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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사 Feb 21. 2022

일이 재미있다니, 외계인인가요?

'제주여자가 서울여자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 일

언니.  '언니'라는 말 앞에 뭐라도 좀 붙여볼까 싶어 '친애하는', '사랑하는', '보고 싶은' 뭐 이렇게 저렇게 수식어를 넣어봤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다 어색하네요. 하지만 처음부터 뭔가 거창하고, 남다른 걸 쓰려고 하면 앞으로 편지 쓸 때마다 고민하게 될 테니 일단 그냥 '언니'로만 두어요. 나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언니와 즐겁고 또 편하게 편지를 주고받고 싶으니까.


처음 편지를 쓰자는 이야기를 했던 게 3년 하고도 두 달 전쯤인 것 같은데, 첫 편지를 쓰는 데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그때는 언니와 나 모두 30대였는데 이제는 둘 다 40대가 되었고, 그리고 언니는 그 사이 아기 엄마가 되었고요. 3년 동안 나는 나이를 더 먹은 것 말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무엇이든 변화를 겪어내고 살아가는 언니가 나는, 뭐랄까. 부러운 것 같기도, 멋진 것 같기도 해요. 아니, 어쩌면 조금 심통이 난 걸지도! 여행을 갈 때도, 제주에 사는 내가 육지에 올라가 도시를 만끽하고 싶을 때도 언니는 항상 연락하고 싶은 일순위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외박과 외출이 전처럼 쉬운 사람이 아니니 말이지요. 그래도 이 놀라운 언니의 변화의 순간들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사이라는 것만큼은 변함없다는 것 그리고 20대에 만나 40대가 될 때까지, 한 동네에 함께 살던 우리가 서울과 제주, 이렇게 먼 곳에 살게 되었음에도 계속 좋은 친구일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가져봅니다. 참 고마운 일이에요. 

음, 첫 편지라 그런지 서두가 길었네요.




언니, 지금은 일요일 밤이에요. 지금 이 시간의 바로 이 기분 덕분에, 나는 내가 직장 생활을 하는한 평생 월요일을 사랑할 수 없을 거란 걸 깨달아요. 직장 생활한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어쩌면 출근하는 월요일이란 이토록 한결같이 싫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어쩌면 몇 달 후쯤엔 나는 출근할 수 있는 월요일을 그리워하게 될는지도 모르겠어요. 비록 재미는 없지만, 나의 워라밸을 지키기에는 가장 탁월한 곳이라고 믿어왔던 회사가 작년 가을 매각을 결정하고, 내 워크와 라이프를 모두 뒤흔든지 벌써 반 년이 되어가네요. 매각 소식을 처음 들은 후로 줄곧 그 다음을 고민했는데, 반 년이 결코 짧은 시간도 아니건만, 그 사이에 그 무엇도 결정하지 못했어요.


여러 고민들 중 하나로 이직을 생각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구인 사이트에서 이력서를 다시 정리했어요. 그러다 두 번쯤 깜짝 놀라고 말았죠.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내 경력의 수치가 어느새 20년에 가까워져있다는 걸 보고서 한 번, 그리고 경력이 이만큼 늘은 거 외에는 그 무엇도 더 수정하거나 추가할 것이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와아. 20대에 썼던 이력서와 40대에 다시 쓰는 이력서는 깜짝 놀랄만큼 변한 것이 별로 없었어요. 2~30대를 살아오면서 한때는 뭔가 많은 것을 바쁘게 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특히 제주에 와서는 적응을 핑계로 새로운 것도 많이 배우고, 열심히 돈을 쓰고 다닌 것 같은데, 난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쉬라길래 그냥 쉬었지...


그래도 경력이 많이 쌓였으니 그 경력만큼 내 능력치도 쌓였겠지.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이상하게 그 동안 버티는 것 말고는 잘하게 된 것이 딱히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의 커리어를 살려 지금보다 더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달까. 내가 제주도로 이주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제주도에 살면서 도태될 것이 두렵지 않냐."고. 그 땐 난 치열하게 살지 않으려고 제주에 온 거라, 경쟁에 뒤쳐지는 게 두렵지 않다고 대답했었어요. 그런데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포기하지도 못하면서, '더 나은 조건'을 갖추지는 못한 나를 마주하게 된 지금에서야 나는 뒤쳐진 내가, 그런 나의 나이가 조금 버겁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새로운 일을 한 번 시작해볼까? 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근데 정말이지,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이나 도전하고 싶은 것 따위가 놀랍도록 떠오르지 않네요. 그렇게 돈 쓰며 뭔가 하고 다니는 동안 자기계발도 안할 거면,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좀 진지하게 찾아라도 보지 그랬니, 한심한 과거의 나야.



실은 지금 이 회사를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즐겁지 않았지만, 적당히 안정적이고, 일하기 편하니 일자리가 별로 없는 제주라는 이 섬에서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일은 그냥 돈 버는 수단일 뿐이고 꼭 일에서 즐거움이나 성취감 따위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스스로 한심함이나 죄책감이 몰려올 때 내가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제일 많이 떠올린 말은 바로 이거였죠.


"괜찮아,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


근데 말이지. 언니는 안 그렇더라고요. 최근 언젠가 통화에서 요즘 일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말하는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언니가 외계인 같았어요. 일이 좋아서 한다는 사람은 용이나 해태 같은 전설 속 동물같은 건 줄 알았더니, 내 주변에 일이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한다는 사람이 정말 있구나. 거기다 얼마 전에 TV에서 본 설악산 지게꾼 아저씨한테 2연타를 맞았죠. 한 시간 반을 무거운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가 물건을 전해주고, 고작 6천 원을 받으면서도 불만을 갖지 않다니! 여전히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기꺼이 지게를 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니! TV를 보는 동안 계속 한 마디가 머릿 속을 맴돌았어요.


"아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건 아니야."




사실 제주에 올 때 생각했었어요. 꼭 열심히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때 나는 약간 번아웃이었고, 앞으로 다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었거든요. 그리고 왠지 제주는, 그래도 될 것 같은 섬이었달까. 제주에 살면서 육지에서와 다를 바 없는 직장인으로 계속 살 거라고는 왠지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암튼 그때의 그 결심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제 더이상 남들도 다 그렇다는 핑계는 댈 수 없을 것 같아요. 


40대까지도 취업이나 이직 같은 걸 고민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는데 이번 기회 덕분에 확실히 알았네요. 난 아마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일을 걱정하며 살게 되겠구나. 더군다나 나는 앞으로도 함께 재산을 불려나갈 남편이나, 나의 노후를 같이 고민해줄 자식이 없을 것 같으니 더욱이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60대에도, 70대에도 나는 아마 돈 벌 궁리를 해야할 것 같으니, 40대에 이걸 깨달았다면 늦지 않은 것인지도! 


어떻게든 또 살아지겠죠. 

먹어온 나이와 쌓여온 경력 속에 남은 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 뿐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정신 승리하며 어거지로 긍정적인 마무리를 지어봅니다. 언제나 칭찬과 응원 그리고 덤으로 잔소리까지 아낌 없이 주었던 언니니까, 백수의 위기 속에서 방황하는 나에게 또 진심 어린 격려를 부탁해보아요.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바쁘게 그리고 재미있게 일하고 있을 나의 외계인 같은 언니, 화이팅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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