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늘 막내입니다> 1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수업이 어려워졌다. 함수, 근의 공식 이런 걸 배웠던 것 같은데 살면서 이 공식이 필요할까?라고 합리화하다 공부와 담을 쌓았다. 사물함이 있는데 무겁게 책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시험 볼 땐 지우개에 1번부터 5번을 적고 답을 찍었다. 한자시험에서 9점 맞았던 적도 있었고, 한 자리 점수는 처음이라 쓸데없이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녔다. 그랬던 내가 성적에 따라 고등학교 입학 여부가 달라질 수 있고, 무서운 언니들과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말에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에 한두 시간만 자더라도 잠이 안 왔고, 자려고 누워도 불안해서 공부를 했다. 집중력이 좋다는 걸 그때 알았다. 참 단순했지만 동기가 있었기에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성적은 많이 올랐지만 자신이 없었다. 매일 공부할 자신도 없었고, 그 안에서 또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에 진이 빠지기도 했다. 결국 내 성적에 맞는 전문계고를 선택했다. 다행히 무서운 언니들은 없었고,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 덕분에 꾸준히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안정감이 찾아오니 다른 고민이 생겼다. 내 꿈은 뭐지?
꿈이라고 하면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나눠 주셨던 장래 희망 종이가 생각난다. 그 종이를 보자마자 짝꿍과 뒤에 앉은 친구들의 꿈을 봤다.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 거창하면서 그럴싸한 꿈이었다. 나는 내 꿈이 뭔지 몰라 종이를 가방에 넣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내가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어?" "음. 선생님?! 어릴 적 꿈이었는데, 사는 게 바빠서 도전할 수 없었네.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남아있어." 꿈이 없던 때라 엄마의 답변에 따라 꿈을 적었다. 일단 빨리 숙제를 마치고 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꿈을 묻는 질문은 그게 끝일 줄 알았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학교에서 내 장래 희망을 물었다. 그때쯤 꿈이 자주 바뀌었다.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친구의 꿈을 따라 쇼핑몰 사장, 변호사, 수의사로. 정말 내 꿈을 갖고 싶었다.
학교마다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진로상담실이 있었다. 매일 그곳을 찾으며 진로를 분석했고, 내 성향을 찾아갔다. 호텔리어, 관광안내 가이드 등 관광 및 여행의 결과가 나왔다. 만족스럽지 않았고,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매번 같은 결과가 나와도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며 상담실을 찾았다. 뻔한 일이 아니라 새롭고 재미있는 걸 하고 싶은데, 그 직업이 결과 리스트에 없었던 것 같다. 또, 꿈이 없어 불안해도 내 고민을 들어줄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 자체로 좋았다. 이렇게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언젠간 내 꿈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2학년이 되었다. 마침 2학년 대상으로 호텔리어 실습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바로 신청했다. 직접 하는 건 다를 수 있으니 한번 해보자. 내가 담당했던 건 한식, 일식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안내하고, 음식을 주문하는 일이었다. 학교를 대표해서 실습했던 거라 늘 긴장된 상태였다. 하지만 일할수록 호텔리어에 흥미를 느끼기보다 의문을 가지게 됐다. 우선 일을 알려주지 않았고, 내가 생각한 호텔리어보다 식당에서 서빙하고 음식을 정리하는 일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호텔리어는 어디서 성취감을 느끼는 거지? 이 일을 왜 해야 하지? 선임 호텔리어에게 물었다.
저희가 하는 일이 호텔리어인가요?
2개월밖에 안 하는데,
그걸 언제 알려주고 있어.
그냥 형식적인 일만 하는 거지.
우리를 후배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랑 같은 팀으로 배정받은 한 친구가 서럽다며 말을 꺼냈다. "내가 탄 버스에 선배님들이 탔는데, 우리 욕하고 있었어. 그래서 안 내리고 한 정거장 더 지나서 내렸어" 이렇게까지 욕먹어야 할 일인가 싶었다. 한 번은 지원 요청이 들어와서 원래 하던 부서가 아닌 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홀 정리가 끝나고 핸들링(린넨으로 물기를 닦음)하고 있는데 한 선배가 나를 불렀다. 호텔에는 여러 종류의 포크가 있다. 그 종류의 차이점을 묻더니 포크를 던지면서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만약 내가 손님에게 포크를 잘못 전달했으면 혼나도 인정했을 텐데, 포크 닦고 있다가 갑자기 혼나는 게 너무 당황스럽고 서러웠다. 한참 지난 뒤에 선배는 나에게 사과했다. "그날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너한테 화풀이했어. 미안해" 내가 실습했던 곳이 별로였을 수도 있지만, 호텔리어에 대해 멀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때 알았다. 뭐든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구나.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는 거구나.
20대 초반인 선배가 있었다. 누가 봐도 수줍음 많고 조용했으며 우리를 잘 챙겨줬던 선배였다. 누구에게나 착해 보이는 게 잘못이었던 걸까? 다들 꺼려하는 일을 선배가 도맡아 했다. 화를 내도 웃기만 해서였을까? 상처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은 척 들으며 웃었다. 그때 알았다. 사회에선 착해 보이는 이미지가 독이 될 수 있다고. 착한 게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아르바이트도 해본 적 없던 내가 실습으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갑자기 겁이 났다. 내가 일이란 걸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친구들끼리 나눈 선배 험담은 재미있었다. 선배들 사이에서도 쓰레기라 불리는 선배가 있었다. 친구들끼리 선배를 욕하던 중에 그 선배가 들어왔고, 우리에게 물었다. "무슨 얘기했어?" 친구는 재빠르게 대답했다. "슈렉 영화 얘기했어요" 그 대응에 감탄하면서 웃음을 참았다.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힘든 일이 닥쳐도,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학교에서는 취업률을 높여야 했고, 우리는 책임감을 가져야 했다. 그렇기에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사회가 이렇게 혹독하다고 했을 때 유리멘털인 내가 잘 이겨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되지만, 함께 욕해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