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18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금융이 생태계를 위협할 때
WWF와 UCL IIPP가 2025년에 공동으로 발간한 <자연 임계점 대응을 위한 금융 흐름 정책 제안(Policy Options for Financial Flows Contributing to Ecosystem Tipping Points)> 보고서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금융정책과 감독은 이러한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WWF와 UCL IIPP는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와 토지 이용 변화 등으로 인해 아마존, 북방 침엽수림, 이탄지, 맹그로브 등 주요 생태계가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이를 넘어서면 비가역적 붕괴로 이어져 기후 시스템과 경제, 금융 안정성에 연쇄적 충격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러한 생태계 파괴에는 축산, 대두, 벌목, 팜오일 산업 등에 대한 금융 자금 유입이 구조적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단순한 위험 공개나 리스크 수치화 중심의 기존 금융 감독 방식으로는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중앙은행과 금융감독당국이 보유한 거시건전성, 통화정책, 미시감독 등의 정책 수단을 활용하여 생태계 파괴를 유발하는 금융 흐름을 제한하고,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생태계 보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한다. 아울러 생태계를 보유한 개발도상국이 국제 금융 구조상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부유국과 주요 금융기관들이 정의롭고 공정한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국제적 재정 연대와 협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 보고서는 몇 가지 생태계 사례를 제시하면서 각 생태계의 위협 요인과 해당 생태계를 위협하는 금융의 흐름을 분석하고 있다.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 (Amazon Rainforest, Brazil)
아마존 열대우림은 전 지구 탄소 순환, 강수 패턴 유지, 생물다양성 보호 등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생태계이다. 그러나 아마존은 이미 물 부족과 기후변화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2050년경 일부 지역이 비삼림(non-forested) 상태로 붕괴할 수 있다는 과학적 예측이 제기되고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의 약 60%가 브라질에 위치하며, 가장 직접적인 자연 파괴의 원인은 쇠고기 생산을 위한 방목지 조성과 대두(soy) 농업 확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약 6,146억 달러(2024년 기준 물가 조정)가 아마존 생태계 파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기업들에 유입되었으며, 이 자금의 대부분은 미국, 영국, 유럽연합 등 원거리의 금융기관으로부터 공급되었다. 특히 시티그룹(Citigroup),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체이스 등 다수의 글로벌 시스템적 중요 은행(G-SIBs)이 주요 자금 공급원으로 나타났다.
이 자금 흐름은 대부분 일반 기업 운영 자금(general corporate purpose)으로 제공되어, 실제 생태계 파괴와의 직접적 연결 고리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된다.
캐나다 북방 침엽수림 (Boreal Forests, Canada)
캐나다 북부에 광범위하게 분포된 침엽수림은 전 세계 북방림의 약 26%를 차지하며, 기후조절과 탄소 저장 기능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 침입종 증가, 기온 상승 등의 영향으로 남쪽 경계부터 점차 숲이 줄어들고 있다. 가장 큰 직접적인 파괴 원인은 산업용 벌목 활동이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관련 기업에 제공된 금융 흐름은 약 988억 달러에 달했으며, 주요 자금 제공국은 일본, 미국, 캐나다였다. 특히 미쓰비시UFJ, 미즈호, RBC,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이 두드러진 금융기관으로 분석되었다. 이들 금융기관 역시 대부분은 G-SIBs 또는 D-SIBs(국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으로, 생태계 파괴와 금융 시스템 안정성 간의 연결 고리를 명확히 보여준다.
