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눌러 낸 붓질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담은 그림들
눈빛만 봐도 좋은 사람과 함께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아침 먹을 밥을 함께 차리고, 늦은 저녁 즈음 서로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맥주 한 잔, 주말엔 게으름 피우며 티브이 보기. 생각만 해도 달콤한 상상을 하다가, 갑자기 현실에 한 대 얻어맞는 순간이 있다. 권태로운 영화 속 주인공이 바람피울 때, 집에서 엄마 아빠가 싸울 때. 머릿속으로 그렸던 오랜 사랑의 모습이 흔들린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오래 함께하는 것, 역경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것. 겪어보지 않아 영화 속 주인공과 엄마 아빠의 일상으로 짐작만 하는 것. 그 시간들은 우리가 잘 아는 그림에도 나타난다. 꼭꼭 눌러 낸 붓질에 사랑하는 누군가와의 하루를 담아낸 듯한 그림들. 그것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세잔은 우리가 생각하는(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예술가의 전형이다. 괴팍하고 고집스러웠으며 그림에만 집착했다.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에 몇 번이고 그림을 고쳐 그리길 반복했다. 그런 남편을 둔 아내, 오르탕스 피케가 마냥 행복했을 리 없다. 예술가 남편은 오르탕스를 무시했고 오르탕스는 그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림 속 오르탕스는 그런 현실을 고자질이라도 하듯 입을 앙다문 채 웃지 않는다. 세잔도 그녀를 생명력 있게 그리지 않았다. 정물화를 그리듯 (아니 그보다 더한) 거친 색감과 뭉뚱그린 붓 터치를 이용했다. 어떻게 그려도 예쁠 스물여덟의 오르탕스는 칙칙한 피사체가 되어 버렸다.
사실 세잔은 주로 정물화를 그렸고, 말년에 초상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성질이 괴팍한 예술가의 모델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잔은 모델이 오랜 시간 똑바로 있기를 강요했다. 당연히 불친절하게. 이런 요구에 응해주는 건, 오랜 시간을 이미 함께 견디고 있는 웃지 않는 그녀, 오르탕스였다. 세잔은 죽기 전까지 오르탕스의 초상화를 마흔네 번이나 그렸다.
2012년 개봉한 영화 <마리 크뢰이어>를 본 독자라면 이 그림이 익숙할 거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흐와 함께 19세기 말을 대표하는 덴마크 화가 페더 세버린 크뢰이어의 작품이다. 그림 속 커플은 페더 세버린 크뢰이어와 그의 아내, 마리 크뢰이어다. 마리는 세버린의 대다수 작품에 등장하는 뮤즈다. 또한, 본인도 그림을 그렸다.
해변에서 저녁을 맞이하는 부부의 모습이 평온해 보인다. 굳이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아도 좋을 풍경. 하지만 그림 속 그들의 평온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림에 대한 열망이 컸던 마리는 남편에게 열등감과 존경심, 사랑을 동시에 느끼며 살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안타깝게) 전형적인 예술가였던 세버린은 결혼 후 예술에 대한 집착으로 점점 난폭해졌고, 정신질환까지 얻었다. 견디다 못한 마리는 영화처럼 다른 이와 사랑에 빠졌고, 결국 이 평온했던 예술가 커플은 헤어졌다.
모네는 누구보다 자신의 아내를 많이 그렸다. 보기만 해도 사랑이 느껴지는 따뜻한 그림들 속에, ‘임종을 맞는 까미유’가 있다.
모네는 직업 모델이었던 까미유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모네의 부모는 까미유를 반대했고, 둘이 결혼하자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렸다. 사랑과 가난을 함께 얻은 둘. 이때 모네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들이 나왔다. 다행히도 시간이 흘러 모네의 작품은 인기를 얻게 된다. 가난을 보내고 사랑만이 남은 셈.
하지만 풍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예술가의 숙명인 가난이 다시 그를 찾았다. 게다가 사랑하는 까미유가 암에 걸리기까지. 모네는 평생 그림에 담아왔던 까미유의 마지막 모습마저 담기 위해 붓을 들었다. ‘임종을 맞는 까미유’는 모네의 오랜 사랑의 정점이다.
이렇게 오랜 사랑의 모습은 현실과 뒤섞여 불화, 이별, 죽음으로 그림에 나타난다. 그러나 불화와 이별, 죽음 사이 빈틈에는 언제나 사랑이 존재했다. 시간이 흘러 퇴색된 그림도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