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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Oct 29. 2022

코로나 덕분에 가족이 얻은 것

'서울여자가 제주여자'에게 보내는 네 번째 편지 - 코로나

로사야, 네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카톡을 보내왔을 때 난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어쩌다가! 청정 제주에서 코로나라니!"라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정확히 이틀 뒤 내가 너에게 톡을 했네. 참 인생이란.



나 진짜 두 돌도 안 된 지온이가 옮을까 봐 조심한다고 했거든... 재택근무 중이었고 만남도 자제했는데 정말 네 말대로 한 번씩 다 걸려야 끝나려나.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가족에게까지 침투했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디서 왜 코로나에 걸렸는지 모른다면 우리는 어디서 코로나에 옮았는지 알고 있는 케이스였잖아. 로사야, 혹시 넌 너에게 코로나를 옮긴 친구가 잠시라도 원망스러웠던 적 있었어? 난 엄마에게 코로나가 옮았는데 나보다 3살 아기인 내 딸이 코로나에 걸렸단 사실 때문에 엄마를 원망했던 것 같아.


엄마는 퇴직 전까지 근무하던 초등학교에 코로나가 돌아 교사들이 줄줄이 못 나온다고 걱정을 하시더니 어느 날 "나 땜빵 교사로 나간다" 하시는 거야. 당시 한 반에서 확진자가 10명 이상 나오고 있다고 들었는데 거길 가신다고? 난 나이 드신 엄마와 백신도 안 맞으신 더 나이 드신 아빠가 너무 걱정이 되어서 엄마에게 나가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어. "그 선생님들은 젊지만 엄마는 할머니라고! 엄마는 60세가 넘은 바이러스 취약자라고!" 엄마는 "교사 구하기도 힘든데 어찌 그러니." 하시면서 수업하러 가셨고 결국 코로나에 걸리셨다.


엄마 생신이라 주말에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했고 그 다음날 엄마를 시작으로 한 코로나 확진은 정확히 2~3일 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찾아왔어. 아, 맞다. 이후에 지온이를 봐주던 시어머니까지 말이야. 시어머니는 엄마보다 더 연세가 많으신데 내가 얼마나 죄송하던지. 하... 이 모든 원망이 엄마에게 가더라고 "엄마, 그러니깐 내가 학교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로 시작한 원망은 결국 입 밖으로 터져 나왔고 그렇게 시작한 말다툼으로 이틀간 전화도 서로 안 하고 토라져있었다.


우리집의 코로나 풍경 (아파서 힘없이 안긴 지온이는 다시 봐도 맴찢)


모두가 코로나에 걸리는 시대라 해도 우리는 절대 걸리지 않을 거라고, 지금까지 잘 버텼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정말 엄마 한 사람의 확진으로 친정, 시댁, 우리 집까지 순식간에 전염되는 걸 보면서 막연히 높다고 생각되던 확진자 숫자와 코로나 전파력이 무척 실감 나더라. 이렇게 순식간에 쫙 퍼지는 거구나. 시간이 좀 지나 40도 가까이 오르던 지온이 열이 떨어지니 내 마음도 좀 진정되고 이게 꼭 엄마의 잘못일까 싶었어. 엄마도 걸릴 줄 몰랐던 것을... 우리를 만나던 생일 아침에도 자가 키트로 검사하고 음성이라 나오셨다 했거늘 이건 엄마 탓이 아니라, 그냥 코로나 탓인가. 요즘 본 드라마 대사처럼 그저 시대의 탓인가 싶기도 하다. 


여하튼 그놈의 코로나 덕분에 우리 세 가족 지겹도록 붙어있었다. 집 거실에서 징글징글하게 함께 했어. 나와 지온이가 먼저 코로나에 확진되었을 때 "제발 지온이를 돌볼 수 있을 만큼만 아프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거든. 하느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진짜 딱 지온이를 볼 수 있을 만큼 가볍게 아팠다. 남아있는 체력을 모아서 삼시세끼 아기 밥, 어른 밥을 짓고, 밖에 나가지 못하는 지온이랑 붙어서 놀다 한계가 올 때 즈음 약기운에 취해 잠이 드는 것을 반복. 내가 정말 코로나 때문에 아픈 게 아니라 너희 두 사람(아빠랑 딸) 건사하다 곧 몸살이 걸릴 것 같다며 하소연해댔는데... 막상 올 것 같던 몸살은 안 오더라, 야...;;;


