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은 거짓말을 못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 강화되면서 나는 돈을 잃고 시간을 얻게 된 프리랜서다. 집콕이 답이지만 고민 끝에 노트북을 짊어지고 오랜만에 아지트 카페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그 자리가 비어있으면 로또 1등 못지않은 행운아라 생각한다. 카페 손님들은 내가 잘 안 보이지만 나는 다른 분들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명당자리다.
카페 문을 열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에는 검은 옷에 검은 헤드셋을 끼고 있는 분이 보인다. 바스락 소리가 날 것 같은 지친 뒷모습이다. 대화해본 적 없는 사이지만 그분도 화장실을 오가면서 나의 모습이 익숙할 것이라 짐작한다. 모녀 사이로 보이는 세 사람이 들어온다. 하나씩 맛을 봐야 한다면서 꽁양꽁양 주문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창가랑 마주 하고 있는 테이블에 세 모녀가 나란히 앉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뒷모습에 울컥한다. 나에겐 다시 올 수 없는 간절하게 그리운 모습이다.
엄마 없는 현실을 인정했다 했지만 오늘도 결국 사소한 장면 하나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어디서 온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져서 괜찮지 않을 때도 많다. 꾹꾹 눌러보아도 억울하고 공허한 혼자된 마음뿐이다.
이럴 땐 아빠랑 영상통화를 한다. 코로나로 집에 몇 달째 못 가고 있어서 아빠랑 영상통화가 부쩍 늘었다. 딸의 전화임에도 불구하고 핸드폰 카메라는 아빠 쪽으로 맞춰놓고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놓은 체 냉장고 청소를 하고 있는 아빠다. 엄마 계실 땐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아빠의 뒷모습이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아빠 뒷모습을 보고 싶어 했지만 이렇게 쓸쓸하고 애처로운 모습은 아니었다. 엄마의 빈자리가 6년이 지났지만 아빠와 나는 여전히 “엄마”라는 단어가 조심스럽다.
엄마는 사람들이 앞에서 웃고 씩씩해도 뒷모습은 반대일 수도 있다 했다. 엄마는 뒷모습은 거짓말을 못한다며 늘 다른 사람 뒷모습을 바라봤다. 1인 다역을 자처한 엄마의 삶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의 진심을 알지 못했다. 카페 명당자리에서 다른 사람들 뒷모습을 관찰하게 된 습관, 시시 때때 영상을 찍는 습관은 엄마랑 이별 후 생긴 버릇이다. 엄마가 떠난 뒤로 나는 더욱 강하게 엄마의 존재를 느낀다. 생전에는 엄마의 앞모습만 보고 엄마도 그렇겠지 라고 생각하며 엄마의 진실된 마음을 잘 몰랐는데 지금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엄마와 이별하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가 살아가려고 했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은 엄마에게 엄마의 삶이 애썼고, 고생했고, 대단하고, 아름다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떠난 사람을 잘 보내는 길은 떠난 사람의 힘을 빌려 언제까지나 행복해지는 것이다. “
"남겨진 슬픔이란, 이만큼 강렬하게 누군가를 생각하는 일이 가능한가 싶을 만큼 깊고 진한 마음."
너의 슬픔이 아름다워 나는 편지를 썼다. 中
시간이 지나고 내가 나이가 먹어 갈수록 엄마의 뒷모습이 궁금하다. 엄마의 뒷모습은 어땠을까? 지금 엄마가 내 옆에 있다면 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철이 덜 든 나는 엄마와 이별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늦어졌을 것 같다. 이제야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 앞으로 끝까지 바라보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자세히 바라보고 싶은 용기가 있는데 그 사람이 엄마였음 좋겠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내 앞모습 말고 방치되어 나조차도 신경 쓰지 않은 진실된 내 뒷모습을 누가 그리 오래 찬찬히 바라봐줬나 생각해보면 엄마였다. 지금도 엄마는 하늘에서 만인의 뒷모습을 보며 힘이 되어 주고 있겠지? 그래서 나도 엄마 뒷모습이 궁금해, 엄마의 뒷모습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