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기억하며
“은자야 이번 주에 김장 담그는데 집에 와서 솥에 푹 찐 수육에 김장김치 먹고 김치 좀 가져가~
같이 사는 동생도 나눠주고~”
“엄마 알잖아 나 주말에 바쁜 거... 작은엄마한테 전달해 주면 작은엄마 집으로 가지러 갈게.”
“야 작은엄마 입원해서 이번에 못 오잖아... 어쩔 수 없지 동네 사람들이랑 하고 보내줄게.”
“계집애야 너만 바쁘냐?”
주말에 좀 늦게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고, 2시 미팅 준비,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시장 보는, 실상 바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200여 포기의 배추를 봐왔다. 빨간 대야에 몸 담았던 싱싱했던 배추는 소금에 절여져 시들해졌다. 그런 날이면 엄마표 양념이 한 잎 한 잎 배추 구서구석 여행을 떠나 그 자리에 물든다. 그렇게 김장 김치가 되어 가는 과정을 봐왔다. 나도 엄마도 오래된 파김치 마냥 쉰 냄새 풀풀 풍기며 쓰러지기 일 수였다. 어떤 친척들은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와 돈으로 어떤 친척들은 당연하게 김치를 가지고 돌아가기도 했다. 엄마는 으레 그려려니 일 년의 큰 행사 하나 끝냈다는 해방감에 주름진 미소를 피곤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보기 싫어서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다행히 동네 분들과 서로의 일을 분담해주는 풍습이 여전했기에 걱정이 덜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장 당일에는 내심 신경이 쓰였다.
“엄마 배추 왔어? 어때 싱싱해?”
“응. 이번 배추 좋다. 그런데 오늘 김장 못해.”
“왜?”
“동네 사람들 일정이 안 맞아서 우리 집은 월요일에 하기로 했어. 그래서 이모집 가고 있어 오늘 이모 김장한다고 해서.”
“아~ 우리 엄마 고생 많아요. 가서 맛만 봐줘요. 손 걷어붙이고 하지 말고 알았지? 쉬엄쉬엄해요. 그리고~ 이모 김치도 김장김치 보낼 때 같이 보내줘요~ 엄마! 사랑합니다.”
“계집애야 말로만?”
이 대화가 마지막 대화일 줄 엄마도 알았을까? 톡이 끝난 후, 오후 미팅 준비에 한참이던 그날 오전 평상시 연락이 없던 외삼촌에게 부재중 전화 3건을 뒤늦게 발견했다.
“은자냐?”
“네 삼촌 무슨 일 있어요?”
“은자야 세면도구랑 옷 몇 개 챙겨서 집으로 좀 와라‘”
“왜요”
“엄마가 많이 다쳤는데......”
이모집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중앙차선을 침범한 검은색 그랜저에게 그만 받히고 말았다. 엄마가 운전하던 작은 마티즈를 말이다. 20분 떨어진 장수의료원 응급실로 향하던 구급차에서 엄마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엄마가 담그려던 배추가 한동안 마당에 그대로 버려져 있던 것처럼 몇 년 동안 우리 집도 같이 버려져 있었다. 2014년, 바다에서 영혼을 잃은 아이들의 슬픔과 아픔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엄마의 아픔을 마음에 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