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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May 30. 2022

INFP의 제주 이주민에게는 더욱 간절한 그 이름

'제주여자가 서울여자에게'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 동네 친구

언니. 내가 처음 제주로 이사한다고 했을 때 꽤나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이거였어요.


제주 사람들은 타지 사람들을 엄청 경계하고, 배척한대.


가뜩이나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어려워하고, 낯도 심하게 가리는 성격 나에겐 제법 겁이 나는 말이었던  같아요. 서른 해 남짓,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외롭지 않을  있었던 이유는, 학교나 종교 같은, 내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기꺼이 속할  있었던, 사회와 내 부모님이 만들어준 울타리 덕분이 컸으니까요. 아는 사람이   명도 없는 곳에서, 하물며 그곳이 타지 사람들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곳이라면, 나는 과연 자력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새로운 울타리 속으로 들어갈  있을까.


사실은 별로 자신 없었어요목표를 크게 잡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 컸을 거예요.  계절을  번씩만 살아보는 . 그마저도 녹록지 않으면, 너무 외롭고 힘들면 목표를 채우지 못해도 언제든 돌아와야지. 아마 대강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새연교'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해주는 다리라는 뜻이래요. 그래서 이사 초반에 더 자주 갔었다죠.


그렇게 한 계절을 아홉 번씩 살아내고 이제 제주 10년 차. 나를 겁나게 했던 그 말은, 적어도 내가 살아본 바로는 사실이 아니었어요. 특별히 경계되거나 배척당한 기억은 없어요. 육지에서 왔다는 이유로 나를 안 좋게 보거나, 일부러 소외시킨 사람들은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육지에서 왔다거나, 새로 온 사람이라고 해서 살뜰하게 챙기거나, 사근사근하게 대해주는 사람을 많이 만나진 못하긴 했어요. (어쩌면 이건, 너무 이기적인 욕심이었을지도!)


언니, 제주의 '괸당' 문화라는 말 들어봤으려나? 괸당이 '혈족'이라는 뜻의 제주말이라고 했던가... 암튼 제주는 정말 한 사람만 건너면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정말이지 온 마을이 가족이고, 온 이웃이 지인 같다니까. 그래서일까요. 견고한 괸당 사회의 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열릴 것 같지 않았어요.


여기 들어오고 싶다면, 우리와 친해지고 싶다면,
니가 노력해서 거리를 좁혀와.

-

라는 느낌을 제법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예상했겠지만 나에게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요. 하핫.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사 오고 나서 얼마 안 지나 연애를 시작했고, 그 덕분에 초반에는 그래도 그렇게 외롭다고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외로움에 등 떠밀리듯 시작한 연애는 역시 오래가지 않아 탈이 났죠. 그리고 정말이지, 지독한 외로움이 시작되었지.


언니, 내가 제주에 살기 시작하고 나서 말이에요. '한때 친했지만 지금은 안 친한 사람'이나 '친하지는 않았지만 어설프게 연락이 이어지던 사람' 또는 '같이 노는 무리에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안 친했던 사람'이 제주에 왔다며 '얼굴이나 보자'고 연락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어요. 내가 계속 육지에 살았다면 앞으로도 딱히 얼굴 볼 일 없었을 것 같은데 내가 제주에 산다는 이유로 만나게 되다니,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는데, 딱 그만큼 반갑지 않기도 했어요. 오랜만에 만나서 할 말도 딱히 없을 것 같은데, 그 어색함을 버텨야 하는 게 불편했거든. (물론 그나마도 이제 나이 먹고, 제주에 산지 오래되니 거의 없지만-_-)


하지만 그때만큼은, 연애에 실패하고 홀로 제주살이의 맛을 온몸으로 그 시기만큼은 모두가 눈물나게 반가웠어요. 누구든 나를 혼자 두지 말아 주기를, 그런 기분을 처음 느껴봤던 것 같아요. 