러시아 북방 침엽수림 (Boreal Forests, Russia)
러시아는 전 세계 북방림 면적의 6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지역 또한 산업용 벌목, 채굴, 에너지 개발 등의 경제 활동에 의해 지속적으로 황폐화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 북방림은 그 크기와 생태적 기능상 지구 전체 기후 안정성과 생물다양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생태계이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러시아의 산림 훼손과 연관된 기업들에 대해 약 379억 달러의 금융 흐름이 제공되었으며, 자금 제공 기관은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국가에 주로 위치하였다. 보고서는 특히 JP모건체이스, 도이치방크, BNP파리바 등 유럽과 미국의 주요 금융기관들이 해당 자금 흐름에 깊이 관여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 중 일부는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 및 제재로 인해 흐름이 변동되었을 가능성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맹그로브 (Mangroves, Indonesia)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맹그로브의 약 2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두 배 이상 많은 수치이다. 맹그로브는 탄소 저장, 해안 침식 방지, 수산 생태계 보전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양식업(주로 새우)과 팜오일 플랜테이션 확대로 인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약 103억 달러의 금융 흐름이 맹그로브 파괴와 연관된 기업들에 제공되었고, 주요 자금원은 인도네시아 국내 은행 및 기업 자가 조달(self-arranged) 형태였다. 다음으로는 미국, 일본, 말레이시아, 한국, 스위스 등 다양한 국가들이 금융 흐름에 참여하고 있었다. 다국적 금융기관 중에서는 스미토모 미쓰이, UBS, CIMB 등도 포함되며, 이들은 해당 생태계 보전에 있어 금융 부문의 개입 필요성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 이탄지(Peatlands, Indonesia)
이탄지(peatlands)는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탄소 저장 생태계 중 하나로, 건조와 화재에 매우 취약하며, 배수로 건설과 대규모 농업 전환이 주요 파괴 요인이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최대의 열대 이탄지 보유국이며, 팜오일 및 목재 펄프 산업이 이탄지 파괴의 핵심 원인이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약 823억 달러의 금융 흐름이 이탄지 황폐화와 관련된 기업에 제공되었으며, 주요 자금 제공국은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싱가포르였다. 흥미로운 점은, 영국의 HSBC가 두 번째로 큰 자금 제공 기관으로 나타났다는 점으로, 이는 선진국 금융기관이 개발도상국 내 생태계 파괴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이들 사례는 모두 생태계 붕괴의 임계점(tipping points)에 근접한 지역들이며, 자국 내 정책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의 흐름이 자연 파괴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이러한 흐름을 정책적으로 차단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중앙은행과 금융감독당국이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보다 적극적인 개입의 필요성을 보여주었다.
생태 기반 금융 거버넌스를 향하여
WWF와 UCL IIPP는 단순한 자연 보전의 차원을 넘어, 생태계의 붕괴는 글로벌 경제와 금융 시스템 전반에 걸쳐 시스템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 기관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 그리고 주요 생태계의 임계점 도달은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기반을 위협하며, 이는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관이 수행해야 할 핵심 책무인 물가 및 금융 안정성 유지마저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존의 금융 정책과 감독은 이러한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생태계 파괴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산업—예컨대 축산, 대두, 벌목, 팜오일 생산—에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구조를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기후·생태 위기와 맞물려 금융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금융 흐름의 방향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WWF와 UCL IIPP는 ‘생태 기반 금융 거버넌스(Ecosystem-based Financial Governance)’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안한다. 이는 단순한 환경 리스크의 정량화 수준을 넘어, 생태계의 복원력과 임계점 위험을 고려한 금융정책의 구조적 개입을 요구한다. 중앙은행과 금융감독당국은 거시건전성, 통화정책, 미시감독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생태계 파괴를 유발하는 금융 흐름을 제한하고, 지속가능성과 금융 안정성이라는 이중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금융 거버넌스 전환은 정의로운 국제 질서의 재편과도 연결된다. 생태계를 보유한 개발도상국들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국제 금융 질서 속에서 녹색 전환의 부담을 과도하게 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소득 국가와 주요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재정적 연대와 국제 협력을 통해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전환을 지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
궁극적으로 금융은 생태계 파괴를 조장하는 수동적 구조에서 벗어나, 생물다양성과 기후 안정성을 회복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견인하는 적극적인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참고문헌>
WWF & UCL Institute for Innovation and Public Purpose(2025). Policy options for financial flows contributing to ecosystem tipping points. WWF – World Wide Fund For Na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