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거점정책의 이면

02_난제, 수도권 일극화와 5극 3특

by 지구별 여행자

02_난제, 수도권 일극화와 5극 3특



성장거점정책의

이면



성장거점이론의 선택과 한국형 산업화

한국은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균형발전이 아닌 불균형 성장 전략을 선택하였다. 정치권과 고위 관료 집단은 반복적으로 균형발전을 언급해 왔지만 실제로 채택된 지역발전 전략의 핵심은 성장거점 중심의 불균형 성장이론이었다. 성장거점(Growth Pole) 혹은 성장극이란 산업 경제 문화 행정 기능을 특정 지역이나 도시에 집중시켜 주변 지역의 발전을 견인하는 중심지를 의미한다. 이 전략은 산업과 자본을 특정 공간에 집적함으로써 단기간에 성장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필연적으로 몇 가지 구조적 결과를 동반하였다. 첫째 농촌에서 도시로의 대규모 인구 이동이 발생하였다. 둘째 1차 산업 중심의 경제 구조는 2차 산업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되었다. 셋째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 입지 결정이 지역의 선택을 대체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 차원에서는 산업화의 성공으로 해석되었으나 지역(local)의 관점에서는 심각한 상실과 해체의 경험으로 작용하였다.


국가는 지역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서 지역(region) 단위로 동원하였지만 생활 세계로서의 지역(local)은 성장의 분배와 공간적 확산에서 배제되었다. 그 결과 정부 주도성이 강한 지역 성장은 주변으로 확산되는 힘이 아니라 자원과 인구를 끌어당기는 흡인력으로 작동하였다. 성장거점 전략은 지역 간 격차를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구조적으로 고착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과 공간적 분화

한국의 산업화는 대기업 중심의 수직적 분업 구조를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성장 거점 도시에는 원청 대기업이 입지하였고 그 주변 지역에는 하청 및 재하청 기업이 종속적으로 배치되었다. 농촌과 비거점 지역은 산업 체계의 외부로 밀려나거나 저부가가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이와 같은 산업 구조는 단순한 생산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간 위계를 만들어내는 공간적 질서로 작동하였다.


이 구조 속에서 원청 기업은 기술 자본 의사결정권 이윤 배분 구조를 독점하였다. 반면 하청 기업은 낮은 마진 불안정한 고용 단가 압박 산업 전환에 대한 취약성을 감내해야 했다. 이러한 관계는 기업 간 분업을 넘어 지역 간 종속 관계로 확장되었다.


그 결과 공간은 성장 거점 준거점 종속 지역으로 단계적으로 위계화되었다. 산업 구조에서의 불균형은 그대로 공간 구조에 각인되었고 지역 간 격차는 경제적 차이를 넘어 구조적 분화의 형태로 고착되었다.


임금구조와 노동의 이중화

앞서 형성된 산업 구조와 공간 구조는 임금 체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원청 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는 고임금과 안정적 고용을 보장받은 반면 하청 노동자는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 구조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격차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임금 구조의 분화로 이어졌고 특히 농촌과 비거점 지역은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구조화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농촌과 비거점 지역에서 발생한 노동력 부족을 외국인 노동으로 충당해 온 방식이다. 통계적으로 보면 전국적 차원뿐 아니라 경기도와 같은 수도권 지역에서도 전체 인구 증가보다 가구 수 증가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이미 소형 세대 중심의 사회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대 수의 증가는 가구당 인구 수 감소와 맞물리며 생활권 단위에서 주거 교육 돌봄 복지 서비스에 대한 수요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외국인 인구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지역 사회에서는 세대 결합과 생활 양식의 충돌이 새로운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농촌의 산업 경쟁력 약화 지역 사회의 인구 재생산 구조 붕괴 노동의 사회적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농촌은 더 이상 생산과 삶이 결합된 공간이라기보다 저임금 노동을 흡수하는 공간으로 재정의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역불균형의 구조적 심화

앞서 살펴본 일련의 요소들은 지역불균형을 일시적인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구조로 고착시켰다. 지역불균형은 더 이상 특정 시기의 투자 격차나 인구 이동의 우연적 결과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산업 구조 기업 지배 구조 임금 체계 노동 이동 체계 정책 결정 구조가 상호 결합하며 형성된 복합적이고 누적적인 산물이다. 이 구조는 한 번 형성된 이후 자연스럽게 해소되기보다 오히려 제도와 정책을 통해 강화되며 지속되어 왔다.


