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사라진 시대에

01_시대를 잇는 질문

by 지구별 여행자

<프롤로그>


질문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이 글의 시작은 단 한 문장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이 물음은 단순히 과거를 향한 회상이나, ‘그때가 좋았다’는 감상적인 향수에서 비롯된 말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조금만 발걸음을 뒤로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볼 때, 의도하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어떤 결핍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익숙한 일상 속에 있지만, 점점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사라지고 있는 한 가지 능력과 태도가 있다. 나는 그것을 질문하는 힘이라고 부른다.

질문하는 힘은 단순히 무언가를 묻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마주하는 태도이며, 자신과 타인의 생각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이다. 질문하는 사람은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서 사물과 사건의 본질을 탐색하려 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려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러한 힘을 잃어가고 있다. 기술과 정보의 발달로 우리는 전보다 훨씬 쉽게 답을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왜?’라는 물음을 던지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답을 찾는 시간은 빨라졌지만, 질문을 준비하는 시간은 줄어든 것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경구가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원칙이었다. 그는 아테네의 거리와 광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옳다고 믿는 그 생각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이 진정으로 좋은 것이라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와 같은 물음은 상대를 당황하게도 했지만, 동시에 깊은 성찰로 이끌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검토’란, 단순한 평가나 확인이 아니라 곧 질문을 던지는 행위였다. 그는 삶과 가치, 진리와 정의에 대해 스스로 묻고, 또 타인에게 묻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찾으려 했다.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단지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을 다시 의심하고, 그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과정이었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 이 질문하는 힘이 약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기술 변화나 정보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질과 방향, 나아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와 직결된다. 질문이 줄어든 사회에서는 비판적 사고가 약해지고, 새로운 시도가 줄어들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결국, 사회는 표면적인 안정과 효율 뒤에 숨겨진 취약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첫 질문은,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의 획득이 아니라 바로 이 물음이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다시 질문하는 힘을 되살려야 한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숨 돌릴 틈이 없을 만큼 빠르다.

하루를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수많은 정보와 마주한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면 밤사이 전 세계에서 일어난 뉴스가 줄줄이 펼쳐지고, 소셜 미디어 속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올린 사진과 글, 영상이 실시간으로 흘러들어온다. 새로운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등장한다. 인공지능, 로봇, 가상현실, 바이오 기술 등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먼 미래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유행은 계절보다도 빠르게 바뀐다. 오늘의 화제였던 것이 내일이면 이미 낡은 것이 되고, 새롭다고 생각한 아이디어가 불과 며칠 만에 더 세련된 형태로 대체된다.


예전에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빠르지 않았다. 먼 나라에서 일어난 소식이 우리 귀에 들어오기까지는 몇 달이 걸렸다. 배나 기차, 혹은 전신과 같은 통신 수단을 거쳐야만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그 사이 사람들은 그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곱씹어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을 단 몇 초 만에 확인할 수 있다.


이 변화는 분명 우리에게 커다란 편리함을 주었다. 빠른 정보 전달은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고, 기술의 발달은 학문과 산업, 생활 전반을 더 효율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이 편리함 속에서 질문하는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모르는 것이 생기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부모님이나 스승, 혹은 경험 많은 사람에게 묻고,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거나, 직접 부딪혀 경험을 쌓았다. 이러한 과정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질문이 숙성될 여유가 있었다. “왜 그럴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건 정말 옳은 걸까?”와 같은 물음은 답을 찾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답을 구하는 동안에도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검색창에 몇 개의 단어만 입력하면, 수많은 답변이 즉시 화면에 뜬다. 유튜브나 SNS에는 누군가 이미 정리해둔 짧고 간결한 해설 영상이 있고, 인공지능은 우리가 원하는 결론을 몇 초 만에 만들어 준다. 답을 얻기 전의 ‘질문하는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우리는 질문의 깊이를 느껴보기도 전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답을 받아들인다.


그 결과, 질문은 더 이상 탐구와 사유의 출발점이 아니라, 단순한 절차나 형식에 머물게 된다. 우리는 ‘왜’보다는 ‘어떻게 빨리 답을 찾을 수 있는가’에 더 집중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질문하는 힘은 약해지고, 사고의 폭과 깊이는 점점 좁아진다. 그리고 그것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지적 독립성을 약화시키는 위험한 신호이기도 하다.


