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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Dec 13. 2022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래요.

23. 아내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거듭 말했다.

“통화할 수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6주 차 정기 검사를 받고 이틀이 지난 금요일 오후. 사무실에서 한창 일을 하던 중 진동으로 바꿔둔 전화기가 요란한 소리로 책상을 울렸다. 아내였다. 


“응. 괜찮아. 무슨 일 있어요?”


뭔가 일이 벌어졌을 때의 아내 목소리는 평소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미세하게 속도가 빠르고 말과 말 사이의 간격이 좁으며 목소리의 톤도 높다. 이럴 땐 좋지 못한 소식이다. 순간적으로 불안감이 몰려온다. 무슨 일일까.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피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우리 꼬물이가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으로 나왔다고 해요.”


아내는 이어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확률이 어떻고, 검사 방법이 어떻고. 하지만 두 단어가 내 귀를 통해 머리에 들어온 순간 다른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다운증후군. 그리고 고위험군.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실제로는 몇 초 정도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새하얗게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을 받았고, 뒤이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아내의 이야기의 조각을 빠르게 그러모았다. 내용을 유추하면 피검사로 나온 수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고위험군에 들었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과 다음 주에 정밀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것.


“응. 그러니까, 다음 주에 정밀검사를 하러 가야 한다는 거죠?”


“응. 맞아요.”


“미안해요. 다음 주 언제라고 했지?”


“화요일. 혹시, 같이 가줄 수 있나요?”


간호사가 보호자랑 같이 와야 한다고 했어요. 아내가 덧붙여 말한다. 아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갈게요. 당연히 가야지.


“회사는? 괜찮아요? 연차도 며칠 안 남았을 텐데. 요즘 검사 때문에 연차 많이 썼잖아요.”


“없는 연차라도 만들어서 가야지. 걱정하지 마요. 간호사가 보호자랑 같이 오라고 했다며. 내가 가야지. 내가 보호 잔데.”


휴. 한숨을 쉬고 난 아내는 조금 진정이 된 것인지 알았어요, 하고 답한다. 평소의 목소리 톤, 평소의 빠르기다.


“… 괜찮아요?”


아내에게 묻는다. 가장 먼저 물었어야 할 말이 너무 늦었다. 아내는 괜찮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응. 괜찮아요.”


확률일 뿐이니까. 아직은 걱정하지 않으려고요. 아내가 답한다.


“응.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말아요. 괜찮을 거예요.”


내가 답한다. 아내에게 하는 말인데, 꼭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인 것만 같다.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래요.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아 잠시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뭘 해야 하더라? 전화를 받기 전에 뭘 하고 있었지? 그러니까, 추가로 들어온 입사지원서 검토를 해야 하고, 다음 주에 있을 퇴사자에게 퇴직원과 서약서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또, 아, 그렇구나. 연차. 연차 신청을 해야지. 


연차 신청을 마치고 네이버 창을 열어 검색을 해본다. 다운증후군 고위험군. 우리 부부와 같은 경험을 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터넷 세상 속에는 넘쳐나고 있었다. 몇 개의 링크를 골라 그들의 사연을 들여다본다. 어떤 사람은 몇 백대 일의 확률로 고위험군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검사를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몇십 대 일의 확률로 고위험군에 들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전화할 때 무슨 숫자 같은걸 말했었는데. 그게 그 숫자였나 보구나. 


이야기를 더 읽어갈수록 알게 되는 것이 많아졌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는 사람과, 그 숫자가 그대로 위험 확률을 보여준다는 사람. 어쨌거나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면 정밀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방법에는 니프티 검사와 양수검사가 있다는 이야기. 정확도로 따지면 양수검사가 확실하지만 아주 낮은 확률로 유산 가능성이 있다고 하고, 양수검사는 추가로 비용을 좀 들이면 결과를 2, 3일 내로 빠르게 받아볼 수 있는 반면 니프티 검사는 2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고, 니프티 검사에서도 고위험군으로 나오면 양수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고. 비용은 니프티 검사가 50만 원대 정도인 반면, 양수검사는 70만 원에서부터 빠른 검사 결과를 받기 위해서는 1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고도 하고. 


이런저런 정보를 얻어가며 사람들의 사연을 오가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지만 실제로 정밀검사를 해본 결과 정상으로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사연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덕분에 나의 생각은 점점 검사 비용을 어떻게 준비할까에 초점이 맞춰져 갔다.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에 맞춰 빽빽하게 설계해둔 수입과 지출 예산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이런 고가의 검사는 전혀 예상에 없었기 때문에. 임신을 확인함과 동시에 들었던 태아보험도 이런 경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듯했다. 참 난감하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클릭해 들어간 어느 브런치의 글. 그 글에서 나는 처음으로 다운증후군 확진을 받은 사연을 마주했다. 


누군가에게 벌어지는 일이다.


사연 속 엄마는 수많은 반대 속에서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무수히 많은 주변인들과의 전쟁을 이겨내고 결국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는 것으로 연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약간의 공감과 위로, 그리고 존경의 마음으로 지나쳤을 그 글이 가슴에 얹힌다. 그 이야기가 어쩌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의 현실이라는 사실이 축축한 가을의 새벽 서리처럼 온몸을 덮어가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서로에게 몸을 기댔다. 아내도 나도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전화로 통화했던 때와는 다르게 아내도 나도, 고작 몇 시간 동안 꽤나 많은 감정과 생각의 변화를 겪은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아내가 말했다. 


“어차피 내가 걱정한다고 결과가 바뀔 것도 아닌데. 걱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확률은 얼마 되지 않아요. 우리 꼬물이는 건강할 거야. 그러니까 나도 평소처럼 잘 먹고 잘 움직이고, 잘 쉴 거예요.”


괜찮을 거야. 아내의 말에 내가 답한다. 괜찮을 거다. 그래, 그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괜찮겠지. 


“혹시, 걱정돼요?”


아내가 나의 표정을 살피며 묻는다. 알고 있다. 나의 답은 정해져 있다는 것. 설령 불안해도, 불안해해서는 안된다는 것. 나는 고개를 젓고 말한다. 괜찮을 거예요. 걱정 안 해요라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임신을 한 후부터 계속 느끼고 있는 거지만, 정말 아이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내가 노력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미천한 수준이라고. 그래서 아이를 가지면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생각했다. 이번 일이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내 삶을 또 뿌리째 바꿔놓는 거대한 전환점이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이 경험으로 인해 나는 다시 한번 이 세상에 나와 같이 숨 쉬는 또 다른 누군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세상은 내가 지금까지 느껴왔던 것보다 훨씬 깊고 또 넓어서, 나는 여전히 신생아 못지않게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고. 


내가 할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얼마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지. 아내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고, 아내가 자는 동안 편안하도록 품에 안고 토닥여줘야지. 밤에는 튼살크림을 발라주고, 붓기 시작한 다리를 만져줘야지.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되뇐다. 불안하지 않다. 걱정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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