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14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2023년 기후위기의 분기점
UNEP는 매년 탄소 배출량에 대한 격차 보고서를 매년 발표한다. 연일 폭염 기록을 경신하는 2025년 6월 여름. 2년전 UNEP에서 발표한 탄소배출 격차보고서가 범상치 않다. 2023년 역시 그 당시에는 인류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실시간으로 체감한 해였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상을 초과한 날이 무려 86일에 달했으며, 특히 9월에는 평균기온이 1.8°C나 상승하여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월별 기온을 기록하였다. 이는 단순한 계절적 변동이나 자연 현상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기후 시스템 전반에 걸친 구조적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기록적인 고온 현상은 파리협정이 설정한 1.5도 상승 한계가 더 이상 이론상의 경고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현실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1.5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제 그 방어선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으며, 현재의 배출 추세가 지속된다면 2030년대 초반 안에 1.5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IPCC와 UNEP 등 국제기구의 일치된 경고이다.
이러한 ‘이상 고온의 일상화’는 폭염, 산불, 가뭄, 홍수, 식량 위기 등 연쇄적인 재난 시나리오를 앞당기는 직접적 신호이며, 더 이상 기후변화가 미래형 위험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UNEP는 이 보고서를 통해 2023년을 “기후 대응의 분기점이자, 마지막 기회의 문턱”으로 규정하며, 지금의 정책과 행동이 향후 수십 년, 수세기의 지구 환경을 결정짓게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요컨대, 2023년은 단지 더운 한 해가 아니라, 기후 체계가 임계점(tipping point)을 향해 급격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해로 기록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국제사회가 어떤 결단과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 궤적이 전혀 다르게 펼쳐질 수 있다.
위기 속에서 멈추지 않는 배출 추세
2022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57.4기가톤 이산화탄소환산(GtCO₂e)에 이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였다. 이는 인류가 파리협정에서 약속한 기후목표, 특히 1.5°C 상승 한계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감축해야 할 배출량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지표이다.
배출의 주요 원인은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 이산화탄소(CO₂)이며,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⅔(66%)를 차지한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한 에너지 생산과 소비는 아직까지도 세계 경제의 중심에 머물러 있으며, 이에 따라 배출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플루오르화가스(F-gases)와 같은 비이산화탄소(non-CO₂) 온실가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메탄은 농축산업과 폐기물 부문, N₂O는 비료 사용, F-가스는 냉매와 산업공정에서 주로 발생하며, 이들 기체는 단기적으로 CO₂보다 수십에서 수백 배 더 강한 온실효과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특히 우려된다.
이러한 배출 증가의 상당 부분은 G20 국가의 책임으로 집중된다. G20은 전 세계 인구의 약 60%를 차지하지만,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6%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중국, 미국, 인도는 세계 1~3위의 배출국이며, 경제 성장과 산업 활동의 지속으로 인해 이들 국가의 총배출량은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지속적인 배출 증가”가 단순한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정책, 경제 구조, 글로벌 책임 분담의 실패임을 드러낸다. UNEP는 이 보고서에서 현재 국가별 감축 공약(NDCs)과 실제 배출 경로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며,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이 지구를 재앙으로 이끌고 있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지금의 배출 증가 추세는 국제사회의 감축 목표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으며, 1.5°C 목표는 점점 도달 불가능한 ‘상징’으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 있다. 이러한 배출 경로를 바꾸기 위해서는 기술적 전환을 넘어, 에너지체계, 산업구조, 소비방식의 구조적 개혁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불균형한 기후 위기
기후 위기는 단지 과학적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이기도 하다. 2023년 UNEP의 ‘배출 격차 보고서(Emissions Gap Report)’는 온실가스 배출과 그에 따른 피해가 전 지구적으로 극도로 불균형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우선, 국가 간 1인당 배출량의 차이는 매우 극심하다. 미국, 러시아, 호주, 캐나다 등 일부 선진국은 1인당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평균의 2배 이상에 달하며, 반면 대다수 개발도상국은 그보다 한참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각국이 배출량 감축에 동일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기후정의(climate justice)의 핵심 논거가 된다.
이와 더불어 소득 계층 간의 불평등도 두드러진다. 전 세계 상위 10%의 고소득층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48%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50%의 인구는 단 12%만을 배출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소비 격차가 아니라, 생활방식, 이동, 주거, 식생활 등 삶의 구조적 조건에 따른 탄소 불평등을 드러낸다.
역사적으로 축적된 온실가스 배출, 즉 누적 배출량을 보면 불균형은 더욱 심화된다. G20 국가들만으로도 누적 배출량의 약 80%를 차지하며, 반면 최빈개도국(Least Developed Countries, LDCs)의 기여는 고작 4%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는 배출에는 거의 책임이 없지만, 해수면 상승, 극심한 기후재난, 식량·물 부족 등의 피해는 가장 먼저,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다.
이처럼 책임과 피해의 구조적 불균형은 기후위기가 단지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정의의 문제이자 윤리적·정치적 문제임을 명백히 드러낸다. UNEP는 보고서를 통해, 기후정의(Climate Justice)란 단지 피해국을 돕는 차원을 넘어, 책임국의 구조적 책임 이행과 형평성 있는 전환(Just Transition)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요컨대, 기후위기의 핵심에는 불평등이 있다. 그리고 이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고는 어떤 기술적 해법도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이 될 수 없다. 기후위기는 세계 공동의 위기이되, 모두에게 동등하게 다가오는 위기는 아니다.
<참고문헌>
Emissions Gap Report 2023 / Broken Record / Temperatures hit new highs, yet world fails to cut emissions (again)
https://www.unep.org/interactives/emissions-gap-report/2023/?utm_source=chatgpt.com
Emissions Gap Report 2023
https://www.unep.org/resources/emissions-gap-report-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