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살이 이렇게 젊은 건지 몰랐어

'서울여자가 제주여자'에게 보내는 세 번째 편지 - 40살

로사야. 40살을 주제로 너와 편지를 쓰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지. 그리고 생각했어. 올해 내 나이가 정확히 몇 이더라? 나이를 셈한 지 오래인 것 같다. 정확하게 말하면 의식적으로 앞에 4라는 숫자가 붙고 나서 더 이상 나이를 계산하지 않는 삶을 선택한 것 같아. 스무 살이 되던 때를 회상해보면 한순간 어른이 된 것 같았어. 불가능했다가 스물이 되면서 할 수 있는 건 무척이나 많았지. 참 설레는 나이였다. 그땐 나이 먹은 게 좋았는데 지금 보면 너무 어려서 나이도 마냥 가벼웠던 것 같아. 서른이 된 날은 무척 태연한 척했었어. 속으로 아.. 30이라니 뭔가 좀 실패한 기분인데?라는 쎄한 느낌이 들었지. 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30대는 최고였어. 젊음의 테두리 안에 있으면서도 독립적이고 자유로웠지.

근데 나 보고 마흔 살이 되었다잖아! 게다가 난 40살에 첫 아이를 낳았잖아!!!! 이건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것과 비교가 안 되는 무거움이었어. 마음만 무거운 게 아니라 이미 몸이 무거웠지. 주변에선 마흔 앓이로 몸이 감기든 몸살이든 한 번은 아플 거라고 겁을 주고, 임신을 해서 병원을 갔더니 바로 노산 이라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어. 뭔가 푸른 블루빛의 시절이 회색 잿빛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지. 나보다 환경이 먼저 내 나이를 알아채버린 것 같았어. 모든 게 조금 어둡고 무거웠디. 그렇게 배까지 잔뜩 불러오며 마흔이 된 것 같네.

40이라는 나이는 일단 생김새가 예쁘지 않아. 4라는 숫자가 주는 미묘한 불쾌함이 첫인상이랄까. 숫자는 저마다의 예쁨이 있는데 4는 전통적으로 좀 그렇잖아. 주변 어른들은 40대도 괜찮다며 살아 보라 했는데, 아닌 것 같았어. 젊음이 확~ 꺾인 느낌이고 흰머리도 군데군데 눈에 띄게 많아졌지. 길거리에 다니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이제 확실히 나와 세대가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 한눈에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사람들은 나를 보면 나이 들었다고 느낄까? 진짜 아줌마 같을까? 진심 궁금하다. 과연 알아서 좋을까 싶기도 하지만.

너와 전화를 끊고 지금 내 나이의 나에 대해 생각해봤어. 로사야, 난 정말이지 그대로인 것 같아. 진심이야!!! 그래, 그래. 진심으로 난 그대로야. 이래서 어른들이 마음만은 청춘이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 진짜 마음만은 절정이야. 아직도 따뜻한 라떼 한 잔 사들고 의욕에 차 일을 시작하고, 회의 때 내 의견을 열심히 말하고 끄덕이고 모르는 건 찾아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아직도 핫플에 가면 붕붕 신이 나고,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 앞에 서면 서울에 왔다 싶어 가슴이 두근두근해. 여전히 친구들과 팔짱 끼고 걷고 수다 떠는 것이 즐거워. 나이키 덩크 범고래 운동화가 사고 싶어서 열심히 '럭키드로우'에 응모하고, 이 나이까지 하고 있을지 몰랐지만 영어공부도 아직... 막상 시작하면 피곤해할게 뻔한데 배우고 싶은 건 아직도 있더라고. 넷플릭스에서 '에밀리 파리에 가다'나, '나는 솔로'를 보며 좋아라 하고 있다. (물론 나이답게 돌싱글즈도 애청 중이지만! 히히)

난 마흔에도 여전히 이런 귀여운 것이 좋은데 말야

무엇보다 절정인건 마음이야. 

아직도 뭔가가 될 것 같거든. 지금 뭔가를 이루기에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희망이 조금은 남았을 것 같아. 어쩌면 아직 나라는 사람도 조금은 바꿀 수 있을 것도 같아. 매일 조금씩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고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조금 더 괜찮은 내가 되고 싶어. 젊을 때 난 40살이 되면 아빠 엄마 같은 그냥 아저씨 아줌마가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40살은 너무 젊은 거였어. 이렇게 40살이 되어도 똑같은 마음일 줄 몰랐어. 너를 보면서도 생각해. 40살이 된 네가 이렇게 똑같을 줄 몰랐어. 진짜야. (넌 또 언니...하면서 왜 이래? 하는 눈빛을 보낼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20대 때처럼 귀엽고, 여전히 위트와 감성 넘치던 예전 너와 똑같단다. 이 마음이 지속되길 바라고 바라본다. 가능하다면 50살이 되었을 때도 "로사야, 나 50살이 이렇게 젊은 건지 몰랐어!!"라고 말하고 싶구나. 너어어무!

ps. 헌데 로사야, 내 딸이 초등학교 입학을 해서 학부모가 되면 내가 가장 나이 든 학부형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때도 흔들리지 않고 이 맘 그대로 변치 않았길 기도해주라!

김광민의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를 들으며 너에게 편지를 쓴다. 새삼 우리가 멀다는 사실이 조금 슬퍼. 역시 나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까.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