질문의 힘이 줄어드는 이유

질문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단순히 입으로 묻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경로를 탐색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직접 물어보고, 관련된 책을 찾아 읽으며, 자료를 조사하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나누는 과정이 이어진다. 때로는 이 과정 속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경험은 질문의 답에 다가가는 과정이자, 스스로의 이해를 깊게 다지는 시간이다.

이 여정은 결코 빠르지 않다. 질문은 즉각적인 해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느림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우리는 질문을 품고 오래 고민하면서 생각의 폭을 넓히고, 다른 관점들을 조합하며, 결국 더 깊이 있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느림은 불필요한 지연이 아니라, 지적 성숙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이러한 느림을 점점 허용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세상은 속도를 최고의 가치로 둔다. 빠른 답, 빠른 결론, 빠른 결정이 미덕처럼 여겨진다. 속도는 분명 효율을 만든다. 그러나 효율만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게 되면, 질문은 곧 ‘불필요한 절차’로 취급된다. 오래 고민하기보다 즉시 답을 내놓는 사람이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분위기 속에서, 깊이 있는 질문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아이작 뉴턴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사과가 떨어지는 단순한 현상 앞에서 “왜?”라고 묻는 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턴은 당연함 속에 숨은 이유를 탐구하려 했다. 그 질문은 수많은 계산과 실험, 고민을 거쳐 인류 과학의 커다란 전환점을 열었다.


만약 뉴턴이 빠른 결론을 내리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면, 그리고 “그냥 중력 때문이겠지”라는 짧은 답으로 만족했다면, 인류는 우주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훨씬 늦게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질문은 이렇게 속도와 효율의 잣대로는 평가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느림 속에서 자라는 질문은 단순한 해답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씨앗이 된다.


질문이 없는 사회의 모습

질문이 사라진 사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질서 있고 효율적이다.

모두가 비슷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같은 방식으로 판단하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사회 구성원들이 동일한 기준과 목표를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니 겉모습만 놓고 보면 갈등이 줄어든 듯하다. 서로 다른 의견으로 부딪히는 불편함도 적고, 결정 과정이 단순하며, 실행 속도도 빠르다. 이런 모습은 표면적으로는 안정된 사회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질문이 사라진 사회는 점점 약해지고, 변화에 취약해진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질문이 없으면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기회를 잃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하는 과정은 대개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데, 그 질문이 사라지면 시야는 좁아지고 사고는 경직된다.


또한 질문이 없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줄어든다. 모두가 기존의 해결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틀 안에서만 움직인다. 그러니 결과는 늘 비슷하다. 시간이 지나도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단기적인 땜질식 대안만 반복된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현대 사회에서 이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대응할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말은 질문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질문이 없으면 우리는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의심 없이 믿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잘못된 확신이 굳어지고, 그 위에 세운 판단과 행동은 필연적으로 문제를 낳는다.


결국 질문이 없는 사회는 겉으로는 평온하고 효율적인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잃고, 잘못된 길을 바로잡을 힘을 상실한 사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부의 균열은 커지고, 어느 순간 작은 변화나 위기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질문은 사회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 불편함 속에야말로 사회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숨어 있다.


질문은 연결의 다리이다

질문은 단순히 개인의 생각을 넓히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넘어서 세대와 세대, 시대와 시대, 그리고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한 사람이 던진 질문은 그 순간을 넘어, 시간과 공간을 건너가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삶을 연결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끊임없는 질문과 자기 성찰이 없는 자유는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질문이 단지 호기심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자유롭고 성숙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준다. 질문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유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다. 자유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이렇게 묻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옛날에는 이 강에서 물고기를 많이 잡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줄었을까?”


이 단순한 한 마디 질문은 그저 옛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현실을 연결하는 힘이 있다. 손주는 할아버지의 질문을 통해, 과거에는 강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를 알게 되고, 지금 강이 변해버린 이유를 궁금해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강의 변화를 초래한 원인, 그리고 미래에 이 강을 어떻게 회복하고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대화가 이어진다. 한 세대의 경험이 다음 세대의 문제의식과 책임감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질문은 국경을 넘어 사람을 연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 친구가 이렇게 묻는다고 해 보자.


“너희 나라는 기후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니?”


이 질문은 단순한 정보 요청이 아니다. 서로 다른 나라와 지역의 상황, 정책, 시민들의 행동을 비교하고, 그 속에서 배울 점을 찾게 만든다. 한 나라의 경험이 다른 나라의 대안이 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방식이 결합해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처럼 질문은 경계와 거리를 허물고,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통로가 된다. 세대 간 질문은 과거와 미래를 잇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질문은 지역의 한계를 넘어 전 지구적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 속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질문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공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다.


