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23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국가들의 연합
AOSIS는 1990년 창설된 소규모 도서개발국(SIDS: Small Island Developing States)의 연합체로, 전 세계적으로 약 39개의 회원국과 5개의 옵서버 국가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회원국에는 투발루, 키리바시, 바누아투, 몰디브, 마셜제도, 바하마, 자메이카, 세이셸, 앤티가바부다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주로 태평양, 인도양,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나라이다. 지리적·경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이 곳은 대부분 평균 고도가 낮으며, 해안 의존도가 높아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들로 분류되는 곳이다.
AOSIS의 회원국들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비율은 극히 낮지만,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가장 먼저, 가장 깊이 영향을 받는 집단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기후정의(climate justice)”를 호소하며, 온실가스 대량배출국들로부터 재정적·법적 책임과 도덕적 연대를 촉구해 왔다. 특히 해수면 상승 문제는 이 연합체가 직면한 가장 직접적이고 실존적인 위협 중 하나이다.
해수면 상승: AOSIS 국가들이 직면한 실존적 위기
기후과학에 따르면, 1900년 이후 전 세계 평균 해수면은 약 20cm 이상 상승했으며, 최근 10년간(2013–2022)에는 연평균 약 4.6mm의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이는 지난 3,000년간의 평균 상승 속도를 훨씬 뛰어넘는 속도이다. 이 같은 변화는 그린란드와 남극 빙하의 가속적 해빙, 해양 열팽창, 극단적 폭풍 해일 등의 복합적 요인에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해발고도가 낮고, 국토 대부분이 해안선에 인접한 AOSIS 회원국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예를 들어 투발루와 키리바시는 해발 평균 고도가 2~3미터에 불과하며, 몇 센티미터의 해수면 상승만으로도 주거지 침수, 식수 염수화, 농지 손실, 기반시설 붕괴 등이 일어나 국가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주요 국가 사례: 가라앉는 땅 위에서 존엄을 지키는 사람들
AOSIS 국가들 중에서도 키리바시, 몰디브, 바누아투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위기의 상징처럼 자주 언급된다. 이들 국가는 평균 고도가 1~2미터에 불과하며, 단 몇 센티미터의 해수면 상승에도 국토의 상당 부분이 침수되거나, 식수가 염수화되어 사람이 살기 어려운 상태로 전락한다. 이러한 물리적 위협은 단지 환경적 피해에 그치지 않고, 문화의 단절, 국가 정체성의 붕괴, 국민의 강제 이주라는 비극적 결과를 예고하고 있다.
<키리바시(Kiribati) – “존엄 있는 이주(Migration with Dignity)”>
남태평양 적도 부근에 위치한 키리바시는 33개의 산호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대부분은 해발 고도가 2미터를 넘지 않는다. 이미 바닷물 범람으로 인해 마을 전체가 사라진 곳도 있으며, 식수와 농경지가 오염되어 생존 기반이 붕괴된 사례도 늘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해 키리바시 정부는 “존엄 있는 이주(Migration with Dignity)”라는 독특한 정책을 채택하였다. 2014년에는 피지(Fiji)에 약 6,000에이커의 토지를 구입해, 향후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가 사라질 경우 국민 일부가 이전할 수 있도록 대비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이주자들이 교육과 직업훈련을 통해 새로운 사회에 존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키리바시는 여러 차례 유엔 총회와 국제 회의에서 국가의 물리적 소멸이 곧 법적 소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몰디브(Maldives) – 수중 내각회의로 세계를 흔든 호소>
인도양의 몰디브는 약 1,2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산호섬 국가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이다. 수도 말레(Male)는 해발 1미터 이하의 평지 위에 세워졌으며, 인구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에 속한다. 이러한 물리적 조건은 해수면 상승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몰디브는 2009년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당시 정부는 바닷속에서 각료 회의를 열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우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라”는 절박한 메시지였다. 이후 몰디브는 재생에너지 전환, 해안 방벽 건설, 인공섬 개발(예: 헐룰말레 Hulhumalé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며 생존을 위한 적응 전략을 강화해왔다. 아울러 2050년 탄소중립 국가를 선언하고, 기후금융 접근 확대를 위한 다자외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바누아투(Vanuatu) – 법으로 싸우는 섬나라>
남태평양의 바누아투는 80개 이상의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로, 지진과 화산, 사이클론 같은 자연재해에 자주 노출되는 다중위험국가이다. 이러한 위기 위에 해수면 상승이라는 장기적인 재난이 겹치면서 바누아투는 국제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2023년, 바누아투는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국제사법재판소(ICJ) 자문요청 결의안을 주도하여 유엔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기후변화로 인한 인권침해와 국가 책임을 국제법적 관점에서 해석하도록 요청한 것이며, 전 세계 기후정의 논의에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바누아투는 AOSIS 내에서도 법적 대응 전략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단지 피해국의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법 재구조화의 주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사례는 해수면 상승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구체적인 얼굴과 이야기를 부여한다. 각각의 사례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그 핵심에는 공통된 메시지가 존재한다. 바로 "우리는 이 위기의 원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다"라는 절규이다. 그 절규는 인류의 공통된 미래를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AOSIS의 이 같은 목소리는 이제 단순한 피해 호소를 넘어, 국제법의 새로운 영역을 열고, 기후정의를 위한 정치적 지형을 재편하는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경고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세계사적 책임의 무게를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느린 위기’에서 ‘급진적 전환’으로
