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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Oct 29. 2022

‘주말은 가족과 함께’ 정말 쉽네요

'서울여자가 제주여자'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 주말

제주 여자, 로사야.

우리 엄마가 가족들에게 늘 외치시던 말이 하나 있었는데 "주말에 한 끼는 가족끼리 먹자"였어.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이신 데다 아빠는 산으로 들로 다니는 것을 좋아하셨고, 엄마는 워낙 친구도 많고 모임도 많으셨어. 두 분 다 각자 라이프로 바쁘셨지. 게다가 사람 좋아하고 밖에 나가기 좋아하는 나와 내 동생까지 합세하면 주말 집은 텅 비기 일쑤였다. 그런 우리 가족이 유일하게 함께 있는 아침. 엄마는 주말의 특권인 늦잠을 자고 있는 나와 내 동생을 방문을 전쟁을 앞둔 장군처럼 두드리셨어. 그리고 거의 반즈음 감긴 눈의 우리를 반 강제로 식탁에 앉히셨지. 그렇게 우리 4명의 가족이 밥을 먹던 아침이 생각난다. 그땐 "아, 엄마! 나 밥 먹기 싫고 더 자고 싶다고!"를 외쳤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온전히 4명의 가족이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구나 싶네. 너도 제주로 이주했고, 너희 오빠도 결혼을 했으니 너희 가족도 4명이 평범하게 식사해 본 지 제법 오래됐지?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 아침식사가 끝나면, 정말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신나게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말이지만 바빴어. 코로나도 없던 시절 근심 없이, 걱정 없이, 마스크도 없이 가고 싶은 동네 탐방, 맛집과 카페부터, 공연, 전시회, 콘서트까지 두루두루 도장을 찍어댔지. 지금이야 넷플릭스 왓챠의 시절이지만 그땐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게 너무 당연하던 CGV 메가박스 시절이라, 주일에 한 편씩 무조건 영화 관람을 했었고 영화 보고 나서 먹고 수다 떠는 게 내겐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당연하던 주말이었다. 청량한 가을 올림픽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아침부터 밤까지 야외 콘서트를 즐겼고, 지금 남편과 여름밤 남산 골목골목을 걷다 양꼬치에 칭다오를 한 잔 하기도 했지, 운동 삼아 마포대교를 건너서 한강에 돗자리를 펴고 먹던 라면은 찐 주말의 맛이었어. 친구랑 팔짱 끼고 도란도란 대화하며 광화문, 을지로, 원서동, 효자동, 성북동 강북 투어도 주말의 호사였고. 기억나? 우리 친구들 다 같이 강북 여행 가서 자하동을 걷고, 이중섭 미술관도 가고 그랬잖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고 또 언제든 외각으로 떠날 수 있던 그야말로 자유롭고 홀가분하고 코로나도 없던 주말이었더랬지. 하... 지금 쓰는데 왜 저런 시절이 다시 내게 오지 않을 것 같을까? 훌쩍.


화려했던 과거의 주말 풍경


아기를 낳고 이 모든 게 바뀌었다고 쓰긴 싫지만. 그게 팩트네. 결혼도 크게 바꾸지 못했던 나의 주말은 아이를 낳고 180도 바뀌었어. 일단 주말이 왜 특별해? 주말 왜 기다려? 응? 주말과 주중의 차이가 사라진 지 오래야. 회사일을 월화수목금금금 하지 않을 뿐이지. 가사노동과 육아를 하다 보면 차라리 평일이 주말보다 더 평온할 때도 있다? "차라리 출근하는 게 편해"라던 선배들의 말을 나도 실감하게 되다니. 전생쯤으로 느껴지는 이전 나의 주말은 쉬는 날 그리고 노는 날이었는데. 이제 그런 주말은 사라졌어. 우리 부부의 바람은 주말이 있는 삶이 아니라. 오늘 하루라도 아기가 빨리 잠들어 저녁이 있는 삶이라도 얻는 것이니. 24시간 통째로 자유롭던 주말은 내게 언감생심 사치다.


그런데 로사야. 쉬고 놀던 주말은 사라졌지만 대신 새로운 주말이 확실하게 자리 잡은 것 같아. 바로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이야. 모범적인 광고 문구 같던 "주말은 가족과 함께"가 정말 이루어지는 주말이랄까? 이제 이런 주말에 익숙해져서인지. 가끔은 이 풍경이 마음에 들고, 이 와중에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나처럼 나가 노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가끔 나도 내가 신기해. 평일엔 나도 일을 해야 하고 아이도 어린이집 보내야 해서 늘 바쁜데, 주말 아침엔 같이 이불 위에서 뒹굴 거리며 놀 수 있고 딸이 그렇게 좋아하는 놀이터도 함께 갈 수 있어. 내가 아침밥을 준비하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풍선으로 공놀이를 하며 아빠랑 놀고 있는 웃음 가득한 지온이를 바라볼 때나, 셋이 함께 손을 잡고 나가 붕어빵과 옥수수를 사서 돌아오는 주말엔 행복하단 생각이 들어. 지온이 낮잠을 재울까 말까, 우리 오늘은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친정? 시댁? 마트? 공원? 둘이서 오늘의 최대 미션을 함께 고민하고. 일찍 재우기에 성공해서 영화라도 한편 본다면 그 주말은 대성공이다.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대부분 정신없이 지온이 뒤를 쫓아다니다 보면 주말은 끝나버려. 이미 내 몸도 지쳐 저녁이 주어져도 즐기지 못하고 아이 재우다 잠들기 일쑤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온이를 봐서 행복하고 오늘 하루는 어디에 맡기거나 떼어놓지 않고 하루 종일 함께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하는 것 같아라는 교과서 같은 문장을 격렬히 깨닫는 시간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내일이 토요일이구나. 생각할 땐 무조건 '셋이 함께 하겠구나' '같이 지온이를 보겠구나'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나. 이제 함께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진...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또 그럼에도 함께 여서 행복한 주말인 것 같아. 우리 엄마가 그렇게 목놓아 외치던 '주말은 가족과 함께'가 이토록 자연스럽게 내 삶에 자리 잡았다니! 이렇게 쉽게 그럴 수밖에 없게 말이야. 한편으로는 이렇게 새롭게 구성된 우리 세 가족도 오롯이 함께 먹고 자고 할 날도 영원하지 않을 테니, 하루하루 한 끼니 한 끼니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는 결심도 해본다.


위와는 너무 다른 요즘의 주말 풍경


요번 주말엔 네가 육지에 올라온다 했지? 금토일 머무르는 일정. 너도 나의 소중한 가족과 같으니... 우리 가족과 함께하지 않으련? 소중한 시간 나와 같이 육아해보즈아!!!! 흐흐, 마스크 잘 쓰고 조심히 올라와, 올라오면 연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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