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15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곡선은 이미 꺾였다
기후과학자 마이클 만(Michael E. Mann) 박사와 그의 연구팀이 1998년과 1999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널리 알려진 ‘하키스틱 곡선(Hockey Stick Curve)’은 처음에는 평평하게 이어지던 곡선이 어느 순간 급격히 위로 치솟으며, 마치 하키 스틱의 형태를 닮은 곡선을 가리킨다. 이 개념은 특히 기후 변화가 급격히 전개되는 양상을 설명하는 데 자주 활용된다.
수세기 혹은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던 기후 지표들이 20세기 중반 이후 갑작스럽게 급상승하거나 악화되기 시작한 현상이 바로 이 곡선의 특징이다.
이 하키스틱 곡선은 완만한 손잡이 구간과 급격히 상승하는 칼날 구간으로 구분된다. 완만한 손잡이 구간은 수백 년 동안 변화가 거의 없거나 매우 느리게 진행된 시기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산업화 이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나 지구 평균기온은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으며, 자연 생태계와 인간 활동 사이의 균형도 비교적 지속되었다. 이 시기의 변화는 주로 선형적이며 점진적이었다. 급격히 상승하는 칼날 구간은 산업혁명 이후, 특히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인간의 산업 활동이 기후와 경제 시스템에 심대한 충격을 가하면서 다양한 지표들이 급속도로 상승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온실가스 배출량, 지구 평균기온, 자원 소비, GDP 성장 등이 함께 가파르게 증가하며, 인류가 지속가능성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경고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하키스틱 곡선은 단지 하나의 지표가 아닌, 기후·경제·에너지 전반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비선형적 변화의 구조를 상징하며,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강력한 이론적 틀이다.
<하키스틱 곡선의 특징>
구간 / 특징 / 적용 사례
완만한 손잡이 구간 / 수세기 동안 거의 변동 없음 / 산업화 이전 CO₂ 농도, 안정적인 지표면 온도, 낮은 재생에너지 사용
급격한 상승 구간 (칼날 부분) / 산업화 이후, 특히 20세기 후반 이후 급속한 증가 / CO₂ 농도 280→422ppm, 지구 온도 +1.4℃, GDP 성장, 재생에너지 확대
※ 출처 : Mann, M. E., Bradley, R. S., & Hughes, M. K. (1998). “Global-scale temperature patterns and climate forcing over the past six centuries.” <Nature>, 392, 779–787. https://doi.org/10.1038/33859
하키스틱 곡선의 세 가지 징후
‘하키스틱 곡선(Hockey Stick Curve)’은 오랜 기간 동안 변화가 미미했던 지표가 어느 순간부터 급격하게 상승하는 패턴을 말하며,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가속성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시각 도구로 활용된다. 이 곡선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는 세 가지 지표에서 확인된다: 지구 평균 기온,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그리고 GDP 성장 및 에너지 구조 변화이다.
첫째, 지구 평균 기온의 변화는 하키스틱 곡선을 대표하는 상징적 사례이다. 1850년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지구 평균 기온은 ±0.2℃ 이내의 비교적 안정된 수준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1975년 이후 산업 활동의 급격한 확대와 함께 화석연료의 소비가 증가하고, 삼림 파괴가 진행되면서 기온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23년 현재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은 약 +1.43℃ 상승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는 기후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하며, 폭염, 홍수, 해수면 상승, 생태계 붕괴 등 다양한 연쇄적 위기를 촉발하고 있다.
둘째,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 농도 역시 하키스틱 곡선의 전형적인 예다. 약 10,000년 동안 CO₂ 농도는 약 280ppm 수준에서 큰 변동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의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하면서 대기 중 CO₂ 농도는 급격히 증가하였고, 2023년에는 마침내 422ppm을 초과하였다. 이는 지구 온난화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으로, 단순한 상승이 아닌 체계적인 기후 붕괴의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 변화의 속도와 크기 모두 하키스틱 곡선과 정확히 일치한다.