과거 수세기 동안 해수면 상승은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진행되어, 인간 사회가 적응하고 대처할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다르다. 산업화 이후 급증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해수면 상승 속도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Potsdam Institute)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 평균 온도가 1도 상승할 때마다 장기적으로 해수면은 2미터 이상 상승할 수 있으며, 이는 수세기 동안 불가역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AOSIS는 이를 단순한 환경 변화가 아니라, 국가의 주권 상실, 국제법적 공백, 문화 소멸, 기후 난민 발생이라는 다층적 위기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AOSIS의 국제사회 향한 대응과 요구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AOSIS는 국가 정체성과 주권의 법적 보호 요청, 유엔안보리 및 국제법 위원회(ILC) 의견서 제출,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국제협상 압박과 같은 행동을 전개했다.
<국가 정체성과 주권의 법적 보호 요청>
2024년 9월, AOSIS는 유엔총회에서 「Sea-Level Rise and Statehood Declaration」을 채택하여, 물리적 영토가 침수되더라도 국가의 법적 지위와 주권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국제법 체계 안에서 소도국의 권리 보장을 위한 핵심적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유엔안보리 및 국제법 위원회(ILC) 의견서 제출>
AOSIS는 2023년 유엔안보리 회의에서도 해수면 상승을 국제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이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법적 대응 체계를 요청하였다. 또한 ILC에 해수면 상승 관련 국가 연속성에 대한 국제법적 보호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국제협상 압박>
1.5°C 목표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기준이라는 주장을 강조하며, 온도 상승 억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Loss and Damage(손실과 피해) 기금의 실질적 이행과 기후 난민 보호 체계 구축을 주요 요구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2025년까지 AOSIS는 모든 회원국의 국가적응계획(NAP) 제출과 재정 접근성 개선을 주요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물속에 잠기기 전에
AOSIS의 외침은 단순한 환경운동의 메시지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 전체가 직면한 불평등한 기후위기의 민낯을 보여주는 경고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국가가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의 기록이다. 해수면 상승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재난이며, 이에 대한 대응은 정의, 연대, 책임을 바탕으로 한 국제적 전환의 과제이다.
AOSIS의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역사상 처음으로 “물속에 잠긴 유엔 회원국”이라는 상황을 맞게 될지 모른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응답할 때이다.
<참고문헌>
IPCC. (2021). Sixth Assessment Report (AR6): The Physical Science Basis.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https://www.ipcc.ch/report/ar6/wg1/
AOSIS. (2024). Sea-Level Rise and Statehood Declaration.
https://www.aosis.org/aosis-leaders-declaration-on-sea-level-rise-and-statehood/
AOSIS. (2023). Statement to the UN Security Council: Sea-Level Rise and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Potsdam Institute for Climate Impact Research. (2023). Commitment to future sea-level ris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
https://www.pnas.org/doi/10.1073/pnas.1817226116
UN General Assembly. (2023). Request for an Advisory Opinion of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on the Obligations of States in Respect of Climate Change.
https://press.un.org/en/2023/ga12498.doc.htm
The Guardian. (2025, May 20). Sea level rise will cause 'catastrophic inland migration', scientists warn.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25/may/20/sea-level-rise-migration
The Guardian. (2025, June 28). Countries should keep their statehood if land disappears under sea, experts say.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 (2023). Synthesis Report on National Adaptation Plans.
https://unfccc.int/documents/632775
NOAA. (2022). Global and Regional Sea Level Rise Scenarios for the United States.
https://oceanservice.noaa.gov/hazards/sealevelrise/sealevelrise-tech-report.html
Government of Kiribati. (2014). Migration with Dignity Policy.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Immigration.
Ministry of Environment, Maldives. (2019). Hulhumalé Development and Climate Adaptation Strategy.
Government of Vanuatu. (2023). Submission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on Climate Change and Human Ri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