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16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이미 칼날 구간에 서다
한국의 기온 변화 양상은 하키스틱 곡선(Hockey Stick Curve)의 전형적인 특징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키스틱 곡선에서 ‘손잡이(handle)’ 구간은 오랜 시간 동안 변화가 거의 없는 완만한 상태를 뜻하고, ‘칼날(blade)’ 구간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한 상승이 일어나는 구간을 말한다. 한국의 지난 100여 년 간의 기온 변화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러한 곡선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전반기 (1910년∼1980년대 중반)
대한민국의 기후 관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세기 초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0.5℃ 범위 내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연도별 편차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뚜렷한 상승세나 하강세 없이 일정한 수준이 유지되었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도 산업화가 본격화되기 전이며, 화석연료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의 온도 안정성은 자연적 기후 요동의 범위 안에 머물렀으며, 생태계나 인간 사회가 예측 가능한 계절성과 날씨 패턴 속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곡선으로 보면 이 시기는 하키스틱의 손잡이처럼 수평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산업화 이후 급격한 변화 (1990년대∼2023년)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며 상황은 급변하였다. 한국은 이 시기부터 빠른 산업화와 도시화, 인구 밀집의 확대,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소비 구조 강화 등으로 기후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이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곧 기온 상승이라는 물리적 결과로 나타났다. 한국기상청(KMA)과 세계기상기구(WMO) 통계에 따르면, 최근 30년간 한국의 연평균 기온 상승률은 10년 단위로 빠르게 가팔라졌으며, 특히 2000년대 이후 가속화되었다. 2023년 현재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약 +1.8℃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 지구 평균 상승치인 약 +1.2∼1.4℃를 초과하는 수치로, 한국이 기후변화에 있어 매우 민감한 국가임을 의미한다.
기후 시스템의 불안정화와 ‘칼날’의 실체
기온 상승은 단지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기후 시스템 전체의 불안정성을 동반한다. 최근 10년간 한국은 여름철 폭염 일수의 급증, 열대야 지속 기간의 연장, 계절 경계의 불명확화, 국지성 호우 및 이상고온 현상 등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하키스틱 곡선의 칼날처럼 날카롭고 예측 불가능한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예컨대, 서울은 2023년 기준 연간 폭염 일수가 평균 25일 이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건강 취약계층의 열사병 위험, 농업 생산성 저하, 도시 열섬 현상의 심화, 에너지 수요 폭증 등 다차원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자연 현상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구조, 보건 체계, 에너지 인프라 등 전체 사회 시스템의 적응능력을 압박하는 현상이다.
한국은 이미 하키스틱 곡선의 ‘칼날 구간’에 있다
이처럼 최근 수십 년 간 기온 상승의 경향성은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임계점을 향해 가속화되고 있는 ‘질적 전환’임을 보여준다. 즉, 한국은 하키스틱 곡선의 손잡이를 지나, 이미 ‘칼날’의 경사로에 진입했으며, 이는 단순히 미래의 위험이 아닌 이미 현실이 된 기후위기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언젠가 해야 할 전환’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구조적 대응’이다. 기후 대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경사면을 늦추고 방향을 바꾸기 위한 마지막 시간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
하키스틱 곡선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하키스틱 곡선은 단순한 시각 자료가 아니라, 정책 설계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서는 임계점(tipping point) 이전에 감축 노력을 가속화해야 한다.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피해 규모를 결정짓는다.
경제 정책 면에서는, 성장 중심 모델이 기후 리스크를 낳고, 다시 기후 위기가 성장을 저해하는 ‘역하키스틱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탈탄소 기반의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에너지 정책 측면에서는, 하키스틱 곡선이 보여주는 ‘급격한 전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초기 대응은 느릴 수 있지만, 기술 혁신과 제도적 유인, 시민 참여가 결합될 경우 폭발적인 전환이 가능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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