질문은 변화를 만드는 씨앗이다

질문은 변화를 일으키는 강력한 힘이다.

그 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씨앗이 땅속에서 싹을 틔우듯 조용히 마음속에서 자라난다. 처음에는 단순한 의문으로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우리 안에서 점점 뿌리를 내리고, 생각을 확장시키며,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과 해답으로 이어진다. 어떤 질문은 빠르게 답을 만나 짧은 시간 안에 결실을 맺지만, 또 어떤 질문은 오랫동안 우리 마음속에 머물러 있다가, 예상치 못한 만남과 경험을 통해 비로소 꽃을 피운다. 질문은 이렇게 우리의 내면에서 성장하며, 변화의 순간을 준비한다.


과학자 마리 퀴리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나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많은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질문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과학의 경계를 넓히는 원동력이었다. 방사능 연구의 길을 연 것도, 기존 지식의 한계에 의문을 품고 실험과 관찰을 거듭한 결과였다. 만약 그녀가 질문을 멈추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면, 인류 과학사에서 중요한 발견들은 훨씬 늦게 또는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복합적이고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기후위기, 환경 파괴,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 끊이지 않는 전쟁과 분쟁, 그리고 기술 변화로 인한 사회 구조의 불안정까지, 문제는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서 하나의 정답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다양한 질문이 많을수록, 해법은 더 다채롭고 창의적으로 발전한다. 질문은 새로운 접근 방식을 만들고,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며, 기존에 없던 해결책을 찾아내는 길을 연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지금 다시 질문을 시작해야 할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질문을 다시 시작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교과서나 학문 속에서만 나오는 복잡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어디서든 피어날 수 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하는 내용을 들으며 던지는 작은 의문, 친구와의 대화에서 떠오르는 간단한 물음,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누는 생활 속 궁금증, 혹은 혼자 길을 걸으며 하늘을 보다가 떠오르는 생각 모두가 질문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는 “나는 항상 배우고자 했다. 그리고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단순히 학문적 배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인생 그 자체가 배우는 과정이며, 질문은 그 배움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의미이다. 질문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그 사람 안에서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이렇게 이어진 질문은 세대를 넘어 전해지고,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나아가 시대와 시대를 연결한다.


결국, 질문은 우리가 함께 나아갈 길을 만든다. 한 사람의 작은 물음이 사회를 바꾸고, 한 시대의 질문이 다음 시대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렇기에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출발점이며,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절대 멈추어서는 안 되는 삶의 습관이다.


앞으로의 여정

이 글은 바로 그 다리를 다시 놓기 위해 쓰인다.

여기서 말하는 ‘다리’란 단순한 물리적 연결 구조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 시대와 시대,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통로이다. 그 통로의 재료는 바로 질문이다. 질문은 과거로부터 흘러온 지혜와 경험을 현재와 연결하고, 현재의 고민과 선택을 미래로 전달한다. 그래서 이 책은 과거의 질문, 현재의 질문, 그리고 아직 답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한 질문을 차례로 찾아 나서려 한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각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질문을 던졌는지 살펴볼 것이다. 어떤 질문은 시대를 바꾸는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왔고, 어떤 질문은 그 시대에선 묵살되었지만 훗날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질문이 어떻게 서로 이어지고, 그 연결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지, 그 과정을 하나하나 짚어볼 것이다.


질문은 단지 ‘모른다’는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잊어버린 것을 되찾는 열쇠이다. 우리는 질문을 통해 사라져버린 목소리를 다시 듣고, 잊힌 길을 다시 발견하며, 단절된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질문은 새로운 길을 만드는 동시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시 성찰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결코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던진 질문은 씨앗처럼 다음 세대의 마음에 심긴다. 처음에는 작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가, 그들의 삶 속에서 경험과 만남을 거치며 싹을 틔우고 자라난다. 언젠가 그 질문은 또 다른 시대의 변화를 이끌 거대한 나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질문은 세대를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계속 살아남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이 물음은 과거를 반성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자는 초대장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이 질문을 건넨다.


“당신이 지금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


그 질문이 작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작은 물음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계기는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져, 결국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만들지도 모른다.




https://youtu.be/czkHmjrFCnM?si=_i333F7K2bjZf0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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