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17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상실된 연결고리
현재 전 세계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파리협정을 통해 1.5°C 이하의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그러나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 WWF)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들의 실제 행동이 매우 미흡하며, 특히 자연 생태계를 ‘해결책’으로 적극 활용하지 않는 현실이 가장 심각한 한계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에너지 전환이나 탄소세 도입 같은 기술 중심적 접근은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예컨대 산림 보호, 습지 복원, 해안 생태계 회복—과 같은 근본적이고 생태계 중심의 전략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흡한 대응의 결과는 이미 여러 지역에서 구체적이고 비극적인 사건들로 나타나고 있다. WWF는 세 가지 사례를 통해 그 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아마존 산불 (2019년 8월)
2019년 8월, 남미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한 달간 30,000건이 넘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는 단순한 산불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의도적으로 개간된 경우가 많았으며, 세계 최대의 이산화탄소 흡수원이자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아마존의 생태계와 기후 안정성을 동시에 위협하는 대재앙이었다. 이 사건은 자연이 단지 피해자가 아니라, 잘못된 개발과 무분별한 자원 이용으로 인해 의도적 파괴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와이 산호초 백화 현상 (2014∼2019년)
하와이는 6년 사이에 무려 3번의 대규모 산호초 백화 현상(coral bleaching)을 겪었다. 산호는 고온 스트레스에 극히 민감한 생물로,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공생 조류를 방출하고 백색화되며, 이는 곧 산호의 대량 폐사로 이어진다. 이 백화 현상은 단지 해양 생물의 생존 문제를 넘어, 해안 생태계 붕괴와 어업 기반 상실로 이어지는 생태적·경제적 충격을 의미한다. 이는 기후변화가 이미 해양 생물다양성과 인류 생계에 되돌릴 수 없는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상징한다.
브램블 케이 멜로미스(Bramble Cay melomys)의 멸종 (2019년 공식 확인)
호주 북동부에 위치한 브램블 케이(Bramble Cay)라는 작은 섬에 서식하던 멜로미스라는 설치류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서식지 침식으로 인해 멸종했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첫 공식 멸종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WWF는 이 사건을 통해 "기후변화가 단지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이미 생명체의 절멸을 초래하고 있는 현재의 위기"임을 명확히 한다. 브램블 케이 멜로미스는 인간 활동에 의한 간접적 파괴가 아닌, 기후 변화 그 자체로 인해 멸종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경고의 상징이 된다.
이 세 사례는 WWF가 지적하는 핵심 메시지를 뒷받침한다.
즉, “우리는 기후위기를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연을 보호하고 회복하려는 조치를 우선하지 않는다면, 위기는 이미 눈앞의 현실이자 되돌릴 수 없는 파괴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재난이며, 이대로라면 더 많은 생명체와 생태계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따라서 WWF는 이러한 실례들을 통해 전 세계 시민, 정책결정자, 기업이 지금 즉시 생태계 중심의 전환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시급성을 촉구하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 WWF)은 <Nature and our 1.5°C Future: A synthesis of IPCC and IPBES science>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위기가 단절된 문제가 아니라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이중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을 중심에 둔 통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 논의에서 자연의 역할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IPCC와 IPBES의 최신 과학적 연구 성과를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정책 결정자들과 시민사회에 생태적 회복력의 중요성과 실질적 이행 전략을 제시하고자 이 보고서를 발행하였다. WWF는 이 보고서를 통해 1.5°C 목표 달성을 위한 기후행동이 단순한 탄소 감축을 넘어,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실현하는 구조적 전환이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이다.
NbS, 탄소 감축의 30%, 자연에 있다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 약칭 NbS)은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손실, 재난 위험 등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환경적·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의 기능과 생태계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말한다. 이 개념은 단순히 ‘자연을 보존하자’는 차원을 넘어, 자연 생태계를 사회문제 해결의 실질적인 수단으로 인식하고 이를 정책과 실천에 통합하려는 접근 방식이다.
WWF 보고서 <Nature and our 1.5°C Future>는 NbS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핵심 수단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건강한 숲, 습지, 해양 생태계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탄소 흡수원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홍수나 폭염, 폭풍해일과 같은 기후 재해에 대해 완충장치 역할을 수행한다. 예컨대, 해안가의 맹그로브 숲은 해일의 힘을 약화시키고 침식을 막아주며, 고산 습지는 수자원을 저장하고 가뭄을 완화하는 기능을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NbS는 전 세계 온실가스 감축 잠재량의 약 30%를 담당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기후 대응 수단이다. 이는 기술 중심의 탈탄소화 전략(예: 탄소포집 저장 기술, 신재생에너지 전환 등)과 병행될 때 더욱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특히 NbS는 생물다양성 보전, 지역공동체 복지, 지속가능한 생계 보장 등 다양한 공동 혜택(co-benefits)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책적 가치가 높다.
NbS는 크게 세 단계로 구성된다. 첫째는 ‘보호(protect)’ 단계로, 기존의 건강한 생태계를 훼손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둘째는 ‘복원(restore)’ 단계로, 이미 훼손된 생태계를 회복시켜 탄소 흡수력과 생물다양성 기능을 다시 활성화하는 과정이다. 셋째는 ‘지속가능 관리(manage sustainably)’ 단계로, 인간이 자연 생태계를 사용하는 방식 자체를 조정하여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생태계 기능을 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NbS 접근은 단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수단을 넘어,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adaptation)과 회복력(resilience) 구축, 생태계의 복원력 강화,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완화까지 포괄할 수 있는 다층적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WWF는 NbS가 정부 정책, 도시 계획, 기업 ESG 전략, 지역 커뮤니티 실천에 반드시 통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한 과학적 기반과 실행 모델을 각국에 제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Unsustainable human activities are wrecking the natural world we depend on.
WWF(2019). Climate, Nature and our 1.5°C Future: A synthesis of IPCC and IPBES science. World Wide Fund for Nature.
Retrieved from: https://wwf.panda.org/our_work/climate_and_energy/climate_nature_future_re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