정확히 격리 3일 차가 되니 지온이는 화르르 살아나 에너지를 쌩쌩 분출하기 시작했어. 역시 회복도 나이순인가. 난 코로나 때문에 나 살자고 쿠팡에서 잘 사지도 않던 장난감을 3개나 주문했어. 플레이도우(점토 세트), 그림판, 그리고 헤어드레서라고 머리를 열고 점토를 넣으면 쭉 머리카락이 나오는 싱기방기한 장난감까지. 밤 11시 전 마켓컬리로 입맛 당기는 것들을 마구 담고, 급조한 장난감과 지온이 생일 기념으로 사둔 책 전집 그리고 절대 빠질 수 없는 유튜브 영상으로 격리기간을 버텼다. 격리 중에 쓴 SNS를 보니 '코로나보다 무서운 게 밖에 나가지 못하는 집콕 육아다'라고 적혀 있네. 진짜 그땐 그랬지. 목이 좀 아프고 기침은 좀 나오지만 넷플릭스에서 그동안 못 본 프로들 보면서 격리한다는 친구들이 부럽기까지(?) 했다니까... 나도 정주행 하고 싶은 거 얼마나 많은데 어흑흑.


날 살려준 장난감들


격리 후반부가 될수록 바깥 날씨가 예사롭지 않더니 격리가 끝나고 세상 밖으로 나오니 오 마이 갓... 봄이 와버렸네. 코로나도 가고, 바짓가랑이 붙들며 질척이던 겨울도 가버린 느낌. 뭔가 병마와 싸우고 나오니 세상이 바뀌어있는 기분이 들더라. 무채색 인생 배경에 분홍, 연두로 색칠한 느낌이었어. 우리는 해방감을 온몸으로 뿜어내듯 어디 갈까? 어디 갈까? 하면서 나와서 산을 오르고, 공원을 걷고, 근처 학교 교정에서 벚꽃놀이를 했어. 정말 외출할 수 있단 것이, 땅을 밟고 걸을 수 있단 것이, 꽃과 나무를 보고 이렇게 바깥공기와 함께 숨 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더라.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과 너무 당연한 것들이 코로나 때문에 멀어진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근데 로사야. 좀 이상한 게 있어. 이 표현이 정확한지 모르겠는데. 지나고 보니 격리하던 우리 가족이 좀 그립기도 했어.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셋다 어디 안 가고, 회사 눈치 안 보고, 너무 당연하고 당당하게 집에서 붙어 있을 수 있던 시간이 그립더라. 맞벌이 부부라 둘 다 늘 일을 해야 했고 지온이는 할머니 댁을 오가곤 했는데. 우리 세 가족이 이렇게 1주일 넘도록 내내 함께 있던 시간은 지온이를 낳고 둘 다 육아휴직을 했던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아. 지겹고 답답했지만 셋이 진하게 함께한 시간이기도 하더라고. 우리에게 그런 시간을 만들어 준 게 코로나였다니, 뭔가 쓰면서도 모순 같지만 이렇게 코로나 덕분에 얻은 그리움도 있더라.


지금 남편은 회사에 갔고 아이는 어린이집으로 가고 없어. 빈 집에 혼자 남아 셋이 함께 삼시 세 끼를 먹던 식탁에 앉아있다. 내 눈앞에는 셋이 얽히고 뒹굴던 우리 집, 풍선과 장난감과 책과 색연필이 널려있고 지온이가 그토록 찾던 리모컨이 있던 거실이 보인다. 지내는 내내 콜록콜록 서로 바이러스를 뿜어댔고, 웃고, 짜증도 내고, 먹고, 자고 부대끼며 코로나를 지나온 우리 가족이 있던 자리. 격리 해제후 거의 10일 만에 우리를 본 어머님이 지온에게 이렇게 말하시더라. "지온아 오랫동안 엄마 아빠랑 있어서 그런가? 표정이 행복해 보이네." 로사야, 진짜 인생의 모든 안 좋은 것들엔 반대로 좋은 것도 숨어있기 마련인가 봐. 심지어 코로나까지도 그랬네. 너의 코로나에도 그런 이면이 있었길 바라고, 네 편지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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