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나는 주문이 어렵다. Season 2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뉴욕

by 이정우 LJW

들어간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뉴욕은 단연 한국의 어느 스타벅스 보다도 크고 넓었으며 굉장히 화려했다. 직접 로스팅하는 곳답게 들어오자마자 엄청나게 큰 로스터기가 "여기가 세계에서 6개밖에 없는 로스터리 매장이야!"라고 이야기해 주는 듯했다. 매장은 3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가 들어온 메인바가 있는 로비층과 반지하 느낌으로 살짝 내려가면 있는 또 다른 바가 있었다. 이곳에는 제조음료뿐만 아니라 베이커리류도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 로비층에서 반층 올라가면 있는, 칵테일과 주류를 파는 Arriviamo라는 바까지.

IMG_8011.JPG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뉴욕 매장 입구

커피도 커피지만 여기서 가족들에게 줄 기념품을 사갈 생각이었다. 들어오자마자 왼쪽에는 각종 굿즈들이 테마별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것은 단연 텀블러였다. 재빠르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대충 이곳에서만 파는 텀블러였다. 나는 입구가 좁고 둥근 검은색 텀블러와 반대로 입구가 넓고 뚜껑을 1/5 슬라이드로 열고 닫아 마실 수 있는 흰색 텀블러 이렇게 2개를 집었다. 하나에 30달러. 텀블러로만 한국돈 약 8만 원. 이 당시 환율도 높아서(1달러에 약 1430원) 커피까지 포함하면 거의 10만 원에 육박하는 돈을 썼다. 정말 살 떨리는 물가다.


이곳에서만 파는 시그니처 메뉴가 뭐가 있을까 바에 붙어져 있는 QR코드를 찍어보니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세 가지 시그니처 콜드브루를 맛볼 수 있는 샘플러 메뉴도 눈에 들어왔고 샘플러 메뉴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단품으로 마셔보고 싶은 "Whiskey barrel-aged cold brew"라는 메뉴가 내 시선을 끌었다. 스타벅스에서 마시는 알코올이 정말 궁금했다. 정말 이곳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메뉴지 않을까? 나는 술을 즐기지 않고 마실 줄 모르는 '알쓰(알코올 쓰레기)'지만 이곳에서만큼은 한번 마셔보고 싶어 이 메뉴를 골랐다.


텀블러 2개를 가슴에 얹고 주문하려 기다리니 이내 내 차례가 왔다. 티브이에서 보던 것처럼 살짝 업된 톤으로 'HI!' 하며 나를 반겨줬다. 생각해 보니 한국은 주문할 때 눈을 거의 마주치지 않는데 여기는 정말 나와 계속 눈 맞춤을 하면서 주문을 받아주었다.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어쩌겠나. 준비한 대로 텀블러 2개와, 메뉴는 내가 발음 실수를 할까 봐 메뉴판을 찍어 직접 보여줬고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이름이 뭐야?'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내 예상 질문에는 전혀 없어 굉장히 당황했는데 나는 영어이름이 없었고, 순간 고민하다가 내 이름을 재빠르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 번에 못 알아듣고 이게 맞냐, 저게 맞냐 살짝 실랑이가 이어지자 나에게 연필과 종이를 주며 결국 적어달라고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 이름을 모두 적으면 더 어려울 것 같아, 내가 자주 쓰는 아이디를 적었고 그제야 그분은 이해했다는 듯 끄덕이더니 결제카드를 받아 주문을 마무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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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에 들어오면 보이는 풍경(왼쪽)과 왼쪽 기둥을 바깥으로 돌면 보이는 또다른 공간(오른쪽)

운 좋게 딱 한 명이 앉기 좋은 자리가 생겨 부리나케 앉았는데 옆에는 동양인 여자 2명과 남자 1명이 이야기 중이었다. 호기심에 대화를 들어보니 여자 2명은 한국인 여행객이었고 남자 1명은 유학생 같았다. 영어 문장이 짧았고 특히 여자 1명은 기초적인 영어질문만 하고 거의 웃기만 했기 때문이다. 괜히 한국인이 옆에 있어 좀 반가웠는데 말은 (당연히) 걸지 않았다.


진동벨이 울리며 저 멀리서 내 이름 같은 단어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아, 내가 이이디 적어줬지? 하며 서둘러 달려가니 내 진동벨을 뭐라 뭐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냥 무지성 오케이! 하며 진동벨을 그분에게 직접 주며 메뉴를 받으려고 했더니 갑자기 받은 진동벨을 옆에 철제 바구니에 신경질적으로 던지는 것이었다. 그제야, 아 진동벨을 옆에 두라고 하는 것이었구나! 했다. 괜히 미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그냥 땡큐, 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주문한 메뉴가 위스키 타입의 메뉴라 그런지 일반적으로 위스키 마실 때 쓰는 약간 네모난 위스키 잔안에 크고 둥근 얼음이 있었고 커피는 따라 마실 수 있게 다른 병에 담겨있었다. 나는 위스키 잔에 메뉴를 한 번에 따랐고 조금 홀짝거려보았다. 살짝 바닐라 맛이 나면서 달짝지근한 와인 느낌이 났는데, 사실 커피 같지 않고 차라리 와인 같았다. 그래도 혼자 앉아 위스키 잔을 돌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살짝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이 도시가 이제야 나를 받아들여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모금 마시고 술 취했나...)

IMG_8014.JPG 내가 주문한 Whiskey barrel-aged cold brew

내가 뉴욕에 가면 해보고 싶었던 게, 카페에서 책이나 글 쓰는 것처럼 뭔가 작업을 해보고 싶었었다. 그런데 일반 시내에 있는 스타벅스는 좌석이 없었다. 노숙자가 많아 그렇다고 하던데 어쨌든 자리가 없으니 할만한 공간이 없어 아쉬웠던 찰나, 이곳은 좌석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얼른 일기장과 책을 꺼내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아직 6시가 되기 전이었는데도 점점 어두워졌고 밖이 어두워지니 스타벅스의 화려함이 더 배가 되는 것 같았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그제야 사람들의 얼굴과 주변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집중하는 사람들의 옆모습. 이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의 분주함. 여행이 주는 행복함은 일상을 특별하게 볼 수 있는 시선이지 않을까. 나도 한국에 가면 일상을 여행처럼 행복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을 오지 않아도.


1시간 정도 있었더니 시간이 오후 6시를 넘겼다. 짐을 정리하고 픽업대에 빈 잔을 주고 숙소로 길을 나섰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숙소가 있었고 그 중간에 트레이더조에 들려 마실 것을 사가지고 가려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는 높고 큰 건물은 없었다. 높아도 4층정도의 건물이 왕복 2차로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쭉 이어져있었다. 뉴욕은 참 걷기에 좋은 도시다. 백팩을 메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그 사이에서, 불과 일주일 전에는 나도 퇴근이라는 것을 했던 사람으로서 이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이제 다음날이면 뉴욕의 마지막 날이다.


#정리

1.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뉴욕에 갔다. 세계에서 6개밖에 없는 매장이다. 이곳에서만 파는 굿즈와 메뉴가 있었고 나는 텀블러와 위스키류의 시그니처 메뉴 하나를 주문해 마셨다.

2. 아마 뉴욕의 스타벅스 매장 중에서 가장 좌석이 많은 곳 아닐까. 그렇지만 여기서 노트북을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국 여행 꿀팁 13

1. 꿀팁이라 하기에는 뭐 하지만, 뉴욕 스타벅스를 이용하기 편하려면 영어이름 하나 정도는 만드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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