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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열파시대의 이면, 빙하기는 오는가?

19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by 지구별 여행자

19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기후열파시대의 이면,

빙하기는 오는가?



영화 <투모로우>와 기후담론의 두 얼굴

2004년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는 북대서양 해류의 급속한 붕괴로 인해 지구가 단기간 내 소빙하기로 진입하는 충격적인 시나리오를 그렸다. 극단적인 기상현상, 북반구 도시의 순식간의 빙하기화, 기후 시스템의 급격한 전환 등은 허구적 설정이지만, 그 서사 구조는 과거 기후과학에서 한때 진지하게 논의되었던 가능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로 1975년 <Science News>에 실린 「빙하기가 오는가?(The Ice Age Cometh?)」라는 기사였다.


이 기사는 냉각 위기 담론이 과학과 언론의 접점에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이다. 기후열파와 가뭄, 대형 산불과 홍수가 일상이 된 오늘날, 그와는 정반대의 위기인 ‘빙하기의 귀환’을 다룬 과거의 논의는 단순한 오류 사례를 넘어, 기후 담론의 이면과 변화 양상을 되짚게 하는 중요한 거울이다.


기후열파 시대에 되살아난 질문: <The Ice Age Cometh?>가 남긴 경고

1975년 3월 1일자 <Science News> 제107권 제9호에 실린 「빙하기가 오는가?」는 1970년대 중반 북반구에서 잇따라 발생한 이상 한파와 기록적 폭설 현상을 배경으로, 지구가 소빙하기(mini ice age) 혹은 새로운 빙하기로 접어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기사이다.


기사의 저자는 당시 과학저널리즘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추정되는 존 매덕스(John Maddox)로, 과학 대중화에 앞장섰던 저명한 편집자이자 과학 저술가이다. 그는 대중과 과학계 사이의 중개자로서, 복잡한 기후 데이터를 바탕으로 ‘냉각 가능성’이라는 주제를 비판적으로 조명하고자 하였다.


당시 일부 기후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의 기후 트렌드, 특히 1940년대 이후 관측된 북반구 평균기온의 점진적 하강—약 0.2~0.3도 섭씨 감소—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온 하락과 함께, 1972년부터 1975년까지 북미와 유럽을 강타한 혹한과 대형 눈폭풍은 단순한 기상 이상 현상으로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이를 통해 기후 시스템의 전환 가능성을 제기하는 견해가 언론과 일부 학계에서 부상하였다.


특히 기사는 지질학적 관점에서 지난 수십만 년간 반복되어온 빙하기-간빙기 주기를 언급하며, 지금의 비교적 안정적인 기후 상태가 예외적인 시기일 수 있으며, 기후 시스템은 언제든 급격하게 냉각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단순한 단기 기후 이상이 아닌, 지구 시스템의 장기적 변화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이러한 논의는 기후 변화가 단지 ‘서서히’ 일어나는 선형적 과정이 아니라, 외부 요인과 내재적 요인에 따라 비선형적이고 갑작스러운 변화를 보일 수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기사 말미에서는 냉각이 미칠 수 있는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특히 농업 생산량 감소, 식량 공급 체계의 불안정, 해빙과 해류 변화로 인한 재해 리스크 증대 등, 기후 변화가 인간 사회의 생존 기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빙하기가 오는가?」는 단순한 기상 뉴스가 아닌, 기후 시스템의 불안정성과 지질학적 반복성에 주목한 경고문이자, 기후 위기의 복합성과 비가시성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한 과학저널리즘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기후 불확실성과 냉각 담론의 확산

1994년 1월 31일자 <TIME> 매거진은 1975년 <Science News>에 실린 「빙하기가 오는가?」 기사를 재인용하면서, 기후 시스템이 본질적으로 지닌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강조하였다. 이 기사에서 특히 회자된 문장은 다음과 같다.


“본격적인 빙하기가 곧 닥칠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아니면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문장은 당시 냉각 담론이 지닌 양면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학적으로 확정할 만한 명확한 증거는 없다는 전제를 두고 있지만, 동시에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표현을 통해 극적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와 같은 언술 방식은 과학적 신중함과 언론적 과장이 뒤섞인 표현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대중 인식을 형성하는 데 강한 영향을 미쳤다.


