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루와 마을
운조루에는 쌀 두 가마니 반 정도가 들어가는 통나무 안을 파서 만든 뒤주가 하나 있다. 이 뒤주에는 “다른 사람도 능히 열어서 꺼내 먹을 수 있다.”라는 뜻의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혀있다. 뒤주 위에는 여러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쇠통이 잠겨있다. 한 사람이 많이 가져가는 방지하고 여러 사람이 조금씩 가져다가 굶어 죽지 말고 살라는 의미에서 쇠통이 물려있다. 가난한 이웃이 운주루의 뒤주에서 쌀을 가져다 먹을 수 있게 한 배려가 오늘의 운주루를 만들었다. 굶주린 사람을 위한 뒤주가 운조루의 보물이다. 혹시라도 뒤주에 쌀이 남아 있으면 우리가 덕을 베풀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냐 어서 가난한 이웃에게 이 쌀을 나누어 주라고 하였다고 할 정도의 넉넉함은 부족한 채우는 당연한 의미라고 생각하고 마을살이를 했다.
사뭇 궁금증이 더해진다. 한국전쟁의 파고를 어찌 넘었을까? 특히 파르티산의 근거지가 지리산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운조루와 같은 대저택은 남아 있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텐데 말이다. 한국전쟁 당시 많은 절과 지주의 집을 불타 없어지곤 했다. 운주루는 한국전쟁의 파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시간을 어떻게 견기도 살아남았을까 하는 것이다.
운주루는 단순히 풍수적으로 본 배산임수의 좋은 집터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과 어떻게 호혜적으로 살아야 하는 지를 알려준 것이라고 본다. 구름 위에 나는 새가 머무는 집의 의미와, 부와 자손이 이어지는 집의 의미인 금환락지라는 의미는 단순히 좋은 집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집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보여주었다고 본다.
운조루는 쌀을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집주인인 류증교(1906~1971)는 집안의 노비 문서를 태우고 해방시기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중에 운조루를 지킨 이들은 운조루의 뒤주에서 쌀을 퍼간 가난한 이웃과 방면된 노비들이었다. 운조루는 넉넉한 마음으로 마을 사람과 같이 마을살이를 했다. 환난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운조루를 지키는데 너나없이 앞장을 섰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 남에게 덕을 베풀면 좋은 일이 생긴다.”라는 말처럼, 덕을 베풀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이 운조루를 만들었다.
부엌에서 군불을 지피면 앞마당 기단으로 연기가 나온다. 다른 한옥에 비하여 낮게 설치된 굴뚝이다. 굶주린 사람을 위해 배려하는 마음으로 디자인한 삶의 기술이다. 가난한 이웃이 우리 집 굴뚝에 나는 연기를 보면 배고프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가마솥 군 불 연기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기단에 맞추어 설계하였다.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지 않도록 낮게 설치한 굴뚝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깃든 삶의 기술이다. <타인능해>에 새겨진 뒤주와 낮은 굴뚝은 가진 자의 도리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일깨 주는 삶의 지혜이자, 좋은 집터를 만드는 조건이라고 것을 일깨워 주는 곳이 운조루이다.
큰 부엌에는 가마솥이 세 개나 있다. 하나는 물을 데우는 가마솥, 하나는 밥하는 가마솥이고 나머지 하나는 국 끓이는 가마솥이다. 밥도 하고 국도 한 부엌에서 내린 음식이 운조루 닭백숙이다. 운조루의 닭백숙은 여럿이 푸짐하게 나누는 음식이다. 봄, 가을 농번기에 농사짓는 일꾼들이 일을 하고 나면 소작농민들과 농사를 짓고 나면 몸을 씻은 후 나누어 먹는 음식을 내주었다. 그 음식 이름이 <서리시침>이다. 운조루에서 음식을 내주면 일꾼들은 꽹과리, 징을 가지고와 치면서 막걸리 한 잔으로 걸 판 지게 놀기도 했다. <서리시침>이 나오는 날은 재미나게 놀고먹는 날이었다. 운조루에는 집안 곳곳에 배려의 손길이 자욱하다. 여성을 위한 배려의 공간, 안채의 다락방과 낮은 굴뚝 그리고 마을살이에서 배려는 진정한 좋은 집터를 만드는 힘이 되었다.