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관계망은 몇 명까지 일까?

01_잡학스런 공동체이야기

by 지구별 여행자

사람의 관계망은

몇 명까지 일까?

<Calling Dunbar’s Numbers>를 읽고



1. 던바의 질문: 우리는 몇 명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많은 이웃과 친구를 만나지만, 늘 마음속에는 가까운 몇몇 사람이 자리한다.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오래 전부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인간이 뇌의 크기와 인지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한계는 어디일까?”


그의 답은 약 150명이었다. 우리는 수천 명을 스치듯 알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 의미 있는 관계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범위는 대체로 150명 안팎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150명도 모두 같은 수준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5명, 그다음으로 가까운 15명, 조금 더 넓은 50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150명까지, 계층적 구조를 가진다.


2. 휴대전화 기록 속에 담긴 사회적 층


연구자들은 2007년 유럽의 방대한 휴대전화 통화 기록을 분석했다. 무려 6백만 명이 넘는 사용자, 60억 건의 통화가 포함된 자료였다. 전화는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누구와 얼마나 자주, 얼마나 길게 이야기하는가를 보여준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인간 관계망 속에 던바가 말한 계층적 구조가 존재하는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통화 빈도를 기준으로 사람들의 관계망을 나누었을 때, 가장 가까운 약 4명, 그보다 조금 더 넓은 약 10명, 다시 그 너머의 약 30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130명 내외의 큰 바깥 울타리가 나타났다. 수치의 크고 작음에 차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인 “5–15–50–150” 패턴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3. 커뮤니티의 울타리와 관계의 층


이 결과는 단순히 통계적 발견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 공동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내부의 작은 원: 가장 가까운 5명 안팎은 가족, 오랜 친구, 혹은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이웃처럼 “정서적 안전망”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원: 약 15명은 함께 시간을 자주 보내고, 공동체 활동에서 자주 만나는 이들이다. 마을회의나 소규모 모임에서 얼굴을 익히는 범위가 이 정도다.

세 번째 원: 약 50명은 협동조합 조합원, 동네 축제 참여자, 혹은 직장 동료들처럼 정기적으로 접촉하지만 친밀도는 다소 낮은 관계들이다.

가장 바깥 원: 150명 규모는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공동체 전체”에 해당한다. 마을 주민 명부나 협회 회원 명단이 이 규모를 닮아 있다.


4. 거버넌스와 관계의 토대


이 계층적 구조는 커뮤니티 거버넌스를 설계할 때 중요한 힌트를 준다. 의사결정을 할 때 모든 사람이 항상 같은 깊이로 참여하기는 어렵다. 대신 가장 가까운 핵심 그룹이 있고, 그 외곽에는 더 넓은 참여 집단이 있다. 주민자치회, 마을학교, 협동조합 같은 조직은 보통 150명 이내에서 가장 활발히 작동한다. 이 규모를 넘어서면 관계의 밀도가 약해지고, 참여의 결속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민주적인 거버넌스 구조를 고민할 때도, 이웃과의 관계망이 유지될 수 있는 인지적·정서적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즉, 커뮤니티가 지속가능하려면, “작은 단위에서 신뢰를 쌓고, 큰 단위로 확장해 가는 구조”가 필요하다. 던바의 수는 바로 그 경계선을 알려준다.


5. 오늘날의 의미: 디지털 시대에도 남는 한계


스마트폰, SNS, 메신저가 보편화된 지금 우리는 수백, 수천 명과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연구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관계의 깊이가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친구 목록에 수천 명이 있어도, 정작 위로를 주고받는 이는 손가락에 꼽힌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뇌와 마음의 한계 속에서 층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디지털 네트워크가 인간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히려 지역 커뮤니티와 이웃 관계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지탱할 수 있는 울타리는 크지 않으며, 그 울타리 속에서 신뢰와 협력을 어떻게 키우는가가 공동체의 힘을 결정한다.


6. 맺음말: 관계의 층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


<Calling Dunbar’s Numbers>는 단순한 과학 논문이 아니다. 이는 인간 관계와 공동체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던진다. 우리는 모두 여러 겹의 원을 그리며 살아간다. 가장 가까운 원에서는 진한 정서적 유대가, 바깥 원에서는 느슨한 연대가 형성된다. 마을, 도시, 네트워크가 이 층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민주적 거버넌스와 공동체의 회복력이 달라진다.


결국 이 연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관계는 무한히 확장되지 않는다. 작은 울타리 속에서 신뢰와 유대를 쌓을 때, 큰 공동체도 튼튼해진다.”



<참고문헌>


MacCarron, P., Kaski, K., & Dunbar, R. I. M. (2016). Calling Dunbar’s Numbers. arXiv preprint arXiv:1604.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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