산업 구조 측면에서 보면 고부가가치 산업과 핵심 기능은 수도권과 일부 거점 도시에 집중되었고 비수도권은 하위 산업 혹은 보조적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으로 위치 지워졌다. 기업 지배 구조 역시 본사와 의사결정권을 수도권에 집중시키며 지역은 실행과 생산의 장소로만 기능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임금 체계와 노동 이동 체계로 연결되어 수도권에는 고임금 안정 일자리가 집중되고 비수도권에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이 구조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책 결정 구조 또한 이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핵심 요소로 작동하였다. 국가 정책은 명목상 지역 균형 발전을 표방해 왔지만 실제로는 성장 효율성과 경쟁력 논리에 따라 자원을 배분해 왔다. 그 결과 비수도권은 스스로의 발전 경로를 설계할 수 있는 주체로 기능하기보다 이미 정해진 성장 전략을 수용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비수도권은 성장의 주체가 아니라 성장의 외부 효과를 흡수하는 공간이 되었다. 인구 유출 산업 공동화 재정 기반 약화 돌봄과 복지 부담의 증가는 모두 지역 내부의 선택이라기보다 외부에서 형성된 성장 구조의 결과로 나타났다. 지역은 더 이상 발전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무대가 아니라 성장 전략이 외부화한 사회적 경제적 부담을 떠안는 구조적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역불균형은 지역 내부의 역량 부족이나 경쟁력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국가 차원의 성장 전략과 산업 체계가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설계된 결과이며 비수도권은 그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주변화되었다. 지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재정 이전이나 인구 유입 정책을 넘어 산업 구조와 정책 결정 구조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구조적 전환의 과제로 제기된다.


수도권 일극화의 난제

국토연구원은 인구수를 기준으로 국토의 형태를 재구성한 카토그램을 통해 2035년 인구 분포 전망을 제시하였다. 이 지도는 실제 면적이 아니라 인구 규모에 따라 국토를 시각화한 것으로 수도권 집중의 정도를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서울은 실제 면적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게 표현되며 서울 인천 경기를 포함한 수도권에 전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산 대구 광주 등 주요 대도시권 역시 인구 밀집으로 확대되어 나타나지만 강원 전북 전남 경북 등 다수의 비수도권 지역은 인구 감소로 인해 실제보다 축소된 형태로 표현된다.


서울 인천 경기로 구성된 수도권은 하나의 거대한 메가리전(Megaregion)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경기도의 수원 고양 용인 화성 성남 등 대도시권은 이미 인구 압축이 고도화된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이는 단순한 도시 팽창이 아니라 생활권과 노동시장 주거 구조가 하나의 초광역 체계로 통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발표된 인구통계에 따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 격차는 해마다 확대되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 차이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지 6년이 지난 2026년 초 기준으로, 그 격차는 약 100만 명에 이른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수도권 일극화가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수도권 일극화는 흔히 교육 문화 생활 편의의 문제로 설명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산업과 이윤의 집중 구조가 공간적으로 구현된 결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사 기능과 핵심 의사결정권은 수도권에 집중되었고 고임금 일자리 역시 수도권에 편중되었다. 그 결과 인재와 자본은 지속적으로 수도권으로 흡인되고 반대로 지방은 인구 감소와 산업 공동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제시되는 5촌 2도나 관계인구와 같은 정책 담론은 인구 총량과 구조적 조건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한계적 처방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은 자연스러운 시장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국가 주도의 산업 전략과 공간 정책이 장기간 누적된 효과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결국 수도권은 성장의 수혜지이자 지방이 만들어낸 잉여를 흡수하는 공간으로 구조화되었으며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격차는 정책과 산업 체계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저출생 사회의 난제

한국은 2023년 합계출산율 0.72명이라는 세계 최저 수준에 도달하였다. 지난 20여 년간 출산율 제고를 위해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었지만 의미 있는 반등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질문은 분명해진다. 출산 장려금이나 돌봄 지원을 늘리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문제의 핵심은 정책의 규모가 아니라 제도의 성격에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농경사회에서 자식은 노동력을 보완하는 생산재였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식은 소비재이자 투자재로 전환되었다. 이는 단순한 가치관 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주거 교육 돌봄 제도의 구조적 변동과 긴밀하게 맞물린 결과이다. 국가는 오랫동안 출산율을 국가 경쟁력의 문제로 인식해 왔으며 더 많은 출산이 더 큰 경제로 이어진다는 전제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담론은 자식을 다시 생산재로 복원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 세대가 직면한 현실은 다르다. 불안정한 노동 조건과 과도한 주거비 부담 과열된 사교육 구조 돌봄 책임의 성별 편중은 자녀 양육을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으로 만든다. 이와 같은 조건 속에서 자식은 삶의 확장이라기보다 부담이자 장기적 투자 대상으로 인식된다. 저출생 사회에서 핵심적인 질문은 성장주의에 갇힌 국가 담론이 이러한 현실을 전환할 수 있는가에 있다.


