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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Oct 29. 2022

동네 친구, 그건 신이 주신 선물

'서울여자가 제주여자'에게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 동네 친구

요즘 나는 단 한 명이라도 마음 맞는 동네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신이 주신 축복이라 생각해. 

나의 구) 동네 친구 로사야. 그래서 난 가끔 제주로 떠난 네가 너무 그리워. (진심이란다.)


우리가 동네 친구였던 시절 기억나니? 5총사로 구성된 우리들. 남들이 들으면 뭐야? 유치해!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5명의 이름은 도.로.시!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뜻이 있다며 지었던 기억이 난다. 다들 가까이 살아서 '만나자' 하면 초고속으로 모이던 사이. 우리의 아지트 카페 '커공'이 건재했고, 카페 문을 열면 우리가 귀여워하던 비숑 강아지도 있었지. 주인아저씨는 시종일관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셨지만 너랑 내가 좋아하던 라떼 맛은 동네에서 그 집이 최고였어. 퇴근길이나 주말 밤이나 언제든 시간 나면 금방 하나 둘 모여 앉을 수 있었고, 동네라 집에 갈 걱정 없이 가뿐하고 편하고 안전했지. 서울에서 경기도 집으로 돌아올 때면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처럼 긴 여정에 너무 지치곤 했는데... 동네에만 들어오면 친구들이 있어서 좋았어. 너네가 동네 카페나 식당에서 모여 있단 메시지라도 받으면 정말 신나서 모터 단 듯 슝- 동네로 왔던 것 같아. 


그땐 모두 결혼 전이고, 부모님과 살 때라 지금보다 삶에 무게도 덜했고, 고민거리 역시 집 걱정, 돈 걱정이 아닌 청춘스러운 것들 뿐이었지. 서로의 일과 연애, 가족, 성당, 친구 이야기들이 오갔어.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같이 뭐할까? 어디 갈까? 자전거 타볼까? 빵 굽는 거 배워볼까?라는 지금은 사라진(또르르)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어. 매년 생일 파티도 함께하고, 제주 여행도 같이, 애인과 이별해서 울던 날들도 함께 부여잡고, 축하할 일이나 위로할 일엔 언제든 함께이던 시절. 네 말대로 그때 우리는 도로시가 있어서 나 너무 '행복해요. 고마워요'라는 표현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 서로 다 통했나 봐. 그리고 알았나 봐. 가까이에 우리 서로가 있어서 각자의 인생이 덜 외롭고, 더 따뜻하게 풍성해 진단 걸 말이야. 


개미가 그린 동네 친구 도로시 그리고 너의 일기 (우리가 이런 언니들이었다고! 크!!)


지금 나와 살고 있는 남편도 애초에 동네 친구가 시작이었지. 


우린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핸드폰이 없던 시절 서로 집에 잘 들어갔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서로 방의 형광등 불을 깜빡깜빡 껐다 켰다 해주었어. 그게 '잘 들어왔어'라는 신호였다니. 지금 생각하니깐 그때 어린 우리 너어어어무 귀여웠다. 크리스마스엔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1층 우체통에 넣고 가곤 했었고, 시내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같은 버스를 타고 내려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걸어와서 덜 무섭고, 덜 외롭던 나의 동네 친구가 지금은 같은 집으로 들어오는 호적 메이트가 되었구나! 


나와 10살 차이가 나는 회사 동료 카프카와도 더 친해진 계기가 같은 동네에 살았기 때문인 것 같아, 나와 무려 10살 차이가 그녀와 나는 출퇴근을 함께했어. 우린 그때를 월요병이 없던 시절이라 표하곤 하는데 (같이 출퇴근하며 떨던 수다 덕에) 그녀는 본가에서 엄마가 보내주신 과일과 야채를 내게 나눠주고, 나도 우리 집 저녁 식탁에 그녀 수저를 한 벌 더 차려 놓고 부르고, 같이 테니스를 치고 따릉이를 타고 돌아왔었어. 가끔 아파트 벤치에서 편의점 맥주를 따거나, 동네 카페 의자에 앉아서 노을을 보던 사이. 슬렁슬렁 목적 없이 이유 없이 동네를 누비던 그때가 너무 그리워. 지금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역시 동네 친구의 힘이란 어마어마하구려-


같은 크록스 신고 만나던 동네 친구. 수저 한 벌만 더 올리면 충분!



