 사는 나의 격리 생활은, 누구나 짐작하듯 다분히 달랐네요. 나의 격리 생활은, 전쟁 같은 일주일을 보낸 언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이지 지극히 고요했고, 분명히 심심했어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 일주일 동안 집에만 있지'였어요. 언니도 그렇겠지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소의 나이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사는 동안 일주일이나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근데 말이죠..... 생각보다 지낼만하더라고요. 


언니, 저번 편지에도 말했지만 나는 제주도로 오고 나서부터 쉬는 날에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묘한 죄책감이 들었었어요. '바다가 좋아서, 숲이 좋아서, 제주의 자연이 좋아서 가족들, 친구들 다 내팽개치고 와놓고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니! 어서 지금이라도 뛰쳐나가야 해!' 뭐, 대강 이런 마음이랄까. 흐흐. 그래서 10년 차 제주도민이 되고, 주말 중 하루는 집에서만 보내고 있을 때가 많아진 요즘은, 주말마다 은근하게 마음이 좀 불편하곤 했었거든요.


근데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집에만 하루 종일 있으면서 마음이 불편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게. 물론 좀 지루하기도 했고, 야심차게 책꽂이에서 빼놓은 책은 머리맡에만 두고 핸드폰만 보면서 뒹구르면서 스스로 좀 한심해지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마음 편하게 일주일을 보냈어요. 백수 예행연습인가 싶어서 좀 웃기기도 했고 (물론 백수는 코로나 확진자처럼 맘 편히 쉬고 있지 못하지만 -_-), 형부랑 아기와 진하게 함께한 언니처럼 나도 우리집 고양이들하고 처음으로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어 봤네요. 



코로나를 옮긴 친구를 원망했냐는 언니의 물음은 그래서 "아니"예요. 딱히 힘든 게 없었으니 원망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저 일주일간 붙어 지낸 내 고양이들이 무사했고, 내가 증상이 살짝 있을 때 만난 내 친구가 옮지 않았어서 오히려 너무 다행스럽고 또 감사했어요. 


아마도 나는, 코로나로 인해 실업자가 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코로나가 내 삶을 이 이상으로 뒤흔들까봐 겁내고 있지는 않는가 봐요. 코로나에 걸리고도 잘 지나간 것처럼, 코로나로 인해 생긴 이 변화의 시간들도 잘 지나갈 거라고, 내가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 않고 이 시간들을 기꺼이 견뎌낼 거라고 믿고 싶어요. 아니, 믿어요. 지금은 그런 마음으로 백수의 첫 달을 보내고 있어요. 


언니가 말한 것처럼 내 편지 제목의 '코로나 때문에'가 언젠가는 '코로나 덕분에'로 바뀌는 날도 오겠지. 물론 아직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데, 이렇게 말하기는 너무나 미안하지만요. 이러나저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따위, 썩 꺼져버려!



지난 번 편지 쓸 땐 아직 봉오리도 없었는데, 제주는 진즉에 벚꽃엔딩. 반팔이 어색하지 않은 날들도 요 며칠 있었어요. 그 시간들이 지나는 동안 여태 편지를 미루고 있었다니, 이것도 다 코로나 때문이다!!! 라고, (사실 난 별로 아프지도 않았고, 챙길 사람도 없었으니 몹시 무안하긴 하지만) 일단은 코로나한테 떠넘겨봅시다! 대신 우리는 이제 슈퍼 항체를 가진 완치자니까, 앞으로는 더 부지런히 편지 주고 받아보자고요!


이 코로나가 완전 사라질 무렵엔, 나의 베스트 여행 메이트였던 언니와 어디로든 머얼리, 오래 떠날 수 있길 희망하며! (아가 빨리 키워놔요!)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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