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일해도 괜찮을까요?

<저는 늘 막내입니다> 1부

by 매실

대학교 졸업을 유예했다. 유예하지 않으면 졸업 후 공백기간이 길어지고 그럼 취업이 더 어려워진다는 말 때문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전과 다르게 연봉이 얼마인지, 이력서는 어떻게 쓰고 있는지, 자격증은 취득했는지 등을 물었다. 우리의 주 대화의 소재가 바뀌었다. 취업 압박이 없었는데 친구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무 걱정 없는 내가 더 걱정됐고 조바심이 생겼다. 결국 한 학기 유예하고 이력서를 썼다. 학교 다니면서 해온 일이 있어서인지 쉽게 일자리가 구해질 거라 생각했다. 예상만큼 쉽지 않았다. 이력서를 쓰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직업 찾는 어플을 볼 때마다 일자리는 많은 것 같아도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회사는 별로 없었다. 마케팅 전공만 살릴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관련 업종 중에서도 괜찮아 보이는 곳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중 한 곳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원래 면접 보는 중에도 이력서는 계속 쓰고 있어야 한다는데 그냥 이곳에 올인하고 싶었다. 일도 재미있어 보였고 졸업 전에 취직해야 했고 무엇보다 이력서 쓰는 게 귀찮았다.

이 일은 뮤지컬을 마케팅하고 체험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일이다.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라 호기심이 생겼고 수입이 생기면 기부하는 가사에 마음 따뜻한 기업이 아닐까 싶었다. 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면접에 뮤지컬 홍보 ppt를 작성해서 발표했고, 내 의견을 잘 전달한 덕에 합격할 수 있었다. 60대 1로 붙었다. 작은 회사이지만 이곳에 입사하고 싶은 사람이 많고 그중에 내가 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낮아졌던 자존감을 되찾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하진 않았지만 사무실과 현장을 번갈아가며 일하는 게 내게 맞았던 것 같다. 사무실에 하루 종일 앉아있으면 답답했고 현장에만 있기엔 진행 사업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이곳이 좋았다. 초반엔 기획하는 일이 많아서 사무실에 있는 일이 많았지만, 공연 오픈 한 달 전부터 리허설 준비와 감독님과 회의 진행을 돕기 위해 공연장에서 일했다. 일 자체는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한 개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꼼꼼하게 준비하고 호흡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다. 내 전공을 살릴 수 있었고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니 뭔가 설레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드라마 마지막화에 배우와 스텝들이 단체사진을 볼 때마다 저 안에 소속되고 싶었다. 함께 호흡해 가며 웃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보는 것과 다를 수 있지만. 그때부터 미디어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일자체보다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역시 일은 일이었다. 사람이 좋아 보여도 직접 경험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대표님은 가끔 무리한 요구를 했다. 같은 회사지만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공연 당시 다른 매니저님이 내게 와서 물었다. "여기는 사람이 자주 바뀌는 것 같아요. 왜 그런 거예요?" 자주 바뀌는 이유를 알 것도 같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웃기만 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매일 단체 예약을 확인했고 이벤트도 놓치지 않았으며 포토존이나 각종 체험 프로그램 행사에도 문제가 없는지 매번 긴장했고 확인했다. 가족 뮤지컬이라 연령제한이 있다. "우리 애는 안 울어요"라고 말하면서 억지로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마다 그들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서 달래는 것도 일이었다. 쓴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쓴소리를 할 수 없었다. 후기로 서비스 정신이 별로라는 사람도 많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그런지 사람에 지치지 시작했다.


회사에 입사할 때 60대 1이라고 해서 좋았지만, 그 1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을 생각하니 기분이 안 좋아졌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을 수 있구나, 직접 해보면 생각과 다를 수 있구나 하고. 갑자기 노력할 자신이 없어졌다. 다른 곳에 입사하기 위해 내 시간을 투자했는데 또다시 나와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불안이 시작됐다. 감독님과 배우님은 자꾸 의기소침해지는 나를 토닥여주고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어깨동무하며 괜히 장난치기도 했다. 그런 행동이 말보다 더 위안됐다. 분명 일하면서 상처받은 일도 많았지만, 나를 생각해 주는 몇 사람 때문에 의지하며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사람운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운이 있었다. 이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을 알게 된 점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결국 일을 그만둔다고 말했다. 이 정도도 못 참으면 다른 직장에서도 못 견딜 것 같았지만 그래도 견디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 타이밍 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계속 일하고 공부했기 때문에 내게 휴식이 필요할 수 있다며. 잠깐 쉬면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천천히 생각해 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민해 봐야겠다. 분명 돈은 필요하지만 집에 있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많다면 지금보다 재미있는 일, 성장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막막할 때마다 나를 응원해 주는 팀원이 생각난다. 지금도 안부를 전하고 가끔 만나 소주 한 잔 마시며 일상을 나누곤 한다. 어쩌면 그거 하나로 이 회사에 오길 잘한 것 같다. 일하면서 좋은 사람을 알게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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