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늘 막내입니다> 1부
환경이 어렵다고 생각했다. 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어려웠다. 머리 아파 보이면 피하는 습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끝까지 해보고 싶었다. 다들 피하는 일을 누군가는 끝까지 물고 넘어진다는 것에 대한 궁금증과 나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더해졌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어려운 환경을 놀이로 바꾸어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환경 보호 실천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땅따먹기 게임으로 생각하면 쉽다. 얼음 위에 북극곰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3번 돌을 던져서 북극곰을 살리는 게임이다. 게임이 끝날 때마다 북극곰이 왜 얼음 위에 있는지 알려줬고 “음식 남기면 안 돼요”와 같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아이들은 “저 반찬 잘 먹어요, 앞으론 안 남길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뿌듯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이와 같은 일은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만, 능력 있는 사람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환경을 지키는 방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얼마나 고민했는가, 누가 먼저 실행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환경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재미있는 프로젝트 제안도 많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수원 생태교통 페스티벌이다. 환경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환경축제를 만드는 행사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워서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우리가 담당했던 건 명량운동회였다. 가족과 함께 뛰면서 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 아이들은 부모님과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생태교통 페스티벌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자전거 택시와 여러 플리마켓까지. 동네를 천천히 돌며 여기저기 구경했고,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 찍었다. 기획에도 참여했지만, 거리에 풍선을 붙여가며 직접 꾸민 페스티벌을 즐기는 사람을 보니 뿌듯했다. 기획만 했다면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었을지 모른다. 기획하고 직접 실행하면서 사람들의 표정까지 보니 좋은 점과 아쉬웠던 부분이 눈에 보였다. 이렇게 경험이 쌓이면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거구나.
사람들과 환경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공간이 필요했다. 우린 수원 만석공원 안에 에코레시피 카페를 만들었고 (지금은 계약이 만료되어 아쉽게도 없어졌다) 천연염색, 환경동아리 모임 장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중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쉴 공간을 마련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건강한 음료를 만들고 맛있는 디저트와 놀이를 판매했다. 공원 안에 있어서 여름엔 사람이 많았고 겨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음료 마시며 책 읽는 손님과 비눗방울 들고 공원을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온 세상이 평화로워 보였다. 일부러 찾아와 주고 커피가 맛있다는 칭찬을 받을 때면 감사해서 뭐 드릴 게 없는지 주방을 뒤적거렸다. 누군가에게 기분 좋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뿌듯한 거구나. 이 기분을 알아버린 덕에 뭘 하든 누군가에게 영향 있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일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까지 고민하게 한다.
학교에서 환경동아리를 하고 있어서 에코레시피와 함께 뭔가 진행하고 싶었다. 우리가 키운 감자를 에코레시피에서 판매하고 수익을 독거노인 도시락으로 사용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기획의도, 프로젝트명, 기부처 등 한 장의 기획서를 만들어 진행했다. 이런 기획을 할 수 있었던 건 대표님 배려 덕분이었다. "뭐든 기획만 하고 끝내면 안 돼. 직접 해보고 눈으로 보면서 결과가 어떠한지 알아야 다음에 더 나은 기획을 할 수 있어. 빈틈없는 기획을 할 수 있고." 그 말에 기부처를 선택했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동아리 회원에게 기획서를 보여주면서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갔다. 사람들은 감자를 보면서 "오늘 반찬은 감자로 해야겠다. 좋은 취지니까 감자 사줘야지" 등으로 우리를 응원해 줬다. 기획하고 결과까지 보고 들으니 뿌듯했다.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해도 내가 지금처럼 영업의 의미를 고민하며 사는 영업인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디자인학과를 나와 화학공학과로 편입한 내가 어느 중소기업의 영업부서에서 일할 거라고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지난 모든 경험이 마치 계획처럼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 온 듯도 하다.
-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 중에서 -
우연한 계기로 다양한 일을 해보다니. 이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신기할 뿐이다. 내가 이렇게나 적극적인 사람이었구나,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일하는 내내 성취감을 느꼈다. 이 일을 겪지 않았으면 어른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이들에게 어떻게 웃어야 할지 몰랐을 거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그램 기획보다 어떻게 하면 카페를 잘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방향성이 달라져서 결국 일을 그만뒀다. 3년 넘게 일하면서 정도 많이 들었고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짧지 않은 시간이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덕분에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어떤 일을 하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단순히 돈 버는 일보다 성취감 있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