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큐
둘은 언니와 조카 사이다.
언니의 이름은 모르겠다.( 이름과 얼굴을 기막히게 외우는 나로서 조금 당혹스러운 건 필리핀 친구들의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외국어 울렁증)
대략 9시나 10시 사이에 보따리를 들고 우리 학교 앞을 지나 빵집 가게 맞은 편에서 장사 준비를 한다.
이 자리가 명당은 아니다.
가장 좋은 곳은 큰 나무가 파라솔처럼 펼쳐 있는 발렌시아 공원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리잡기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7시부터 달구는 필리핀의 태양이 오후 4시 쯤 가혹한 열기의 채찍을 슬그머니 거둘 때까지
하루종일 태양의 채찍을 맞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래서 피부색은 블랙초콜릿이다.
언니의 이름은 모르지만 조카의 이름은 진.(오른쪽)
언니네 집에서 딸 하나와 아버지와 살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엔 싱글맘이다.
카톨릭이 국교라 그런지 사랑의 불장난을 감당하는 건 여자다.
이곳 필리핀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나의 심기를 건드린 아주 부당한 여자들의 조건.
어디가나 여자가 살기엔 녹녹치 않다.
나이는 27 정도 남편 얼굴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싱글맘이 확실하다.
아님 남편이 사우디나 중동으로 돈 벌러 떠났든지,
진의 눈망울은 내가 본 사람들의 눈망울 중에서 가장 선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발렌시아 공원에 가끔씩 행사가 있으면
노점상에서 파는 핑크 빛깔의 과일 주스가 있다.
맛있어서 보통 4잔을 연거푸 마시는데,
주스를 팔면 어떻겠냐고 이들에게 제안을 한적이 있다.
그랬더니 어느 날 플라스틱 가루주스통을 마련해놓고 팔았다.
개시날이라 처음으로 사먹었는데 얼음도 준비되지 않아서
너무 밍밍한 가루 주스를 연기를 하면서 마셔야했다.(미안하지만 3분의 1은 버렸다)
그날이 주스 장사의 마지막 날인 것 같다.
그후론 플라스틱 주스통을 볼 수 없었다.
뙤약볕 아래라 주스통에 넣을 얼음을 보충한다면 본전도 못 빼는 장사다.
내가 대책없이 제안을 한 것 같다.
그래서 돌아오기 전에는 넓은 품을 자랑하는 파라솔을 사주고 싶었다.
나는 바나나큐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름에 쩐 바나나큐를 먹기엔 왠지 위가 부담스러워해서
하지만 우리의 고구마 맛탕과 똑같은 가모티큐를 만나면서
나는 그집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저녁의 산책 시간이 되면
맞은 편 빵집에서 7페소짜리 비닐봉지 사과주스'왓첨'을 사들고 와서
가모티큐를 먹으면서 저녁의 발렌시아 풍경을 구경한다.
가끔씩 호객행위도 하고,
이 친구들의 영어실력은 버벅거리는 수준이다.
내가 가르쳐주고 싶을 정도.
아마 가방끈이 짧은 것 같다.
참고로 가정형편 때문에 미취학 아동이 많다는 점이다.
70년대 우리의 상황과 비슷해서
한국의 단조로움이 힘든 친구들은 이곳 필리핀으로 오라.
할일이 많다.
우선 야학이 필요하다.
한달전부터 고구마 수확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가모티큐 판매를 접었다.
그대신 바나나를 으깨어 가루에 튀긴 꼼보라는 튀김이 생겨서
가모티규의 허전함을 대신했다.
이 집의 매력중의 하나는 주인의 귀여운 딸들이다.
첫째가 하야미 둘째가 아닐린(오른쪽) 그리고 이름 모르는 셋째
그리고 진의 부끄러움 많은 딸(사진 왼쪽)
특히 둘째 아날린이 너무 귀여워서 매일 아날린한테 수작을 부렸다.
나중엔 친해져서 오토바이에 태우고 놀이터에 가서 그네도 밀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들의 귀여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곳 필리핀 초등생 또래의 친구들이 아주 이뻐서
작은 소망 하나는 이곳 필리핀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 ㅎ
암튼 우리 친구들한테 내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바나나 큐 사먹기를 권장하지만 우리 친구들의 지정된 경로가 아니라서
우리 친구들을 유혹하기에는조금 어려움이 있다.
내 소일거리중의 하나는 저녁의 햇귀가 바닥에 살짝 소심하게 깔려 있을 무렵
그 햇귀를 즈려 밟으면서 산책을 하는 즐거움이다.
근처에 있는 시장에 가서 망고 하나를 사들고 망고의 달콤함에 빠져 들면서
발렌시아를 천천히 걷는다.
어느 날 바나나 큐 가게에도 과일 바구니가 생겼다.
20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