셋째, GDP의 성장 곡선과 에너지 구조 변화 또한 하키스틱적 패턴을 보여준다. 산업혁명 이전의 세계 GDP는 서서히, 선형적으로 증가해왔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특히 1990년대 세계화가 본격화된 이후 기하급수적인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자원 소비의 급증, 교통 및 산업 활동의 팽창, 온실가스 배출의 증대를 수반하며, 경제 성장과 기후위기 사이의 불가분한 연결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한편, 대응의 측면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의 증가 역시 하키스틱 형태를 띠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기술의 보급과 각국의 정책 지원이 본격화되면서, 에너지 전환 비율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이는 긍정적인 신호이나, 아직까지도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처럼, 하키스틱 곡선은 기후 시스템, 에너지 구조, 경제 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비선형적 변화와 가속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로서, 우리가 지금 어떤 전환점(tipping point)에 서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인식하게 해준다. 이를 통해, 위기의 본질을 더 이상 '서서히 다가오는 미래'로 여겨서는 안 되며, 지금 이 순간의 정책적 전환과 구조적 대응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키스틱 곡선의 구조>
지표 / 완만한 구간 (1950 이전) / 급등 구간 (1950 이후) / 하키스틱적 변화
CO₂ 농도 / 약 280~300ppm / 300 → 422ppm / 지속적이고 가파른 상승
지표면 온도 / ±0.2℃ / +0.5 → +1.4℃ / 기후 시스템의 불안정성 심화
GDP / 점진적 선형 성장 / 1995년 이후 폭발적 성장 / 고성장–고배출 구조 심화
재생에너지 비중 / 10% 미만 / 2000년대 이후 급성장 / 대응 수단으로의 전환 가능성 부각
하키스틱 곡선에서 배우는 전략
하키스틱 이론은 단순히 기후 지표의 통계적 패턴을 설명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이 이론은 비선형적 변화의 속성과 임계점(tipping point)의 존재를 전제로 하며, 실제 정책 설계와 사회 시스템 전환의 방향성을 수립하는 데 있어 강력한 분석 틀로 작용한다. 하키스틱 곡선은 우리에게 “느리게 오다가 갑자기 온다”는 변화를 경고하며,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조건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분야별 정책적 함의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측면에서 하키스틱 이론은 기후 시스템이 임계점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한 번 특정 임계치를 넘어서면 자연은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북극의 빙하가 일정 수준 이상 녹으면 태양 복사열을 반사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그 결과 더 많은 열이 지구에 축적되는 ‘양의 피드백’ 구조가 촉진된다. 하키스틱 곡선은 이러한 급변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지금 이 순간의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이 수십 년 뒤의 재앙을 예방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둘째, 경제 성장 전략에서도 중요한 전환적 사고를 요구한다. 고속 성장은 종종 자원 고갈, 탄소 배출 증가, 생태계 파괴 등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심화된 기후위기는 다시 경제 성장의 기반을 위협하고 불평등과 생존 위기를 심화시킨다. 이러한 악순환은 경제 시스템 자체에 대한 재구성을 요청한다. 하키스틱 곡선은 우리가 이제 지속가능성 중심의 새로운 성장 모델, 즉 사회적·생태적 한계를 고려한 내재적 성장 전략으로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셋째, 에너지 정책의 영역에서 하키스틱 이론은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준다. 초기의 전환 속도는 더딜 수 있지만, 일정한 정책적·기술적 유인이 확보되면 그 이후에는 급격한 확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태양광, 풍력, 저장기술, 전기차 등은 초기에는 비용과 효율 문제로 보급이 더뎠으나, 정부 보조금, 기술혁신, 시장제도 개편 등이 맞물리면서 이후 빠른 보급 곡선을 그리게 되었다. 이는 하키스틱 곡선의 '칼날' 구간이 부정적 지표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정책 개입을 통해 긍정적 전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결론적으로, 하키스틱 곡선은 우리 시대의 급변성과 전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정치적 도구이자 전략적 나침반이다. 문제는 이미 시작되었고, 시간은 많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과 정책은 미래를 완전히 다른 궤도로 전환시킬 수 있다. 하키스틱 이론은 그 점에서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지금-여기에서의 행동을 설계하는 이론적 기반이자 실천적 지도라 할 수 있다.
비선형적 전환의 시대, 임계점을 넘기기 전의 선택
하키스틱 이론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기후, 경제, 에너지 시스템의 변화가 더 이상 선형적이거나 점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과거 수 세기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지표들이 최근 몇십 년 사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으며, 이는 인류 문명의 작동 방식과 대응 방식에 근본적인 재고를 요청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후위기를 다소 관망하거나, 기술적·정책적 단기 수단들로 대응하려 해왔다. 그러나 하키스틱 곡선은 이러한 접근이 임계점(tipping point)을 넘기고 나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됨을 경고한다. 곡선의 형태가 보여주는 급격한 변화는, 일정한 지점을 지나면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야기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내려야 할 결정은 단지 하나의 정책이나 하나의 기술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조건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구조적 전환을 감행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명사적인 질문이다. 기후 정의, 지속가능한 경제 모델, 탈탄소 에너지 체계로의 이행은 그 자체로 시간이 지체될 수 없는 절박한 과제이며,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는 기대는 이미 유효하지 않다.
하키스틱 곡선은 이미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얼마나 정의롭게 반응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선택하는 대응의 속도와 방향이, 수십 년 뒤 인류의 삶의 조건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비선형의 시대에는 선형적 사고로는 대응할 수 없으며, 예방과 전환은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Mann, M. E., Bradley, R. S., & Hughes, M. K. (1998). Global-scale temperature patterns and climate forcing over the past six centuries. Nature, 392(6678), 779–787. https://doi.org/10.1038/33859
Mann, M. E. (2012). The Hockey Stick and the Climate Wars: Dispatches from the Front Line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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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 (2023). World Energy Outlook 2023. Paris: IEA. https://www.iea.org/reports/world-energy-outlook-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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