즉, 이 표현은 한편으로는 경계심을 촉구하는 과학의 역할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자극하는 언론 보도의 전략을 담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에도 반복되며, 기후위기에 대한 담론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감정적이고 정치적인 반응을 동반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결국 이 재인용은 20세기 말 냉각 담론이 단지 과학적 탐색에 그치지 않고, 대중적 담론과 정치적 반향으로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해석된다.


과거의 오판인가, 경고인가?

‘지구 냉각’ 담론은 과학사적으로 보면 주류의 예측이 아니었다. 미국 지구물리학회(AGU)나 국립기상국(NOAA)의 당시 주류 견해는 장기 트렌드에 대한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단기간의 추세만으로 기후변화 방향을 단정지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즉각적인 관심을 유도하는 ‘빙하기 도래’라는 서사를 적극적으로 차용하였고, 이는 대중과 정책결정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80년대 이후, 기후과학의 중심은 온난화로 옮겨갔다. NASA의 제임스 한센(1988년 미 상원 증언)을 시작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와 온도 상승 간의 상관관계가 실증되면서 기후 담론은 냉각에서 온난화로 방향을 틀었다. 이때 “빙하기가 오는가?”는 ‘과거의 오판’ 혹은 ‘미숙한 과학 커뮤니케이션’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2020년대 이후, 과학자들은 다시 기후 시스템의 비선형성과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tipping point)에 주목하며, 당시 냉각 담론이 단순한 오류만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냉각 공포에서 열파 공포로

오늘날 우리는 사상 최악의 기후열파, 초강력 태풍, 대형 산불, 지구적 가뭄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이는 과거 냉각 위기와는 반대의 양상이다. 그러나 과거의 담론은 기후가 선형적으로 변하지 않으며, 극단의 방향으로도 전환 가능함을 보여준 선례다.


기후 시스템은 단순히 ‘덥거나 춥다’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정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내포한 복합적 구조이며, ‘냉각’이든 ‘열파’든 어느 방향으로든 급변하는 시스템의 특성에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시사한다.


<투모로우>처럼 극적인 빙하기 전환은 허구에 가깝지만, 1975년 보도와 <TIME>의 재조명은 오늘날의 기후 비상 시대에 ‘반대의 경고’로 읽힐 수 있다. 즉, 지금은 열파의 시대지만, 그것이 언제 어떤 방향으로 또 다른 전환을 맞을지 모른다는 경고의 기록이다.


“빙하기” 담론은 사라지지 않았다

1975년 <Science News>의 “빙하기가 오는가?”는 일시적인 기후 트렌드를 과장한 보도였다는 비판을 받지만, 그것은 기후 시스템의 복잡성과 과학적 예측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이기도 하다. 『TIME』의 재인용은 이러한 맥락을 다시 조명함으로써, 냉각 담론이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과학과 사회의 교차지점에서 발생한 현상임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기후열파라는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빙하기 공포’는 오늘의 ‘열파 공포’와 마찬가지로, 기후 시스템의 급격한 전환 가능성과 인간 사회의 준비 부족을 드러내는 기후 담론의 이면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Maddox, J. (1975, March 1). The Ice Age Cometh? Science News, 107(9), 136–138.

Time Magazine. (1994, January 31). The Ice Age Cometh? <TIME>.

https://content.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980098,00.html


Peterson, T. C., Connolley, W. M., & Fleck, J. (2008). The myth of the 1970s global cooling scientific consensus. Bulletin of the American Meteorological Society, 89(9), 1325–1337.

https://doi.org/10.1175/2008BAMS2370.1


Seidel, D. J., & Lanzante, J. R. (2004). An assessment of three alternatives to linear trends for characterizing global atmospheric temperature changes. Journal of Geophysical Research, 109(D14).

https://doi.org/10.1029/2003JD004414


Watts, A. (2019, July 24). That 70s Climate Crisis Show. Watts Up With That?

https://wattsupwiththat.com/2019/07/24/that-70s-climate-crisis-show/


RealClimateScience. (2023). SCIENCE: The Ice Age Cometh?

https://realclimatescience.com/2023/03/science-the-ice-age-cometh/


AIP Center for History of Physics. (n.d.). The Discovery of Global Warming: “The Cooling World”

https://history.aip.org/climate/cool.htm


Emmerich, R. (Director). (2004). <The Day After Tomorrow> [Film]. 20th Century Fox, Centropolis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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