저출생은 흔히 가치관 변화 개인의 비혼 비출산 선택 출산 비용 증가로 설명된다. 그러나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저출생은 개인에게 요구되는 노동과 삶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결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거 사회에서 개인은 생산의 주체이자 가계 경제의 기여자였으며 공동체 재생산의 핵심 단위였다.


반면 현재의 개인은 소비의 주체로 규정되고 자기 유지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하며 다양한 사회적 위험을 개인화된 방식으로 감내하는 존재로 재정의되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저출생의 구조적 토대는 특히 주거 비용에서 두드러진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상승한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는 개인의 삶을 압박하며 이는 국가 기업 금융자본이 상호 결합한 구조적 결과로 볼 수 있다.


불안정 노동과 생애주기의 붕괴

생산인구에서 소비인구로의 전환은 불안정 노동 구조와 결합되며 하나의 지속적인 사회적 조건을 형성하였다. 이 결합은 정규직 일자리의 구조적 축소 경력 단절의 상시화 소득의 예측 가능성 약화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노동시장은 더 이상 장기적 고용과 안정적인 소득을 전제로 하지 않으며 개인은 반복되는 이동과 단절을 전제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근대 산업사회가 전제해 왔던 생애주기 모델 자체를 흔들어 놓았다. 교육을 통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바탕으로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선형적 경로는 더 이상 일반적인 삶의 궤적이 되지 못한다. 노동 이력은 단절과 재진입을 반복하고 소득은 장기적 계획을 가능하게 할 만큼 예측되지 않는다. 그 결과 개인은 미래를 단계적으로 설계하기보다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데 에너지를 투입하게 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출산은 삶의 자연스러운 이행 단계가 아니라 감당 가능성을 계산해야 하는 위험 선택으로 전환되었다. 출산은 기쁨이나 관계의 확장이기보다 노동시장 이탈 가능성 소득 감소 주거 부담 증가 돌봄 책임의 집중 등 다양한 위험을 동반하는 결정으로 인식된다. 특히 불안정 노동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출산은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되는 위험 관리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저출생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개인의 선택이 누적된 결과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삶의 구조 자체가 해체된 결과이며 노동과 생애주기를 지탱하던 사회적 조건이 붕괴된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저출생은 개인의 태도 변화가 아니라 불안정 노동을 전제로 작동하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사회적 결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고령화와 저출생의 연결고리

고령화는 단순히 노인 인구가 증가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생산을 담당하던 세대가 노동시장으로부터 이탈하고 돌봄과 부양의 부담이 개인과 가구 단위로 집중되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청년 세대는 자신의 생계 유지 부모 세대에 대한 잠재적 부양 책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동시에 감내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와 같은 이중 혹은 삼중의 부담 속에서 출산은 사회적 기여가 아니라 개인이 감수해야 할 위험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고령화와 저출생은 개별적으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성장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상호 연결된 핵심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사회는 개인에게는 생산의 책임을 요구하면서 재생산에 대한 조건과 보장은 제공하지 않는 모순적 구조를 형성해 왔다. 그 결과 청년 세대는 노동자이자 소비자로 기능하지만 부모 세대와 기성세대로부터 안정적인 지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저출생과 생애 선택의 변화는 비합리적 일탈이 아니라 주어진 구조 속에서 나타난 지극히 합리적인 사회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정리하면, 한국 사회에서 성장은 주변으로 확산되는 방식이 아니라 중심으로 빨아들이는 흡인의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 산업과 자본은 특정 거점과 수도권에 집중되었고 그 결과 산업 구조의 편중은 공간 구조의 위계로 전이되었다. 이러한 공간 구조는 다시 노동 구조의 분절을 낳았고 불안정 노동의 확산은 개인의 생애 구조를 붕괴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생애주기의 해체는 결국 인구 구조의 변화를 불러왔으며 저출생과 고령화는 이 연쇄의 가장 마지막에 나타난 결과로 드러났다.


따라서 저출생과 고령화는 출발점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알리는 경고등에 가깝다. 인구 문제는 독립된 정책 영역이 아니라 산업 공간 노동 생애 구조가 누적된 결과이며 인구 지표의 변화는 사회 구조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신호로 이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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