이 글을 쓰면서도 만나고 싶고 그립다. 동네 친구 말이야.


동네 친구의 장점은 무척 많지만 집이 가깝다는 그 어마어마한 힘은 일단 몸에 든 긴장을 쫙- 빼게 해주는 것 같아. 옷을 챙겨 입고, 가방을 어깨에 메고 서울행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는 가벼움. 쪼리 하나 끌고선 반바지 입고 편하게 룰루랄라 나갈 수 있는 것. 그리고 같은 동네에 살면 시키지 않았는데도 뭔가 비슷해. 가족 구성원들도 비슷하고, 살아온 환경도 비슷하고, 지금 살고 있는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지. 생활 범주 역시 같기에 놀고, 먹고, 마시는 동선도 크레파스로 원을 그리듯 겹치기 마련. 배경이 비슷하니 나누는 대화나 생각 같은 알맹이도 비슷했던 것 같아. 무엇보다 만나고 헤어질 때 집에 갈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화룡점정 같다. 거기다 친하고 편하고 마음까지 잘 맞으면 이건 진짜 못 잃어... 못 잊어...


예전에는 그런 생각 잘 못했는데. 언제 어디서든 친구를 만들기도 만나기도 쉬웠는데. 독립하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서울로, 경기로 이사를 다니며 살다 보니 정말 마음 맞는 동네 친구가 있다는 건 신이 내린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내 가족이 생기고 아이까지 태어나니 예전 같은 동네 친구가 있다 해도 그때처럼 쉽게 모이고 같이 놀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슬프기도 하지만 말이야. 동네 친구 자체는 축복이란 맘엔 변함없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로 이사온지 1년. 그 사이 이 동네에서 생긴 친구가 있어. 다 내 딸 지온이가 만들어준 친구야. 지온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 그리고 같은 아파트에서 아기를 키우는 엄마. 육아는 내게 동네 친구도 만들어주더라. 딸이 다닌 어린이집 친구 엄마를 알게 되고, 아빠도 알게 되면서 두 가족이 카페에 모여 앉았던 주말 오후는 정말 색다른 느낌이었어. 서로 육아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며, 두 아이를 공동 육아하는 기분이더라고. 지금 내 이야기보따리에는 아이에 관련된 이야기뿐이라 이 이야기를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나눌 수 있다는 게 개운하고 좋더라.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를 키운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부모는 동네 친구가 될 가능성이 50% 이상인 느낌! 이렇게 동네 친구의 형태도 삶의 모습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나 싶어. 그럼에도 이렇게든 저렇게든 연이 된 우리 동네 사람들 중에 진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찐 친구를 얻을 수 있길 바라본다.



나에게 새로운 동네친구를 만들어 준 딸과 그녀의 친구



내가 요번에 제주 출장 갔을 때 너에게 했던 말 기억나? 우리가 할머니 돼서 그때까지 도로시 친구들이 변함없이 유지된다면 같이 계모임 해서 모은 돈으로 여행도 가고, 또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며 재밌을 것 같다고 한 말 말이야. 나 그 말을 하면서 나이 든 우리를 상상했는데 너무 기대가 돼서 할머니가 되는 게 두렵지만은 않더라. 20대에 만난 그 시절 나의 동네 친구야.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던 네가 하루 종일 걸어도 닿을 수 없는 제주 섬으로 가버렸지만 난 우리가 다시 가깝게 모 여살 그날을 기다려. 한번 동네 친구는 영원한 친구. 그리고 동네 친구는 모여 살아야 제 맛이거든. 언제든 가볍게 만날 수 있는 거리로 닿을 때까지 더 많이 그리워할게. 여름에 제주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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