그런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너무 그리웠던 이름이 바로 동네 친구였어요. 그냥 시시콜콜한 잡담들로 나의 좌절의 시기와 어쩔 수 없는 절망의 때마다 내 마음이 비는 시간을 바쁘게 채워주던 가까이 살던 친구들.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렇게 우르르 붙어 다니던 그때에도 이미 서로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너네가 있어서 참 좋다.


그런 조금 오글거리는 말들도 우리는 서로 제법 잘하지 않았어요? 으으. 하하핫. 암튼 그렇게 떨어지기 전에도 이미 소중하고 귀했던 그런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그렇게도 쉽게, 이다지도 멀리 떠나올 생각을 했었을까- 그제야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주, 복에 겨워서 그런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지. (물론 내가 계속 거기 살았어도, 각자 결혼하고 이사 가고, 하면서 결국 뿔뿔이 흩어지는 결과는 마찬가지였겠지만!)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서로가 서로를 친애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한 동네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산다는 건, 생각보다 기적 같은 일이구나. 


누군가와의 사귐의 시작에 이해관계가 얽히기 쉬운 나이에,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와 모든 관계가 0으로 리셋되면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이네요. 20년 전 어릴 적엔 'E'였는데, 어째서인지 파워 'I'가 되어버린 지금에는 더더욱. 이제는 좀 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겠지요.


제주도 춤판에서 만난 동네 친구들ㅋㅋㅋ


물론 우리가 동네 친구로 살았던 그 동네에서보다 제주에서 산 기간이 더 길어진 지금은 이곳에서의 동네 친구들도 생겼어요. 제주 살기 시작한 후로 별별 걸 다 배우러 다녔던 건, 육지 사는 동안 바쁘게 사느라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취미 생활을 갖고 싶어서기도 했지만, 제주의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어서이기도 했어요. 근데 그런 거에 비해서는 진짜 친구 많이 못 사귀긴 했네요.


그래도 지금은 내가 겉도는 이방인으로 살지 않도록 안부를 궁금해해 주고, 인생을 격려해주는 동네 친구들이 생겼으니, 감사한 일이에요. 이건 제주에서 보낸 내 9년의 시간이 주는 선물이려나. 


2010년의 우리들, 제주


요즘 때마침 미니홈피 사진들이 복구되어있더라고요! 사진들 보다가 문득 떠오른 건데 내 제주 앓이가 시작되었던 게 딱 우리가 함께 왔던 제주 여행 때였어요. 이때 이 시간이 너무 좋았어서, 제주에 있던 우리가 젊고 예뻤어서, 나는 맹목적으로 제주를 좋아하게 되었거든요. 그러니 당신들은 내 제주살이에 지분이 있다! 부디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내가 다시 제주에서 외로워지는 순간이 온다면 나의 쓸쓸함에 책임을 져야 해!!! 하하하하하...하?


이제는 우리가 함께 '우리 동네'라고 부르던 그 동네에 살고 있지 않지만 내가 가끔 육지에 올라가면 기꺼이 다시 그 동네로 모여주는 여전한 나의 동네 친구들. 내가 이곳에서도 다행히 친구들을 사귀고,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는 건 그 마음들 덕분일지도. 우리는 이제 서울 여자와 제주 여자,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오래도록 정다운 동네 친구로 남을 수 있길 바라요! 


요즘 사랑해마지않는 제주 이야기, 우리들의 블루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도 이야기라 요즘 빠뜨리지 않고 챙겨 보고 있는데, 이번주에 두 제주도 할망들이 손을 잡고 제주 풍경을 걷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이번 편지 주제가 마침 '동네 친구'라서 더욱 그 장면이 좋고, 마음이 더 따뜻했네요. 춘희삼춘과 옥동삼춘처럼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살 수 있는, 기꺼이 서로의 인생에 따뜻하게 참견하며 살아가는 동네 친구가 나의 노년에도 남아 있기를, 그리고 나 역시 그들에게 그런 친구이기를 꿈꾸며! 안녕, 나의 동네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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